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길게 살지 않은 인생이다. 고작 25년밖에 살지 않았다. 누군가는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라톤에 정해진 코스는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나보다.
누군가에게는 길게 지평선 너머 뻗어있는 길이지만, 나는 엎어지면 바로 선이 닿을 그 정도인가 보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이것저것을 찾아봐도 살고 싶지 않다는 깊게 우러나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이 아닌, 언제 죽으려나 싶은 그런 생각이 든다.
단편적인 소설처럼 내 서사는 이미 거의 끝을 다 달려 나간 채로 죽어있다.
살아있음을 깨닫지 못하기에 나는 달리기하는 게 아니라, 엎어지고 있는 거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만들어서 앞에 있는 그걸 장애물이라 삼아서 남들과는 다른 다리를 가졌다는 말을 만들어내서 말이다.
인생의 줄거리를 나열하면, 온통 부정적인 것들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왕따, 정신병, 폐쇄병동, 자퇴, 부적응 등 나열할 수 있는 단어는 그렇게 많음에도 저런 것에 국한되어 있다.
나의 인생 줄거리에는 기승전결 중에 승과 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기와 결만 남아있다.
그런 이유는 올라가는 부분이 없으니까, 끊임없이 내리막길만 걸었기에 발단과 결론만 뜯어먹히지 않았다.
한때는 나도 오르막길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장편 소설의 줄거리를 작성해 봤다.
꿈, 희망, 직장, 소원, 소망 따위의 것들 말이다. 그것들은 고문과 다름없었다.
잠에서 깨면 사라지고 잡을 수 없는 거리에 있으며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생을 끝내는 지점만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고 편안해질 테니까.
고통스러운 지점에만 머무르다가 한 번에 꺾여버리는 것. 아니, 꺾이는 게 아닌 그대로 종점을 찍어 마무리하게 되는 것. 그게 내가 진정 원하는 결말이다.
달리고 있지 않다. 걷고 있지도 않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무엇을 하든 흥미가 생기지 않으며 앞으로의 생활만이 걱정이다.
이런 걱정을 하고 싶지 않다. 돈, 여유, 일상을 지우고 하얀 도화지로 남고 싶다.
근데, 도화지에 적혔었던 흑연의 흔적은 지워도 남기 마련이다.
답은 삶이라는 도화지 자체를 찢어버리고 파쇄기에 넣고 불태워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 그런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을 했나 나에게 묻는다면, 그 질문에 흔쾌히 답하지 못할 거다.
이상하게도 죽으려고 하면, 마음속에 두려움이 심어졌다. 아프지는 않을까, 누군가가 나를 기억 속에서 떨쳐내지 못할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찾으려고 고뇌하고 종이에 아무거나 하나씩 적어보았다. 이유는 어려운 데 있지 않았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이 내 죽음에 무언가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단편적인 줄거리라도 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싶었다.
사람의 인생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 인생에서 무언가를 건졌느냐 아니면 허무하게 떠나보냈냐가 나한테는 중요했다.
문제는 이게 나의 삶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미지수였다.
위에서 말했듯이 희망적인 것은 고문이라 생각했기에 어쩌면, 헛된 마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마저 고문이라 단정 지으면 나의 죽음에 후회할 것 같았다.
타협을 하기로 했다. 적어도, 원한 것을 이룬 후에 그때 가서 생각해 봐도 늦지 않겠다고.
단편적인 줄거리라도 압도적으로 재미있고 흡입력이 강한, 누구나 좋게 평가할 만한 인생을 만들어보자고.
오래 살지 않아도 된다. 이건 부정적인 문장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얇고 가느다란 인생보다 굵고 짧은 인생을 좋아할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 엎어지는 나를 일으켜 세워 달리자는 말이 아니다.
엎어지고 있는 도중이지만, 사춘기가 찾아와 급격하게 키가 커져 더 멀리 엎어지자는 말이다.
적어도,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 살면서 무언가를 한 번이라도 이루고 싶다.
내 인생은 굴곡이 많은 단편소설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소설 속에는 수많은 사건이 빽빽이 있어 줄거리가 아주 길었으면 좋겠다.
단편이지만, 장편의 줄거리를 만들고 싶다. 나는 크게 엎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