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살갗이 찢어져도 흉터가 생길 시간은 없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by 집안의 불청객

찢어진 살갗은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 그렇기에 흉터가 남았고, 자연적 치유는 불가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산다고 말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그 상처가 크기에 따라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상처의 크기는 사람마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그렇기에 아물고 나서도 흉은 형태를 띠게 된다.


머릿속에 박혀버린 인식과 고정관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나만의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살게 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하며 스스로 한계를 세운다.


그 한계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한계점을 알게 해주는 게 노력이니까.


계속해서 늪으로 빠지는 과정 중 하나다. 발버둥을 치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가만히 있어도 들어가는, 그저 속도의 차이이다.


언제부터 늪에 빠졌냐고 고민도 해보았다. 그건 시기가 늦은 이미 중증을 입은 마음에 관한 후회였다.


후회는 더 아프게 만든다. 과거를 딛고 현재를 살기보다 과거에 묶인 현재를 살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묶인 현재를 살고 있다.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찢어진 살갗을 떠올리며 흉터를 바라본다.


흉터는 크게 나 있고 보기가 싫을 정도다. 흉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지우고 싶다. 그런데 지우기 위한 비용이 너무나도 많이 든다. 돈, 사랑, 우울, 기쁨, 슬픔, 대인관계 등을 알맞은 비율로 섞어야 한다.


내게 감정이라는 물건은 구매하기 아주 까다로운 것이다. 하나를 살수록 두 개를 내어주어야 하니까.


내어준 두 개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아무거라는 말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중요하고 꼭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개를 사기 위해 자꾸만 두 개를 내어준다. 내 감정은 남들과 달리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에.

남들의 들리는 말로는 버려야 하고 하찮은 값싼 감정이라고 한다.


내 감정은 몇 원짜리일까, 생각해 본다. 남들이 가지지 않기를 원하는 것, 그렇기에 두 개를 내어줘도 세 개를 달라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몸으로 표현하자면, 내 감정은 찢어진 살갗과도 같다. 어느하나 안정되고 확립된 게 없다.


게임에서 나오는 극악의 확률로 나타나는 아이템을 얻는 그런 도파민조차 없다.


왜냐하면, 극악의 확률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누가 찢어진 상처를 보고 좋다고 하겠는가.


그렇게 좋지 않은 말을 먹고 억지로 봉합된 상처는 크게 흉이 진다. 흉터는 이제 남들의 시선에 강제적으로 공개된다.


그들의 시선이 나의 흉을 더 가리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당당히 보여주고 이겨내는 게 아닌, 숨고 회피하기만 한다.


당당해지지 못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기만 하기에, 무엇을 긍정으로 답하는 것보다 부정적으로 말이 앞선다.


능동적인 모습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수동적인 나만이 방 안에서 혼자 남는다.


그 누구도 찾지 않는 보일러조차 들어오지 않는 작은 방에 갇혀 있다.


따뜻함이라는 온기를 잃어버리고 두꺼운 얼음판 위에 홀로 서 있다.


얼음판을 깨면 그 아래는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얼음물이 나를 집어삼킨다.


집어삼키는 끝은 비루하다. 찢어진 살갗에서 나오는 뜨거운 피와 차가운 물이 닿게 된다.


압도적인 차가움에 피마저 온기를 잃어버리고 몸뚱이는 그저 물고기들의 먹잇감이 되어버린다.


뜯겨버리고 찢겨버린 몸뚱이와 정신은 이제 아물 시간조차 주지 않는 모양이다.


흉터가 생겨서 스스로 자각하기까지의 시간도 이제는 허락되지 않나 보다.


느리게 천천히 흐른다. 고통받는 순간이 더 자극되도록 말이다.


행복한 기억마저 사라지는 어떻게 보면 흉측하고 보기 싫은 살갗에 덮어진 순간처럼.


그 순간이 기억나기 싫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무의식중에 계속해서 나를 건드린다.


상처에는 계속해서 진물과 피가 도드라지게 보이고 쓰라리며 아프다.


왜 내게는 점점 흉터가 생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가, 그나마 상처가 아물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찢어진 살갗이 나아지면 다시 그 위에 새로운 상처가 생긴다. 흉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점 거대한 상처가 말이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주었으면, 조금의 여유라도 주었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