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주의 대표 화가 - 뭉크와 샤갈, 오스카 코코 슈가 등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노르웨이 출신 위대한 화가다.
그는 불안, 사랑, 고통, 죽음 등을 주제로 내면세계를 시각화했다.
그의 그림은 미술사에 특별한 한 획을 남긴 독창적인 '영혼 고백'이기도 하다.
뭉크 작품은 19세기 말 자연주의, 인상주의에 대한 역작용으로 상징주의, 아트 누보(Art-Nouveau)와 관계를 갖는 주관주의 한 표현방식을 보인다.
그는 고갱, 앵소르, 고흐, 호들러 등과 함께 표현주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표현주의 회화는 극적 테마, 요약, 강렬한 색채 등을 통해 자유분방한 자기표현을 드러낸다. 이는 주관주의 회화와 공통된다.
현대미술 (20세기 초~ 현재까지)
현대미술은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미술을 의미한다. 근대미술 다음 시기지만 그 경계는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인상주의 등장 시기인 19세기 말부터 보기도 한다.
1970년대 이후 미술은 동시대 미술로 본다.
20세기 미술 역사 변천 과정을 보면, 다양하고도 획기적인 미술 운동이 일어났다.
야수파를 필두로 독일 표현주의, 프랑스 입체파, 이탈리아 미래파, 소련 쉬프레마티슴과 구성주의, 네덜란드 신조형주의,
다시 프랑스 순수주의와 절대주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까지 표방하고 나선 시기다.
20세기 미술은 다양성과 자유로운 토론, 저마다 감상과 비판까지 더해져 각기 독특함을 드러낸다.
제2차 세계 대전(1945년) 전후, 20세기 후반 미술은 더 과격한 미학 모험과 실험을 거듭한다.
앵포르멜 미술과 액션 페인팅 등장으로 전쟁 이전 고전적 추상 미학에 종지부를 찍는다. 전후 동향은 전전 '이즘' 중심 미술 운동과 달리 '아트(art)'를 앞세운다.
팝 아트, 옵 아트, 키네틱 아트, 라이트 아트, 정크 아트까지 오늘날 개념미술(conceptual art) 등이다.
20세기 전반기 미술은 조형(造形)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반면, 전후 미술은 조형조차 거부한 채, 창조나 행위 자체 본질을 규명하려 한다.
조형 문제를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집약한 것이 바로 추상미술 표현 형태다.
창조 행위 미술 형태인 '오브제 미술'을 거쳐 오늘날, ‘개념미술’인 콘셉트 튜얼 아트(conceptual art)가 등장했다.
뭉크 가족사는 병과 죽음의 그늘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평생, 생명과 죽음에 대한 불가사의한 상념에 쌓여 지내야 했다.
그가 관찰한 슬픔과 기쁨은 <The Frieze of Life> 시리즈와 <불안>, <절규>, 여러 편의 자화상, <입맞춤>, <마돈나> 등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품 <불안>은 저녁노을, 산, 들의 곡선이 불안해 보인다.
뭉크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의 분열 증세는 1890년 '도라 라우젠'과 연애로 인한 갈등과 고민, 알코올 의존으로 한동안 신경 쇠약 상태가 계속되기도 한다.
<불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공허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검은 옷을 입은 군상 표정은 뭉크가 자주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의 가정은 병과 죽음의 가정이었다. 확실히 나는 이 불행에 이길 수가 없었다."
뭉크가 말한 어린 시절이다. 죽음은 항상 그의 삶 가까이 있었고, 뭉크는 자신 속에 숨에 있는 죽음을 항시 의식하며 살았다.
자화상 배경 붉은 벽 위에 침통한 표정의 커다란 여자 마스크가 걸려있다.
여자 마스크는 자화상을 내려다보며 곧 덮칠듯한 기세지만, 무표정한 자화상은 정면을 응시한다.
마스크는 압박과 고뇌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뭉크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빨간색은 그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혈액에 대한 관심과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뭉크는 19세기 노르웨이 상류계급에 속하는 존경받는 전통적 전형 집안사람이다.
그는 다섯 남매 가운데 둘째로 남 노르웨이 로이뎅 근체 엔젤호이크에서 태어났다.
1868년 뭉크 5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당시 병원을 운영하던 아버지까지 성격이 거칠게 비정상으로 변한다.
뭉크 14살 땐, 어머니 대신 가정을 맡아 돌봐주던 한 살 위인 누나 '소피에'도 결핵으로 사망한다.
어린 뭉크는 이런 환경에서 죽음을 응시하는 내향적 성격이 형성된다.
뭉크는 자신의 일생을 자화상 시리즈로 남겼다.
저승에서, 자화상은 거친 붓 터치로 붉은 배경, 누드, 왼쪽 검은 연기 같은 그림자 등이 대담하게 그려져 있다.
뭉크는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초기에는 엄격한 양식에 낭만적 우울감이 가득한 자신을 그렸다.
자유로운 형태에서 자의식이 넘쳐나는 표현이다.
저승이라는 상황에서, 죽음을 상징화하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보이지만, 불안과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인다.
뭉크는 1880년 첫 자화상을 그린 이래, 많은 자화상을 남겨 내적 영혼과 정신 관계를 표현했다.
이 작품은 자화상들 중 가장 유명하다.
검은 바탕에 소묘식으로 표현한 얼굴이다.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응시해 온 뭉크에게 이 자화상은 죽음에 대한 '내적인 영상'이다.
뭉크는 자화상을 통해 불안을 극복하려 했다.
인생 시리즈로 자기 변천과 자아의식을 찾았다.
"자화상에는 자아를 그리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 이미지 표현의 진실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엄격한 양식에 자기 애적 경향과 자의식에 찬 인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 자화상은 뭉크 53세 모습으로 예술가로서 명성을 확고하게 지키고 있을 때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인상파풍 속필로 묘사했다.
인물 뒤에는 노르웨이 서해안 도시인 베르겐 거리, 집들, 널따란 광장이 선명한 색채로 드러난다.
자화상 얼굴 속엔 고독감과 불안이 엿보인다.
풍경화에선 볼 수 없는 초조감이 드러난 표정이 불안감을 외적으로 투영한다.
뭉크 예술에 대한 지지와 평가는 만년에 더 높아진다.
1912년 쾰른에서 개최된 분리파 대 전람회에서 세잔, 고흐, 고갱과 더불어 방이 하나씩 배당되고,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된 현대 스칸디나비아 전람회에도 초대받아 출품하는 등 국제적 명성을 누린다.
1922년 취리히 미술관,
1927년 베를린 국립 미술관 회고전,
1933년 70세 생일에는 대작가로서 유럽 각지로부터 축사를 받는다.
1937년 한때, 나치에 의해 '퇴폐적인 예술'이란 낙인이 찍히기도 하나,
격동하는 제2차 세계대전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제작에 몰두했다.
1943년에 그린 이 자화상은 파스텔로 소묘식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마지막 자화상이다.
뭉크는 평생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81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그는 1944년 1월 23일 에 케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대문사진: 픽사베이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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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화가인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주주와 레드루의 먼 나라 여행』 중에서 '생폴 드 방스 중세마을에서 라베라와 샤갈을 만나다' 마지막 부분에서 살펴본 바 있다.'생폴 드 방스를 사랑했던 3명의 화가와 조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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