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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라는 도서관을 인터뷰하다
피난길 중간에 되돌아오다
아빠라는 도서관을 인터뷰하다 08
by
빨간머리키키
Apr 6. 2022
“아빠, 피난길에 고생하셨겠어요. 그럼, 아빠도 부산으로 피난 가셨어요?”
“아니. 우리는 대구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거기 가서 신세 지려고 했었지. 큰아버지께서 설마 국군이 대구까지 밀리겠냐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
“그럼, 대구에는 얼마나 계셨어요?”
“대구까지 가지는 않았어. 피난 중간에 돌아왔어.”
<아빠의 이야기_피난길 2>
피난길의
목적지는 대구였다. 대구는 아직 남한 땅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과 N형님네 가족은 소달구지에 양식과 옷가지, 가재도구를 싣고 자정에 피난길을 떠났다. 걷고 또 걸었다. 해가 뜨기 전에 최대한 많이 걷기로 했다.
전선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날이 밝으면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몰랐다.
계절이 여름인 것이 피난민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낮이 되면 임자 없는 강변에서 홑이불을 텐트처럼 세워 그 안에서 잠을 청했다. 아이들은 바닥에 이불 한 장만 깔고 잠이 들었다.
피난길 중간에 N형님은 신부를 만났다. 본가에서 연락을 받은 신부가 신랑의 피난길에 합류하기 위해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N형님은 봄에 결혼식을 올린 신부와 피난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걸어 군위까지 왔을 때였다. 갑자기 고향에 계셔야 할 큰아버지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셨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우리가 군위쯤 갔을 거라 예상하고 밤새 걸어오셨다고 했다.
“돌아가자. 인민군이 우리 마을에 들어왔는데, 사람들을 해치지는 않더라. 괜히 타지에서 고생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자.”
큰아버지의 말씀이었다. 어른들은 그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낮에는 산이나 강의 물 근처에 터를 잡아 밥을 해 먹고 밤에는 쉬지 않고 걸어서 고향으로 향했다.
전선을 거꾸로 통과해서 집에 도착했다. 일주일 만이었다.
우리 마을로 돌아왔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우물이었다.
동네 한가운데 우물터의 우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그동안 아무도 우물을 안 길어서 그랬던 것 같다.
N형님의 신부도 피난길을 걸어 우리 동네까지 같이 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본가로 돌아가서 그해 가을에 날을 받아 다시 시집을 왔다. 그때 그 형수님이 가마를 타고 형님네 집으로 와서 혼례를 올린 것이 선명히 기억난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의 피난생활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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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아빠를 매주 인터뷰하는 40대 딸. 아빠라는 도서관이 사라지지 않도록 오늘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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