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발자취를 남긴 그들
제일 힘들 때 매일 술을 마셔주던 사람이 있었다. 내가 행패 부려도 다 받아주고 말도 들어주었다.
매일 자살한다고 말하면 말리기에 급급하고 진심으로 하지 말라고 울음도 터뜨렸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진심으로 죽을 것 같은 날이 있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친구는 걱정 끝에 그리고 고민 끝에 전화 한 통을 걸었다.
나는 만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그 모습을 탐탁지 않아 할 부모님이 잠시 의자에 앉으라고 하셨다.
의자에 앉자마자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친구가 전화한 것을 말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다. 취기가 넘쳐흘렀어도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생전 술 한 잔 드시지 않던 아버지가 소주를 가져와 같이 마시자고 말했다.
술이 들어가고 다시 한 번의 만취가 찾아오자 나는 울음을 쏟아내며 말을 토해냈다.
부모님이 그때부터 나의 상태를 알게 됐고 걱정하기 시작하며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지 노력했다.
이 모든 걸 바꿔준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매일 술을 마셔주고 달래던 그 친구였다.
그렇기에 그가 인륜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그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어떤 친구보다도 소중하고 순위를 매기는 걸 싫어하지만, 친구로서는 그거 일 순위다.
그가 만취한 채로 나에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도, 식당에서 소리를 질러도, 누군가와 싸워도 그를 토닥이며 달래줄 것이다.
그가 바빠서 삼 개월 동안 보지 못한 적이 있다. 그는 다른 친구와 술을 마시던 중 내 생각이 나서 나를 불렀다.
다른 친구가 그에게 술을 강요하자 나는 끊은 술을 대신 단번에 마셔주었다.
친구는 또다시 마음속에 숨겨둔 나의 다른 자아가 나올까 봐 걱정했고 그에 관해 화를 냈다.
그가 화내는 이유를 알았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다고 계속해서 말해주었다.
그러더니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취한 채로 말했다.
“난 네가 죽는 게 두려워.”
꾹꾹 눌러 담아서 들릴 듯 말 듯이 조그맣게 말한 진심이 내게 전해졌다.
그는 아직도 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옛날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불안해하나보다.
좋은 친구로 남고 싶었는데, 걱정만 시키는 친구가 되니 마음이 좀 착잡했다.
매일 즐길 거리를 말하며 행복한 모습만 보여야 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너는 나의 진심을 알아 좋다.
이제는 내가 어깨를 내어 네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요새 네가 전화로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심정이 무너진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하다.
싫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내가 해결해 주지 못할 영역이라는 게 너무 안타깝다.
너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지만,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꽤 지나고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너의 최선은 나에게 닿았다.
무려 가족의 인식이 바뀌었으니까. 네가 전화하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중학생부터 함께 했고 술과 담배도 너에게 배웠다. 나쁘지만, 그걸 원망하지 않는다.
뭐든 함께한 순간이 제일 행복했으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비밀 하나 없었으니까.
생각해 보니 우리가 딱 한 번 싸운 적이 있다. 내가 데려온 친구와 네가 취해 말다툼했다.
그때 너는 내가 그만하라고 말해도 듣질 않아서 크게 밀친 적이 있었다.
그냥 그 친구를 다른 곳으로 보냈으면 해결될 문제였는데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너는 내게 실망했고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넌 무조건 내 편이었는데. 그러지 못한 내가 미웠나 보다.
당황한 나도 곧바로 사과하고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진정이 된 너는 마음속에 약간의 엉킴이 있어 보였지만, 괜찮다고 넘어갔다.
이제 너에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네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나는 너의 손을 들어 올려줄 것이다.
십 년 이상 함께한 추억을 곱씹으며 우리의 불행도 행복도 같이 경험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불안이라는 폭우가 내려오고 나서 이제는 땅이 더 단단해졌다.
흙탕물이 튀기지 않고 습하지도 않은 날씨가 선선한 바람을 타고 우리에게 올 일만 남았다.
같이 누리자. 앞으로의 펼쳐지는 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