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발자취를 남긴 그들
공감하는 것 같다. 서로의 말을 듣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만을 내뿜고 있다.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할 때마다 어쩌면,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실상은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기만을 바라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크나큰 관심이 없다.
술에 취해 자각할 정도로 ‘내 얘기만 해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뱉을 때도 각자의 인생에 관해서만 말한다.
성공을 빌지만, 그게 진심인지도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우리 둘 다 그리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에 놓여있기에 통하는 부분이 있다.
실패가 우리를 연결하는 고리인 게 역설이다. 둘 중 하나만 성공하면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 그게 딱 우리의 연결된 선 하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서로의 필요성에 국한되어있다.
술을 먹고 싶을 때 부르고 돈이 필요할 때 찾는 우리의 관계는 우정이라 보기에 약간 거리감이 있다.
잔을 부딪칠 때면 둘도 없는 죽마고우가 되지만, 각자의 집에 도착하면 동떨어져 있는 혼자가 된다.
돈을 빌려주면 의리 있는 친구로 남지만, 갚을 때는 필요성이 떨어진 타인으로 남는다.
나는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내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용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정이 아닌, 필요성에 국한된 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가 복잡한 인간관계로 아니면, 어쩌면 단순한 인간관계로 주변인물들을 잃었을 때 나는 곁에 있었다.
내게 닿은 큰 사건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
그때도 너는 나를 중요시한 게 아닌 떠나간 이들을 붙잡으려 했다.
눈앞에 있는 나는 언제나 있을 것처럼 행동했고 그들의 뒷담을 나누었다.
이런 관계가 어떻게 십 년이 넘도록 유지되는지는 알 수 없다.
있던 정도 없던 정도 살아남을 만큼의 시간인데 신기하게도 우리 사이에 벽은 깨질 생각이 없다.
벽이 아니라 어쩌면 틈일 수도 있겠다. 벽은 가로막는 것이고 틈은 벌어져 있는 것이니까.
서로의 관심사도 다르고 인생도 다른, 접점이 없기에 틈이 더 맞는 말이겠다.
그래서 가짜 공감을 한다. 내가 수상을 할 때 너는 간단한 답과 축하 메시지만을 보낼 뿐 다른 것은 없었다.
그 반대로 네가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나도 같은 반응만 보였을 뿐 그 이상의 것을 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뭘까? 우정일까? 아니면 비즈니스일까? 어떤 관계가 우리를 정립할 수 있을지 아직도 알 수 없다.
이것을 슬픔을 나눠봐야 알 수 있다. 행복만 공유하고 그 속에 있는 실패를 은연중에 알지만, 꺼내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실패 사이의 행복이라는 점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 사이다.
우리가 슬픔을 나누면 계속 볼 수 있는 관계일까. 아니면 그 이후로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관계일까.
생각해 보니 그런 적이 있다. 네가 힘들다고 말하며 가정사를 꺼낸 적이 있다.
완전한 친구라면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쏟아냈을 것이다. 동시에 진심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척만 했고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도 나의 가정사나 진로에 관한 고민 그리고 실패를 꺼냈다.
너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하는 척하며 술잔을 건네고 안주를 집어 먹기에 바빴다.
우리는 서로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다른 말은 내뱉고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행동을 취했다.
이렇게 유지되는 관계를 정리해야 할까 싶다. 하지만, 필요성 하나로 이어진 관계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기에 매우 모호하다.
우리는 친구가 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원래 친구라는 게 이런 걸까. 아니면 애초에 이런 게 우정일까.
지금만큼은 이 물음에 관해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너는 이런 모습인데 네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어떤지.
어떻게 된 게 우리의 인생은 함께 한 시간이 그토록 길었다. 그러나, 시간이 무의미할 만큼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필요성이라는 의미를 빼면 시선도 주지 않고 손도 잡지 않았으며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친구이면서 친구가 아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남이면서 남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