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폴 드 방스(Saint-Paul-de-Vence)는 프랑스 남부 알프마리팀 주에 자리한 코뮌(Communes, 프랑스 최소 행정구)으로 니스에서 20km 떨어져 있다. 이곳은 프랑수아 1세 때 지어진 요새로 둘러싸여 있는 산 꼭대기 마을이다. 코트다쥐르 유서 깊은 중세 마을 중 하나로 16세기 건축물들이 골목 샛길을 가득 채우고 있다. 생 폴 드 방스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생폴 드 방스는 자크 라베라, 그웬 라베라, 마크(마르크) 샤갈 등이 거주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주차장 가운데로 우뚝 솟은 생폴 드 방스 중세 마을이 보인다.
'생 폴 드 방스'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는 샤갈 그림, '파란 풍경 속 부부'
인상주의 화가 마크(마르크) 샤갈(1887~1985)이 그린'파란 풍경 속 부부'(Le couple dans le paysage bleu) 작품이 마을 어귀에서 우릴 맞는다. 20세기 최고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샤갈은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다.
생 폴 드 방스 마을 어귀 풍경, 애니메이션
생폴 드 방스(Saint-Paul-de-Vence) 고풍스러운 그랑 거리중세 샛길 투어
생 폴 드 방스 안내도 / 사이프러스 나무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중턱에서부터 본격적으로 16세기 중세 마을로 들어선다.
중세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벽과 돌길, 포와 포로(砲樓)
생폴 드 방스는 에제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규모는 생폴 드 방스가 크지만 같은 중세 마을이라 그럴 것이다.
중세 요새답게 바닥과 벽이 모두 단단한 돌로 지어졌다. 오랜 역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골목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오늘은 주주와 레드루가 생폴 드 방스 골목길을 잠시 모두 점령할 테다!
16세기 중세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는 그랑 거리(Rue Grand)는 한 폭 그림같이 아름답다.
콜롱브 도르(Colombed'Or) 옛 카페 그리고 우물과 빨래터
위는 콜롱브 도르 카페 아래 고풍스러운 우물과 뒤로 옛 빨래터도 보인다.
‘황금 비둘기’란 뜻의 이름을 가진 콜롱브 도르는 1920년경 지어진 이층 건축물로 아름다운 야외 테라스를 갖춘 댄스홀과 카페였으나, 지금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영업 중이다.
코트다쥐르 지방을 찾았던 가난한 예술가들이 숙박비 대신(혹은 우정으로) 지불하고 간 그림과 조각들이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
화가 피카소, 샹송으로 사랑받던 시인 자크 프레베르, 배우 이브 몽탕 등 저명인사들이 장기간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브 몽탕은 이곳에서 시뇨레와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낭만과 상상이 한 데 어울려, 이곳을 보고 듣고 걷는 현대인들도 야릇하고 심쿵한 감성에 젖는다.
빨래터와 우물
우리는 속사로 찍어 앱으로 쓱 그리지만, 생폴 드 방스에서라면 이도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
카사 다모르 디자인 갤러리 Casa d'amor Design Galerie
고풍스러운 벽은 낡아 보이지만, 꽤 고가의 미술품 갤러리로 보인다. 패스하고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우리 예측이 맞는 듯. 나중에 사이트에 들어가 눈호강만 한 걸로.
에즈에서 구입한 소박한 풍경화에 만족하고 그냥 지나친 곳이다. 소유하지 않아도 내 추억 한 편에 남는 작품들은 모두 내 것이다!
걷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미처 몰랐다. 16세기(1501년~1600년)에도 이렇게 찬란한 햇살이 내렸겠지! 골목길 돌바닥조차 해와 달과 심지어 별까지 닮은 모자이크 문양들로 반짝인다.
문득, 해 저물고 달빛도 별빛도 없던 칠흑 같은 16세기 밤은 어떤 암흑세상이었을지 궁금하다. 18세기 여명이 동트기 전, 인공조명도 등장하기 이전, 평민들의 삶이 고통스럽던 그 먼 시간까지 우리 마음이 아득하게 닿는다. 지금 이토록 아름답기만 한 이곳 사람들의 삶도 당시엔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겠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둡던 중세였으니! 아직 시민이 인간으로 존중받기 전, 아주 먼 옛날이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매일 뉴스에 오른다. 2019년 당시 아프가니스탄 힘든 상황이 내전으로 치닫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리던 때였다. 강대국들도 나서서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이 안타깝다.
