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실험 이야기
마이클 가자니가의 분리 뇌 실험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뇌량이 절단된 환자의 왼쪽 시야에 눈 오는 장면을, 오른쪽 시야에 닭발을 보여주었다. 환자에게 무엇을 보았냐고 묻자, 언어를 담당하는 좌뇌가 답했다.
“닭발을 보았습니다.” 맞다. 좌뇌는 오른쪽 시야, 즉 닭발을 보았으니까.
그런데 이제 우뇌가 담당하는 왼손으로 관련된 그림을 선택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환자의 왼손은 닭이 아닌 삽을 선택했다. 우뇌는 눈 오는 장면을 보았고, 눈과 관련된 삽을 고른 것이다.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여기서 실험자가 묻는다. “왜 삽을 선택했나요?” 그러자 피실험자는 당황하지 않고 즉각 대답한다. “닭장에는 배설물을 치워야 하니까 삽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라는 말은 논리적이고 그럴듯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니다.
좌뇌는 눈 오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우뇌가 왜 삽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좌뇌는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아는 정보, 즉 ‘닭발’을 가지고 순식간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우리의 뇌는 스스로 합리화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왔다. 좌뇌의 냉철한 분석과 우뇌의 감각적 직관이 끊임없이 대화하며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조화롭게, 때로는 충돌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유를 찾는다. 피실험자의 좌뇌가 부지런히 설명을 만들어내듯이.
그런데 우리는 그 설명을 만들 때 유독 자신에게 가혹하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최고의 적이 되어왔다.
잘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못한 것은 크게 확대한다. “아직 부족해”, “더 열심히 해야 해”, “이 정도로는 안 돼”. 마치 자신의 한계를 강조하는 것이 미덕인 양, 채찍을 놓지 않는다.
정말 그것이 우리 삶에 도움이 되었을까?
202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일론 머스크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질을 위해서는, 낙관주의자로서 틀리는 것이 비관주의자로서 옳은 것보다 실제로 더 낫다”(For quality of life, it is actually better to err on the side of being an optimist and wrong rather than a pessimist and right) 라고.
우리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반응한다. 신경과학은 이 증명한다.
반복적인 생각은 신경 회로를 강화하고, 그 회로는 다시 우리의 행동을 만든다.
자신을 비난하는 회로를 강화할 것인가, 자신을 격려하는 회로를 강화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좌뇌와 우뇌가 함께 만들어내는 ‘나’라는 존재.
그 독창적인 캐릭터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이며, 때로는 자신도 이해 못 할 선택을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는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좀 더 긍정적으로 우리를 합리화하면 더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