16. 비정상적 인간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by 집안의 불청객

뇌의 호르몬 분비가 뭐라고 나를 이런 사람으로 내모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약으로 통제받으며 약으로 조절 당하며 사는 이 삶의 순간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네 알이 담긴 봉지를 뜯어 물과 함께 마시고 자기 전에는 여섯 알이 든 봉지를 뜯어 물과 마신 후 잠이 든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몸에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좌절, 불안, 강박, 우울 등 비정상적인 곳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넌 왜 그러냐고 묻는 말에는 언제나 나도 알 수 없다고 답변하는 방법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상적이냐고. 고통과 역경을 수반하지 않는 삶은 어떤 세계냐고 말이다.


나는 그들과 다른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싶다. 하지만, 세상이 날 바라보는 시선은 틀림이다.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이유는 사회에서의 사람과 다른 말이다.


사회에서 나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얻지 못하고 인간으로서는 남들과 틀리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다.


스스로 인지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행동해도 뇌의 호르몬은 내 맘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솔직히, 그럴 때마다 자신감을 깎아 먹는다. 왜 인정받지 못하는지 남들과 똑같은 걸 할 때도 두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 두려움은 자신감, 자존감, 자아 등을 먹고 점점 자라기 마련이다.


점점 커지기만 할 뿐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나의 최선책은 커지는 속도를 느리게 하는 것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멈춤에 가까운 속도를 가진다고 해도 커진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진실이라는 말의 무게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나를 움직이는 게 아닌, 누군가가 실로 조종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무게감이 심해지면 가끔 현실에서 탈피하고 있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좋은 반응은 아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증세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몸이 붕 뜨고 정신이 몽롱하다. 걷는 것도 손의 촉감도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된 것 같다.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계속 영위하고 싶지 않았다.


그 붕 뜬 기분이 현실화하여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가 추락해 죽어버리고 싶었다.


비정상적인 거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죽어버려도 마땅한, 남들과 엮이는 게 불가능한 존재다.


그러면 네가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 제대로 치료받고 약 먹고 상담도 받고 그러면 되지 않느냐,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의사가 한 말은 나를 더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다. 의사는 내게 사실상 불치병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관리로 낫는 일도 있다고 했지만, 그건 소수일 뿐이었고 그 소수에 내가 든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럼, 이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두려운데 현실을 자각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든데.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났으면 나의 병에 원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밑바닥부터 시작했으니까. 그게 당연한 거로 머릿속에 박혀 뽑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이미 고점을 겪어 버렸다. 부모님의 따뜻한 손길과 친구들의 뜨거운 우정과 한없이 녹아내리는 사랑을 겪었다.


그렇기에 고점에서 저점으로 추락하는 이 기분을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신이 내게 정상적인 일상의 행복을 준 건 나를 배반하기 위함이었다. 비정상적인 구렁텅이에 그리고 사지로 내몰기 위해 준 것이었다.


이리도 매정한 세상에 등을 돌렸다. 내가 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결코 좋은 말은 아니다. 그 인정이라는 건 부정적인 관념에서 돌아온 단어니까.


등을 돌리고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사실 쉽지 않았다. 주변은 계속해서 나를 돌려놓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런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돌려놓으려는 사람도 점점 줄었다.


그렇게 세상에 고립되었다. 이 좁은 방 안이 나만의 세계의 전부였다.


나는 정신적 사형을 당했고 이미 잘려버린 목은 다시 붙지 못하는 것처럼 데굴데굴 굴러가 사람들 앞에 놓일 뿐이다.


잘려버린 목을 보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민이나 동정의 감정이 아니다.


끔찍함, 잔인함과 비슷한 감정이 주류를 이룬다. 그들의 시선에서 나도 끔찍하고 잔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