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허덕였다. 목이 말랐고 허기가 졌다. 항상 그래왔다. 남들과 수없이 비교당하면서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물리적인 배고픔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은 유복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허덕였다. 남들에게 맞춰가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심각한 결점이 존재했다. 나는 뛰어나지 않다는 것, 특별한 재능 하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배고픔은 더 깊어만 갔다. 그에 반해 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룬 결과라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남들보다 부족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허기가 계속 질 때마다 나는 아무거나 주워 먹기 시작했다.
그 아무거는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듯이 나도 똑같았다.
정신이 고장 나버렸다. 아니, 탈이 나 버렸다. 의사는 뇌의 영양실조라고 말했다.
수액을 맞기 위해 폐쇄병동으로 향했다. 그러면 나아질 줄 알았다. 조금이라도 맛있는 음식을 섭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전혀 아니었다. 그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 즐비했다. 그리고 여기의 세계와 밖의 세계는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정리하자면 이곳은 현실에서 사회에서 제구실도 못 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 모이는 허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극한의 배고픔으로 치닫는 사람들이 음식은 먹지 못하고 필요한 영양분만 공급되는 수액을 맞는 장소였다.
그런 그들과 같이 있는다는 건 내가 얼마나 배고팠는지를 확인해 주는 용도밖에 되지 않았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약으로 매일 멍해 있었고 감정이 죽은 로봇처럼 무표정만 일관했다.
퇴원 후 현실로의 복귀는 그냥 배고픔의 연장선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안부를 물을 때 조심했다.
그 조심은 나를 더 배고프게 했다. 이미 그들 머리에서 하는 생각이 행동으로 바로 표출되지 못했다. 거름망을 쓰고 난 후 내뱉는 순간 이미 우리는 너와 다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다. 혼자 방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혼자는 편했다. 비교할 대상도 남처럼 살려는 노력도 필요 없었다.
배고픔에서 겨우 벗어나 허기를 달랠 정도가 되었을 때 주변에서는 괜찮아졌으니 다시 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영양실조로 쓰러졌다가 수액 한 팩만을 맞은 상태였다. 이걸 과연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함부로 남의 배고픔을 평가하는 게 싫었다.
갈증을 해결할 물도 주지 않는 사회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지는 없었다. OX퀴즈랑 다름 없었다. 그중에서 X를 선택하면 다시 폐쇄병동을, O를 선택하면 괜찮은 척을 해야 했다.
인간으로서 허기를 달랠 정도의 대접을 받으려면 해야 하는 대답은 바로 O만이 존재했다.
이제 악순환의 시작이다. 배고픔을 참고 나쁜 것을 먹거나 계속 굶으면 장기는 점점 멈춰간다.
내 머릿속도 멈추고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면역이 취약해지고 병에 걸리기 쉬워진다.
O만을 선택했어도 X에 한 번 걸린다. 바로 O를 선택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O를 선택하면서 쌓여버린 썩고 곰팡이 핀 음식들을 먹었다. 그렇기에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서는 그럼 잠깐이나마 배고픔을 해결해 줄 약을 처방해준다.
급할 때 그것을 먹으면 괜찮아진다. 하지만, 이 약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먹을수록 효과가 점점 떨어졌다.
그러면 다시 배고픔을 더 많이 채워주는 약을 처방받는다. 그것의 반복이 일상이 된다.
허기에서 배고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계속해서 연명하고 있다.
나에게 과연 배부름이 찾아올까. 잠깐의 배고픔만을 해결하면서 살아온 나에게 그것은 천국과도 같다. 즉, 허상이다.
지금은 배부름을 포기했다. 배고픔만 잠깐 해결한다면 그 잠깐이 행복은 아니어도 불행의 탈피라면 그것에 그치기로 했다.
언제나 배고팠다. 만족을 모르고 불만족을 달고 살았다. 성공을 맛보지 못하고 실패만을 했다.
남들이 다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통을 몰래 뒤져 아무거나 집어 먹는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