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틀림과 다름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그녀는 언제나 나를 가르치려는 태도로 일관했다. 자기 생각을 나에게 주입했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부렸다.


그녀에게 맞춰주었고 모든 것을 따랐다. 마치 강아지가 재롱부리는 듯이.


어떻게 보면 학대였다. 재롱을 부리지 않으면 관심을 주지 않았고 따르지 않으면 배척했다.


왜 이런 선택 따위를 하냐는 그녀에게, 자기 생각이 맞다고 우기는 그녀에게 할 말은 단 하나였다.


“미안해.”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머릿속에는 씁쓸한 여운만이 남았다. 그 여운은 무엇이었을까. 체념한 나일까. 거슬림일까. 아니면 두 가지 모두일까.


나도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다.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하며 내 의견을 주장하고 싶었다.


지금은 후회한다. 한 번이라도 그러지 못한 것을. 마지막 순간마저도 그저 네 말이 맞다고 넘겼다.


바람을 피운 그녀에게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헤어지자고 말한 쪽은 나였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울면서 말했다.



그래서 소리치지 못했을까.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떠나간 후 많은 후회가 담겼다. 그 후회는 너와 함께했던 추억을 상기시켰다. 행복과 불행도 느껴졌지만, 너의 의견에 조건 없이 따른 것이 스스로 안타까웠다.


그래서 마음속에 무언가 끓어올랐다. 꾹꾹 눌러 담았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베개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질러도 무엇을 던져 부수고 깨뜨려도 그 무언가는 내려가지 않았다.


가끔 메신저에 그녀의 소식이 올라오면 확인하곤 한다. 무심코 넘기다가 보는 경우도 찾아서 보는 때도 있다.

그녀는 잘살고 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띠고 바람피운 남자와 손을 잡았다.


그것은 원래 나를 보듬는 손이었다. 아니, 길들이는 손이었다. 간식을 주며 이것저것 가르치는 손이었다.


반항하기 위해 뭘 해본 적이 없었다. 따뜻한 손길도 다그치는 손길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에게 있어서 길든 걸까. 야생의 들개가 되어 한 번이라도 물어야 했는데.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은 비슷하다. 너무나도 복잡하여서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찝찝함, 더러움, 상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제일 많이 차지하는 것도 제일 적게 차지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한 것 같다.


연애는 그런 것들의 연속성이었다. 행복을 나눌 때도 불행을 나눌 때도 담담히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그런 척을 해야 했다.


내 처지에서는 분노라는 감정을 연인에게 표출하는 게 큰 실례인 줄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분노를 다른 곳에 나타내야 했다.


그렇기에 일방적인 관계가 시작된 것 같다. 선택지는 좁아지고 서술형 답안지에서 객관식 답안지로 바뀌었다. 그나마 다섯 가지가 있던 선택에서도 OX 퀴즈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제 연애해도 불안감이 뒤따라올 것 같다. 내가 똑같은 선택할까 봐. 똑같은 연애가 될까 봐.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어쩌면 다른 곳에서도 표출하지 못하고 참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사실 그렇게 변한 것 같다. 요즘 들어서도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 못하겠다. 육 년 동안 그렇게 살았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다.


지금은 말하고 싶다. 틀렸다는 대답이 아니라. 우리는 살아온 인생이 다르니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서로 이해하면서 선은 지키자고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틀림이 아닌 다름이었다. 적당한 상식선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상식선이 이상한 사람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틀림이라고 부른다.


그녀에게 그리고 나에게 우리는 달랐다고 그러니까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다름을 인정해야 했다.


다름은 사랑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틀림은 사랑이 아니었다. 한쪽은 주고 한쪽은 받기만 하는 관계였다.


그런 관계는 발전도 이상향도 없다. 그저 육체적 쾌락을 가져다주는 행위에 불과했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법도, 미숙해지는 법도 사실은 본인이 더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하냐, 실행하지 못하냐, 차이이다.


이제라도 생각해 보며 고쳐야겠다. 그래야 새로운 시작이 열릴 가능성이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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