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날고 있는 새로 살겠다!
11년 전, 정채봉 선생의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 책을 읽었다.
마음으로 편하게 담기는 글을 읽으면서 정채봉 선생의 선하고 소박한 성품을 그대로 느꼈다.
책도 글도 저자도 그냥 좋았더랬다.
한 양로원에서 무엇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노인들의 공통점을 조사해 보았다.
그들은 즉석을 좋아한다.
즉석 짝짓기, 즉석 불고기, 즉석 사진.
그들은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잠자리에서는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고,
식사 때마다 늘 불평한 만큼 미련이 남고,
바깥에서 누가 불러도 뛰어나가는 일이 없다.
티셔츠를 찾다가 신발을 찾다가.
습관의 굴레를 못 벗는다.
술 딱 한 잔만 더!
화투 이 한 판만 더!
그곳 이번 한 번 만이야!
겁이 지나치다.
떨어질까 봐 올라가지 못하고, 넘어질까 봐 자전거도 배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밑거름이 된 적이 없다.
오직 자기한테 돌아올 몫만 생각하고
늘 자기변명만 늘어놓고
자기를 도와줄 사람만 찾아다녔다.
당시보다 이즈음 더 의미를 담아 읽게 되는 '실패의 조건'이란 글이 생각난다.
나도 노인이 되어간다.
건강을 핑계로 귀차니즘은 슬쩍 감추어 두고,
인스턴트식품을 사다 냉동실에 꽤 쟁여놓는다.
그러나 사람은 옛 친구가 좋으니 다행이다.
몸이 불편해서 잠자리를 뒤척인 적은 있어도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난다.
평생 가볍게 살아온 내 몸이 스스로 기억하는 괜찮은 습관이다.
남편 '묵', 아들딸이 날 부르거나
인터폰, 스마트 폰이 울리면
대부분 곧 대답한다.
내 인생에서 술과 노름으로 허송세월 한 시간은 티끌만큼도 없다.
지나쳐온 세월을 뒤돌아 보니
겁이 나서 머뭇거린 적은 있어도 포기하진 않았다.
산도 올랐고, 자전거도 잘 탔다.
한 우물을 파진 못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운동도
혼자 좋아서 즐긴 아마추어 수준이다.
좀 이기적이긴 해도 남에게 폐가 된 적은 거의 없다.
인생이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어떤 구실이나 변명도 필요 없다.
처음처럼
지금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평생 어린아이처럼 맑게 살았던 정채봉 선생의
이 <잠언집>은 쉬운 글로 깊게 사색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글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실패의 조건, 막차조차 타지 못하는 사람, 세 친구, 자루 팔자 등은 일상을 일깨우게 해주는 글들이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