탈레반 공포정치로 핍박받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더 생생하게 전해진다. 정말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아프간에서는 중세보다 더 짙은 암흑의 역사를 거꾸로 써가고 있는 것 같다.
어두웠던 중세 시절,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지구 저쪽 편에 사는 사람들 생각일랑 그냥 내려놓고, 지금은 이 고풍스러운 중세 골목길에서 산책에 열중한다.
2019년 3월 8일, 주주와 레드루는 행복한 생폴 드 방스 여행자다. 이 멋진 고풍스러운 거리를 당당하게 걷고, 아낌없이 즐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기억만 꾹꾹 눌러 담고.
생폴 드 방스는 환경과 풍경이 그냥 예술작품이다. 걷기만 해도 예술가가 되고, 멈춰 서면 모델 포스를 풍긴다. 폰 카메라만 눌러도 예술사진이 찍히고, 붓을 들어 그리면 천상의 명화가 탄생한다.
리베라와 샤갈도 이곳 정작 한 후, 수많은 명작을 남기지 않았나!
레드루도 이곳에선 더 멋져!
지나치는 곳마다 갤러리, 기념품 샵도 갤러리 같아!
실제 생폴 드 방스 그랑 거리에는 70여 개 갤러리가 운영 중이라니, 골목을 걷다 보면 두 집 건너 한 집이 갤러리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기념품 샵과 상점들도 갤러리 같은 품격과 멋을 드러낸다. 진열된 핸드메이드 제품에서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길가에 내걸린 명화 st. 4점에 눈길이 멎는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모네 '개양귀비 꽃', 반 고흐 '아를의 침실' - 모두 우리가 자주 보고 듣던 명화들이다. 1점에 4유로, 4점 구입하면 12유로라니 싹 다 사버리고 싶어! 명화 st. 를 세일한다니,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생풀 드 방스를 그대로 섬세하게 축소해 놓은 핸드메이드 소품들
레드루 지갑을 열게 한 핸드메이드 소품 세트
각 피스 별로 가격이 붙어 있다. 구매자가 원하는 조각들을 모아 스스로 생폴 드 방스를 재현해 볼 수 있다. 사람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페인팅했다고, 작아도 제법 비싸다. 각 건물 한 채마다 25~30 유로, 손톱보다 작은 인형 한 개당 15~29 유로다. 우리 돈으로 개당 2만 원~4만 원 정도이니, 아기자기하게 그럴듯하게 꾸미려면 만만치 않는 금액이 된다.
레드루는 건물 한 채와 분수대, 춤추는 커플 총 3피스를 구입한다. 아직 생생하게 젊은 딸에겐 꽤 낭만적인 지출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딸과 함께 중세 건물 한 채를 쥐었다 폈다 하며 아이쇼핑에 흠뻑 빠진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상점의 주인은 요 삽살개!
묵직한 중세 아치형 문에 진열된 조각품, 왠지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장식품 파는 이 상점도 갤러리 느낌
아기자기 알록달록 앙증맞은 소품들, 소유하고 싶지만 기억 속에 추억으로 갖는다.
라 샹프로 오 콩피 티르(La Chambre Aux Confitures), 수제 잼 전문점
이렇게 다양한 수제 잼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건 처음 본다.
수제 잼은 가까운 이들에게 선물하기 좋다. 허리에 차고 있던 힙 색 안에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라 샹프로 오 콩피 티르는 프랑스에서 각광받는 수제잼 전문점이다.
스토베리, 라즈베리, 오렌지 등 우리에게 친숙한 재료는 물론 장미, 루바브, 바닐라 등 이국 재료로 만든 잼들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직접 시식도 해 보고 구입할 수 있다. 이곳 수제 잼은 샹젤리제 거리 작은 공방에서 시작, 4대째 이어 내려오는 비법으로 프랑스인들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누가'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럽 전통 디저트인 누가와 캔디, 말린 과일 등 다양한 수제 간식들도 판매한다. 누가(Nougat)는 이란에서 유래한 사탕의 일종인데, 우리나라 엿과 비슷한 식감에 과일이나 볶은 견과류를 함께 버무려 만든 간식이다.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여러 종류의 수제 갠디들
내가 구입한 수제 잼 세트
깔끔한 포장 / 수제 잼 세트별 조합에 따라 가격이 다름. 나는 25.50 유로 세트를 선택했다.
