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릿속에 꽉 채워졌다. 고난, 역경, 실패 등 모든 것들을 통틀어서 말이다.
온종일 그런 생각들을 하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피폐한 채로 내 인생의 종점을 인정했다.
당시에는 인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생각의 단일성은 한길로만 갔고 그 길 끝에는 처참함만이 있었다.
온종일 가득히 메운 생각들은 나의 부정적인 면모만을 드러냈다.
아침을 먹으면 내가 이렇게 식사해도 되는 사람인가 싶었고 길을 걸으면 다른 사람과 육체적 공통점만 존재하는 모자란 사람 같았다.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자 복잡해졌고 결론은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마음을 실천하면서도 의미를 부여했다. 내가 죽으면 힘들어지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다만, 죽어서까지 폐를 끼치는 내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다.
의사와의 상담의 끝은 언제나 약물 증량이었다. 초반에는 간단한 우울증으로 판정을 받았던 것이 조현병까지 와버렸다.
약물의 증량은 끝이 없었다. 오죽하면 동의서를 받는 지점까지 도달해 버렸다.
그것은 나를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온종일 멍한 상태와 잠을 반복하게 했다.
그 상태가 어쩌면, 더 편했다. 잠은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도구였다.
문제는 일어났을 때였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멍한 상태는 행동의 제동을 걸었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도,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까먹었을 때도 있었다.
나의 자아가 존재하는지에 관한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약물으로도 생각을 막을 수 없던 것이다.
그 이후로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일어나면 식은땀이 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멍한 정신도 약도 잠도 무엇하나 나를 구원 해주지 않았다. 자아를 잃어버린 나는 나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언제나 미달이었고 특출나지도 않았고 평범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이 쉽게 하는 걸 난 해내지 못했다. 적응의 동물이라는 사람이라는 게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다.
사회 속에 섞일 수 없다는 추한 모멸감이 들었다. 다시 또 물음으로 돌아와 나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했다.
존재 이유보다 소멸 이유의 나열이 더 많았다. 마음은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기운 마음은 이제 이기적으로까지 번졌다. 그 이기적인 마음은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도 나의 만족을 갈구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이득을 위함이 아니다. 같이 죽자는 심보와도 비슷했다.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었다.
즉, 타인조차도 배제한 사회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자아의 분열은 타인에 관한 무관심이었고 그것은 도덕이라는 윤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위법은 아니었다. 다만, 초등학교 때 배우는 도덕 문제조차도 나에게는 풀 수 없는 고난이 되었다.
어려운 문제가 아닌데도 누구나 쉽게 풀 만한 문제도 접근하기 힘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 시부터 이십사 시까지 꿈꾸지 않는 영원한 잠에 빠지고 싶었다.
남들에게 꿈은 대부분 목표, 지향점, 희망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꿈이라는 건 정신적 스트레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목표도 지향도 희망도 없었기에 꿈은 있든 없든 아니, 없는 게 더 나은 삶일지도 몰랐다.
생각을 멈추고 사고를 멈췄다. 그저 본능만 남아 먹을 것을 먹고 숨을 쉬고 잠을 자는 동물에 불과했다.
어쩌면, 동물보다도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자기들만의 사회라는 것을 만들어 지내는 일도 있으니까.
이제 나는 생각을 포기하려 한다. 온종일 가득 메웠던 매캐한 연기로 뒤덮인 머릿속을 정리한다.
창문을 열어 환기할 생각도 없다. 그저 이 매캐한 연기 속에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내버려두려고 한다.
그게 나의 마지막 종점을 언제 찍을지는 모른다. 다만, 언젠가는 그것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도달하고 나면 생각이 멈추겠지, 온종일 괴롭히던 모든 걸 떨쳐낼 수 있겠지.
나는 마지막까지도 이기적이고 도덕을 위반하며 폐를 끼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지 않았던 일관된 세상이 참으로 서럽게 느껴진다.
서러움 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구원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