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같은 요일에 아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내가 질문 하나를 던지면 아빠는 실타래를 풀어내듯이 기억을 풀어내신다. 꼬깃꼬깃 접어두었던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펼쳐 보여주시는 것 같다.
나는 질문을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열심히 듣고 적기만 한다. 질문과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종종 있지만 그것도 계속 적는다. 그것도 다 아빠가 걸어온 길이기 때문이다.
“아빠, 피난에서 돌아왔을 때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어요?”
“그랬지. A중학교 건물을 인민군 본부로 쓰고 있었어.”
A중학교라면 나도 아는 학교이다. 아빠의 모교이다.
“그럼 계속 전쟁 중이라는 건데 생활은 어땠어요?”
“전쟁 전처럼 소 먹이러 가고 그랬어. 소먹이는 일은 아이들 몫이거든. 그게 얼마나 힘들고 싫었던지 소가 없는 집 애들이 제일 부러웠어. 소를 산에 데려다 놓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미군 비행기가 폭격하는 게 가까이 보였지.”
아빠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내셨다.
<아빠의 이야기_실탄을 들고 소먹이러 가다>
피난길에서 돌아온 후, 나는 총의 실탄과 탄피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별다른 놀잇거리가 없던 그때, 내 또래 아이들에게 총알은 가장 새롭고 흥미로운 장난감이었다. 주로 산에 올라가서 실탄과 탄피를 주웠다. 산에 있는 방공호에 가면 실탄이 무더기로 나올 때가 있었다. 횡재였다. 폭격을 맞고 길거리에 버려진 차에서도 실탄을 구할 수 있었다.
총알에서 얻으려는 것은 화약이었다. 실탄을 단단한 데 올려놓고 돌로 두드리면 탄피의 구리가 늘어졌다. 그걸 빼면 탄약이 나왔다. 나만의 비밀장소에 묻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놀았다.
나는 소를 잘 돌보기 위해 실탄을 사용했다. 소를 먹이려면 산에 가야 하는데 땅벌집 근처에 가면 소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힘으로는 아무리 끌고 밀고해봤자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었다. 땅벌이 소를 쏘기라도 하면 소는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난리가 났다.
실탄을 구한 뒤, 나는 평소에 봐 두었던 땅벌집 구멍 속에 탄약을 집어넣고는 불을 붙이고 재빨리 도망을 쳤다. 잠시 후 뒤쪽에서 펑하고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땅벌을 소탕했다.
그 무렵, 실탄을 갖고 놀다가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종종 들려왔다.
아이들의 또 다른 장난감은 자석이었다. 그것 역시 버려진 군용 자동차에서 빼냈다. 미군 비행기가 군용차를 주로 폭격했는데, 인민군이 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여름에 소를 먹이러 산에 데려다 놓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미군 전투기가 폭격하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전투기가 비스듬하게 땅으로 활강하면서 기관포를 쉴 새 없이 연발했다. 기관포의 화약 덩어리는 기관총 실탄보다 컸다.
산속에 무덤이 파헤쳐지고 시체들이 훼손된 광경을 볼 때도 있었다. 주인이 피난을 갈 때 두고 간 개들이 배가 고파 저지른 일이었다. 군화를 신고 다니는 민간인들도 있었다. 군인들이 버린 군화였다. 천 재질로 된 군화를 주워 잘 씻어서 재활용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