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덤덤한 척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by 집안의 불청객

과거를 얘기할 때 언제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 대단한 불행이 아닌 것처럼 하기가 그 의무였다.


삶에 찌든다는 표현처럼 피곤, 우울, 강박 등 내 정신에 방해되는 것들을 감당하려면 덤덤한 척은 필수였다.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는 몰라도 조금 거리가 있는 타인에게는 현재형으로 말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너무 힘들다고, 지친다고, 살고 싶지 않다고 이런 말들을 예전에 이런 적도 있었다는 식으로 돌려 말한다.


덤덤한 척해야 그리고 그런 재해를 이겨냈다는 식으로 말해야 그들 속에 섞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제일 큰 힘듦이었다. 왜냐하면, 전체의 나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니까. 나의 일부분도 아니고 거짓으로 꾸며낸 모습을 보여줘야 했으니까.


그것은 광대와도 같았다. 진한 분장을 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것처럼.


광대보다도 못할 수도 있다. 과거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웃게 만들지 못하고 공감하는 척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상대가 공감하는 척도 사실 듣기 싫었고 역겨웠다. 알지도 못하면서 한마디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면 과거 얘기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꼬리표를 달게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을 궁금해한다. 그 이유는 자신과 비교해서 우월함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대가 무너질수록 자신의 벽은 더 단단히 견고해지고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 앞에서 주눅이 들고 우울함에 심취하며 덤덤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그렇기에 나는 그 앞에서 안타까움을 받는 불쌍한 강아지가 아니라, 과거의 역경을 이겨낸 위인이 되어야 한다.

위인이 되지 못하면 적어도, 견뎌냈다는 점을 부각하며 한 단계 성장했음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나를 알아준다. 근데 이 과정에서 나는 심하게 무언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과연 덤덤한 척을 하는 것이 옳은 걸까. 아니면, 애초에 스스로 피하고 감추고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걸까.


어떤 쪽을 선택해야 더 정상인에 가까워지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결론을 짓지 못한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뱉었으면 책임져야 한다. 그 책임은 오로지 나의 몫이고 감당해야 할 의무다.


그리고 내가 뱉는 말은 보통 사람의 인생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또한, 나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안다. 하지만, 강점이길 바라면서 뱉는 것이다.


하지만, 바라는 바를 열심히 하면 현실이라는 벽의 경계를 허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들은 내게 덤덤한 척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물어뜯을 수 있는 여지를 바랐다.


그 여지를 주어버렸고 그들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끔 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떠올린다는 건 긍정적인 게 아닌 부정적 요소다. 나와 비교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치켜올리는 수단으로 사용될 테니까.


그것을 알게 된 건 친구들의 말이었다. 특히, 지금은 교류하지 않는 이들에게서 많이 들었다.


‘너의 우울함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이 한마디 안에는 많은 의미가 축약되어 있었다. 그들에게서 나의 우울함을 이겨낸 일화는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가 아닌, 자기과시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 친구라는 관계에서 우울 호소인으로 자리잡혀 자신들에게 감정을 배출한다고 느낀 것이다.


이제는 덤덤한 척을 해야 할 때가 아니었다. 입을 닫고 말을 아끼고 귀를 열어 덤덤해야 했다.


누군가가 농담을 건넸을 때는 웃음을 선사하고 나에 관해 물으면 최대한 답을 회피하는 게 상책이 되었다.


과잉보호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내가 뱉은 말들이 마음을 짓누른다.


짓누른 마음은 압력이 가해지고 얼마 가지 않아 버티지 못한 채 터져버리고 만다.


그 터져버림을 이미 몇 번 경험했기에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괏값은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내 과거를 들먹이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힘듦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내 모습은 덤덤한 척이 아니라 덤덤해진 나니까.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표하는 웃음을 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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