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에 발자취를 남긴 그들
네가 나에게 준 사랑보다 상처가 많았다. 억압, 통제, 족쇄, 썩은 동아줄 등 이런 표현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의 첫 시작은 너무나도 갈렸었다. 서로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었으니까.
남들과 이어주기 위해서 노력했던 과정이 사랑이라는 발전으로 이루어졌다.
그 사랑은 맺혀지면 안 됐다. 둘 다 좋지 않은 감정, 좋지 않은 추억들로 육 년이라는 기간을 꽉꽉 눌러 담았으니까.
사랑이라는 말로 서로를 묶어두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내용물을 포장하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언제나 이 관계를 유지할지 모른다고 말하고 서로의 흉을 봤다.
뒤에서 그런 말들을 내뱉고 앞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싹 닫고 예쁜 말만을 지껄였다.
진실 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우리는 연인이라기보다 비즈니스에 가까웠다.
우리는 자석처럼 한 명만 등을 돌리면 자동으로 멀어지는 관계가 다가왔다.
누가 먼저 등을 돌릴지 서로에게 떠밀었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에게 말할 때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였다.
이별마저도 남의 눈치를 보며 한다는 점. 이게 과연 사랑의 끝맺음일까 싶다.
누군가는 말을 꺼내야 했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야 했다.
마음속에 깊이 감춘 것을 꺼내 말해야 했다. 헤어지자고 말한 것은 나였지만, 전에 네가 말한 그것이 타당한 이유가 되었다.
“나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우리는 거짓말이 뒤섞인 가짜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걸.
처음에는 부정했다. 우리는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네가 말한 ‘정말로’에서 있다. 붙잡고 질질 늘어지는 관계가 지쳤다는 걸.
솔직히 완전히 잊지는 못했다. 목소리, 외모, 전화번호 등이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하나씩 삭제되고 있다. 처음에는 꽤 예전이었던 추억들이 머릿속에서 빙빙 맴돈 반면에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를 생각한다고 해도 마음이 불안정하거나 옛 추억에 잠겨 행복한 상상들을 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아까웠다. 육 년 동안의 날려버린 최악의 시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을 뽑으라면 너를 만나기 전으로 돌려버릴 만큼.
난 그때의 나도 싫고 너도 싫다.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진실을 감추고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웃던 그 모습들은 끔찍했다.
끔찍함 속에서 피어나는 것들은 어둠과 악몽 그리고 추악함이었다.
나는 이런 게 비즈니스 관계나 친구 사이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터놓는 게 더 편했고 친구들에게 추악함을 얘기하며 공감을 얻는 게 더 쉬웠다.
이유는 네가 나를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 틀에 스스로 갇히고 나까지 끌어들여 같이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틀은 완전히 각져있었으며 매우 좁고도 좁았다. 그곳에서 둘이 안락하게 살 수 없었다.
틀은 대부분 네가 만들었고 그 안에 주로 갇혀 있는 시간이 긴 것은 나였다.
담배도, 술도, 친구와 부모의 관계도 네가 마음에 안 들면 넌 짜증을 부렸다.
자신의 틀에서 벗어난 것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처럼 행동했다.
육아도 이것보다 쉽고 덜 스트레스 받겠다 할 정도로 너는 히스테리에 미쳐있었다.
우리가 헤어진 지 벌써 반년 정도가 되었다. 너는 다른 사람을 만나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네가 내려준 썩은 동아줄을 잡지도 않으며 무거운 족쇄에 벗어나고 견고한 틀을 깨부쉈다.
한때는 너를 잊지 못해 난리였는데 지금은 잊고 싶어서 난리다. 나한테 있어서 이제 너는 잊어야 하는 아주 작은 불편한 조각에 불과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나의 편견에서 벗어났다. 실제로 정신과 증세도 호전되었다.
우리는 서로 붙잡고 있던 게 아니다. 네가 나를 덫에 걸린 짐승처럼 옥죄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연락해야 할 의무가 사라져서 좋다. 밥을 먹을 때면 사진을 찍어 보내지 않아서 좋다. 쉬고 있을 때면 혼자의 여유를 만끽한다. 잠에 들 때면 억지로 정신을 붙잡고 전화하지 않아서 좋다.
나는 너를 좋아한 것보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과정이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