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발자취를 남긴 그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나에게 늘 웃음을 선사한다.
그것이 이 친구의 매력이다. 나의 슬픔에 기쁨에 억지로 공감하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얘는 공감이란 걸 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우린 우정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물질적이거나 사리사욕 하나 없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노력하니까.
우리의 대화를 보면 알맹이 없이 일회성으로 즐기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그 대화는 뇌를 빼고 말하는 듯이 흐름을 타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 부분이 좋다. 복잡하게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 말이다.
흉을 봐도 서로 농담으로 즐겁게 웃어넘길 수 있는 그런 오고 가는 말들.
어쩌면, 서로 칭찬하면 왜 그러냐며, 어디 아프냐며 안부를 묻는 그런 사이.
그런 사이라서 난 네가 좋다. 나의 예상 범주 안에 들지 못하는 너는 언제나 신선함과 새로움을 반겨준다.
가끔 어려운 문제에 관해 토로하면 자신이 겪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다시 묻는 모습이 좋다.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억지 공감을 하는 행동보다 너의 그 진실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런 우리에게도 서운한 적이 딱 한 번씩 있었다.
가정에서 불화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불안감에 눈물을 터뜨렸다.
고민도 하지 않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에서 내가 울자, 그는 말했다.
“이딴 장난할 거면, 앞으로 전화하지 마라.”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기댈 수 있는 곳은 너 하나였는데. 그렇게 말한 네가 원망스러웠다.
나중에야 네가 사과했지만, 나에게는 아직 기억에 깊숙이 박혀 있는 송곳이었다.
그런 깊은 송곳은 아니었지만, 여러 개의 뾰족한 못을 하나씩 너에게 박은 적이 있다.
네가 대학교에 가고 잘 어울리지 못할 때 내게 도움 요청을 하려고 했다.
그때는 내 앞에 놓인 관계에 급급해 전화가 오면 거절하기에 바빴다.
아무런 답장 없이 거절 메시지 하나만 도착한 너의 연락망이 얼마나 쓸쓸할지 몰랐다.
술자리에서 이 두 얘기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의 관계가 깊다고 생각했고 서로 없으면 쓸쓸한 정도라는 게 아닐까.
지금의 너는 그때보다 성장했고 나도 그렇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대한 태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같이 보내고 지금까지도 시간을 공유한다.
공유한 시간은 어릴 적 유년 시절에 머물러있다. 그 시절에 추억을 담고 우정을 담아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만약에 네가 없다면, 나의 즐거움이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닌, 통째로 무언가에 삼켜지는 기분일 것이다.
그 반대로 내가 없다면 네가 무엇을 할지 안다. 왜냐하면, 예전에 내가 죽는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으니까.
그때 아주 힘들었던 나에게 너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말을 내뱉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액수를 낼 거야. 그리고 너의 장례식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할 거야.”
그건 나를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나를 생각하는 네가 있다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외면했다.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해 주어야만 하는 존재인 가족 외에도 이런 축복을 받고 있었으니까.
피도 섞이지 않고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낸 게 전부였는데. 그런 존재가 나를 과거의 기억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우리는 의지하는 친구라고 하기에는 모호하다. 그 이상의 어떤 단어로도 정립할 수 없는 관계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들에 관한 소식을 가장 먼저 네게 알린다. 너는 너에게 일어난 소식을 가장 먼저 내게 알린다.
그 소식이 비극이나, 짜증이나, 기쁨이나, 즐거움이나 서로에게는 언제나 질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정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 친구라는 표현은 너무 미약한 것 같아서 말이다.
형태가 없는 약하디약한 말일 수 있겠으나, 형태가 없기에 어떠한 것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같이 보낸 시간이, 공간이, 기억의 밧줄은 너무 굵어 억지로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할 거다.
그만큼, 나는 네가 좋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편해지는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