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에 대하여
여름이 끝나갈 무렵, 오래 땀에 전 신발을 세탁소에 맡기고 새 신발을 샀다. 모양새도 무난하고 가격도 적당했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고른 신발이었다.
막상 신어보니 발등이 자꾸 쓸렸다. 그래도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새 신발은 원래 아픈 법이지.’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며칠 지나자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발등은 벗겨지고 뒤꿈치는 쑤셨다. 다른 신발로 갈아 신을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어느 신발이든 똑같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할 것 같아 계속 신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신발도 길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잊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는 중이었다. 나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었다.
관계는 쌍방의 이야기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만난 사람과 가까워지기까지는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을 함께 견뎌내야 한다. 상대의 말투와 습관, 생각의 방식이 낯설게 느껴지고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며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포기를 선택한다. ‘이 사람과는 맞지 않아’라고 단정 짓고 더 편하고 쉬운 상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새로운 신발도, 새로운 사람도, 결국은 같은 시간과 고통을 요구한다. 길들기까지의 그 불편함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은 관계의 결함이 아니라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수고이자 배려이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도저히 맞지 않는 신발이 있듯이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그럴 때는 과감히 놓아주는 것도 용기다.
자연스러워야 편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느 날 문득 알게 된다. 이 신발이 이제는 너무나 편하다는 것을.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이제는 숨 쉬듯 자연스럽다는 것을. 함께 견뎌낸 그 불편함의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발등의 상처는 아물고 신발은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신발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신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