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을 들고 소 먹이러 가다

아빠라는 도서관을 인터뷰하다 09

by 빨간머리키키


매주 같은 요일에 아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내가 질문 하나를 던지면 아빠는 실타래를 풀어내듯이 기억을 풀어내신다.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펼쳐 보여주시는 것 같다.

나는 질문을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열심히 듣고 적기만 한다. 질문과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종종 있지만 그것도 계속 적는다. 그것도 다 아빠가 걸어온 길이기 때문이다.

“아빠, 피난에서 돌아왔을 때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어요?”

“그랬지. A중학교 건물을 인민군 본부로 쓰고 있었어.”

A중학교라면 나도 아는 학교이다. 아빠의 모교이다.

“그럼 계속 전쟁 중이라는 건데 생활은 어땠어요?”

“전쟁 전처럼 소 먹이러 가고 그랬어. 소먹이는 일은 아이들 몫이거든. 그게 얼마나 힘들고 싫었던지 소가 없는 집 애들이 제일 부러웠어. 소를 산에 데려다 놓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미군 비행기가 폭격하는 게 가까이 보였지.”

아빠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내셨다.




<아빠의 이야기_실탄을 들고 소먹이러 가다>

피난길에서 돌아온 후, 나는 총의 실탄과 탄피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별다른 놀잇거리가 없던 그때, 내 또래 아이들에게 총알은 가장 새롭고 흥미로운 장난감이었다. 주로 산에 올라가서 실탄과 탄피를 주웠다. 산에 있는 방공호에 가면 실탄이 무더기로 나올 때가 있었다. 횡재였다. 폭격을 맞고 길거리에 버려진 차에서도 실탄을 구할 수 있었다.

총알에서 얻으려는 것은 화약이었다. 실탄을 단단한 데 올려놓고 돌로 두드리면 탄피의 구리가 늘어졌다. 그걸 빼면 탄약이 나왔다. 나만의 비밀장소에 묻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놀았다.


나는 소를 잘 돌보기 위해 실탄을 사용했다. 소를 먹이려면 산에 가야 하는데 땅벌집 근처에 가면 소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힘으로는 아무리 끌고 밀고 해봤자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었다. 땅벌이 소를 쏘기라도 하면 소는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난리가 났다.


실탄을 구한 뒤, 나는 평소에 봐 두었던 땅벌집 구멍 속에 탄약을 집어넣고는 불을 붙이고 재빨리 도망을 쳤다. 잠시 후 뒤쪽에서 펑하고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땅벌을 소탕했다.

그 무렵, 실탄을 갖고 놀다가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종종 들려왔다.


아이들의 또 다른 장난감은 자석이었다. 그것 역시 버려진 군용 자동차에서 빼냈다. 미군 비행기가 군용차를 주로 폭격했는데, 인민군이 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여름에 소를 먹이러 산에 데려다 놓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미군 전투기가 폭격하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전투기가 비스듬하게 땅으로 활강하면서 기관포를 쉴 새 없이 연발했다. 기관포의 화약 덩어리는 기관총 실탄보다 컸다.


산속에 무덤이 파헤쳐지고 시체들이 훼손된 광경을 볼 때도 있었다. 주인이 피난을 갈 때 두고 간 개들이 배가 고파 저지른 일이었다. 군화를 신고 다니는 민간인들도 있었다. 군인들이 버린 군화였다. 천 재질로 된 군화를 주워 잘 씻어서 재활용한 것이었다.

피난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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