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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우리 근대사의 중심, 목포!

목포 근대역사관 1과 방공호, 이훈동 정원, 정태관 화가의 집과 무인카페

by Someday



목포 근대역사관 1관

대의동 2가, 목포 근대역사관 1관(사적 제289호 구 목포 일본영사관 )으로 올라가기 전 유달동 사거리에 있는 도로원표가 보인다. 1번과 2번 국도의 시작점을 알려준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약 1,068Km, 목포에서 부산까지 약 378Km의 국도 시작점이다.

1번 국도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수탈한 물건을 일본으로 이송할 때 사용했다.
1904년부터 3년간 동학운동 진압 군부대 수송 등을 위해 중국인 노동자를 동원해서 건설했다.


목포 근대역사관 1관

목포는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우리 근대사의 중심지다. 목포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일본 영 사관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런 높은 위치에서 자신들의 권위와 힘을 드러내고자 했으며, 목포시를 한눈에 감시하려는 목적도 컸다.
이 건물은 목포 개항 이후 일본의 영사업무를 위해 1900년 1월 착공, 12월에 완공했다.
영사관, 목포 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활용했다가 해방 후,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목포 근대역사관 1관, 애니메이션

목포항은 1897년 10월 1일 개항됐다.
일본은 같은 해 10월 26일 목포 일본 영사관을 이 건물에 설치했다.
이 건물은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띄고 있다.
붉은 벽돌을 사용한 좌우대칭 사각형 모양의 건물이다.
중앙에 있는 현관이 앞으로 뛰어나와 있고, 1층과 2층 사이에 벽돌의 허리 돌림띠를 두었다.
창문 왼쪽과 오른쪽에 흰색 벽돌을 반듯하게 장식했다.
실내에는 천장 장식, 벽난로, 거울 등이 건축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 건물은 목포의 개항과 관련한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가 높은 근대건축물로 1981년 국가사적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목포 근대 역사관 1관 건물 왼쪽 뒤편으로
전쟁 준비의 흔적인 방공호가 있다.
방공호는 공중 폭격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적 목적의 방어시설이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시 대규모의 방공호를 만들어 취사 시설과 공기 정화시설까지 마련했다. 장기전에 대비한 시설의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반공호 입구

한반도의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이런 대형 방공호가 만들어졌다.
목포에는 유달산과 고하도에도 방공호가 있고, 앞서 방문한 연희네 슈퍼에도 방공호가 있었다.



목포를 둘러보면, 일제 식민지 시대의 아픈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식민지 수탈로 우리 민족이 겪었을 암울한 세월이 고통스럽게 전해진다.

지금까지 일제 잔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상하고, 여태껏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


근대역사관 건물을 뒤로하고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이곳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목포 시가지는 조용하고, 마냥 평화롭다.



이훈동 정원은 목포 근대 역사관 왼쪽으로 들여다보인다.


이훈동 정원 둘러보기



목포 유달산 아래, 목포 근대역사관 1관 왼쪽으로 '비밀의 정원'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고 으리으리한 이훈동 정원이 있다.

개인 소유인 이훈동 정원은 1988년 3월 전남 문화재자료 제165호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우찌 타니 만페이가 서원 양식 저택을 짓고 꾸민 정원이다.


광복 후, 전 박기배 국회의원이 소유했다가 1950년대 주인이 바뀌면서 이훈동 정원이라 불리게 됐다.

당시 일본 영사관 옆에서 저렇게 잘 살 수 있었다니, 일본들 권세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된다.


당시 1,365평이던 정원은 현재 3,000여 평으로 확장됐다. 그동안 원형이 바뀌기는 했으나 아직도 일본식 정원 특징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호남지방 가장 큰 규모의 개인 정원이다.

입구 정원, 안뜰 정원, 임천 정원,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의 종류도 113여 종에 이른다.

한국 야생종 37종, 일본 원산종 39종, 중국 원산종 25종, 기타 12종이 있다. 이 중, 현관 앞에 있는 암수 한 쌍 일본산 향나무는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닌 자생목으로 일본 화산 폭발 때 그 씨가 목포까지 날아와서 싹이 텄을 것이라 전해진다.

정원 곳곳마다 사람의 정성과 손길이 가득 느껴진다.

특히, 상록수가 많이 심어져 있어서 한겨울에도 초록으로 빛나는 정원이다.



아름다운 정원, 애니메이션



눈이 호강하니, 마음까지 따라가 나보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자니, 잠시나마 마치 내 집인 양 좋구나!

커다란 대문을 나서니, 마치 일장춘몽처럼 무너져 내리는 아쉬움.... ^^

뒤돌아다 보니, 저렇게 큰 정원은 내게 어울리지도 필요치도 않다.


이훈동 정원에서 바라보이는 목포시가지 풍경



걷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피곤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왼쪽으로 '찻살림자수 갤러리 카페'라고 쓰여있는 나지막한 지붕 집에 잠시 눈길이 머문다.




'화가의 집' 무인카페로 이동한다.

길에서 만나는 교회 건물이 고풍스럽다.

정태관 화가의 집에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고, 광주 송정역으로 향할 예정이다.

이곳은 목포에서 활동하며, 세월호의 아픔을 그리고 있는 정태관 '화가의 집'이자 무인카페다.





화가의 작업실



세월호 4주기 그림전에서는 SNS을 통해 알려진 기존 작품과 함께 총 70점을 발표했다.

정 화가는 유튜브와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세월호 신항 거치 기록화 SNS 그림전' 등을 열기도 했다.

세월호는 2017년 3월 31일 목포신항에 입항했다.


정태관 화가가 '세월호 화첩'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세월호 화첩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전체 탑승자 476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를 다시 오르게 한다.

특히, 제주 수학여행 가던 250명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 담긴 그림을 마주하게 되자 모두 숙연한 마음이 됐다. 세월호의 참담한 침몰은 당시 박근혜 정부의 암담한 침몰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당시 악몽이 진짜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정태관 화가의 소중한 '세월호 화첩'을 직접 한 장 한 장 펼쳐 보았다.

예술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으니 그 가치는 더욱 크다.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한 세월호 사고 원인규명, 잊히거나 지워질 수 없는 유족들의 괴로움과 아픔을 무거운 마음으로 담는다.


2018년 11월 22일, 공정여행 팸투어 여행을 돌아보면서 목표에서의 짧은 여정은 진한 아쉬움과 긴 여운 남긴 채 멀어져 갔다.

3년 전 추억은 2021년 12월 11일 목포여행 시공간으로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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