생폴 드 방스 유대인 공동묘지, 샤갈 부부가 잠든 곳
묘지 위로 내리는 지중해 햇살이 눈 부시다. 죽어서도 이런 풍경과 밝음을 누릴 수 있다니, 이곳이 천국인 것만 같다. 평소 생각하던 조금 우울하던 묘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랄까!
샤갈과 2번째 부인 바바의 묘 - 죽어서도 다정하게 함께 잠든 샤갈 부부의 묘지 위엔 추모의 돌멩이들이 가득!
샤갈은 1944년 9월 사랑하던 아내 '벨라'를 감염병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그는 벨라를 잃고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다. 1952년 샤갈은 유대인 여성 발렌티나 바바와 재혼, 벨라가 죽은 지 8년 만에야 다시 활력을 찾게 된다.
샤갈은 살아생전, '나를 지중해 해안으로 인도해 준 운명에 감사한다.'라고 했을 정도로, '생폴 드 방스'를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20여 년간 이곳에서 살며, '바바'와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
'생폴 드 방스'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던, 샤갈 그림 '파란 풍경 속 부부' 속 주인공은 두 번째 아내 '바바'다.
생폴 드 방스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국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기에 마땅한 곳이고, 나 같은 사람에게도 저절로 예술적 영감이 찾아들 것만 같이 그냥 행복해지는 곳이다. 생폴 드 방스에서 보이는 세상은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워, 생각은 비워지고 영혼이 맑아진다.
묘지로 이어지는 생폴 드 방스 고성에서 레드루와 주주가 따로 또 함께!
유대인 공동묘지 입구 맞은편, 보석을 빌려주기도 하는 상점 앞에서 한 폭 그림 같은 추억을 담는다.
우리를 태운 전세 버스가 생폴 드 방스 마을 어귀를 돌아 나온다.
생폴 드 방스를 사랑했던 3명의 화가와 조우하기
자크(자끄) 피에르 라베라(Jacques Pierre Raverat)
자크(자끄) 라베라는 1885년 프랑스에서 출생, 어려서 영국으로 이주. 1898년 영국 베다일 학교에 전학했다.
졸업 후, Cambridge에서 엠 마누엘 대학 진학.
원래 수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생활 중에 유명한 생물학자인 Charles Darwin의 손녀 그웬 다윈(Gwen Darwin)을 만나면서 그녀를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허약한 젊은 학생 화가였다. 1908년 너무나 자주 피곤을 느껴 대학생활을 계속할 수 없어진다.
자끄(자크) 라베라는 다발성 경화증 발병으로 처음엔 경미한 재발 완화(relapsingremitting) 형태였으나, 1914년 이후부터 점차 증상 악화가 일어나, 평생 고통 속에서 살다 간 화가였다.
1911년 Gwen Darwin과 결혼했고, 1914년 프랑스에서 다발성 경화증이란 확진을 받는다. 1915년이 되자, 자끄(자크) 라베라 걸음 상태는 아주 심각하게 퇴행한다. 1920년 자끄와 그웬 라베라 부부는 프랑스 남부로 이사, '생폴 드 방스'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이 무렵 자끄 라베라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바퀴 의자(donkey-driven bath chair)를 사용한다. 운동성이 감퇴하면서, 앙드레 지드(Andre' Gide) 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나 그는 바퀴 의자에 앉아 생활할 때보다 더 그림에 열중한다.
자끄 라베라는 친구였던 버지니아 울프에게 “나는 세상에서 거의 모든 기쁨을 상실하였기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지독하게 통증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다. 제발 이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이라고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1925년 3월 6일, 자끄 라베라 고통은 끝이 나고, 병마와 싸운 40세의 짧고도 긴 생을 마감한다.
그웬 메리 다윈(Gwen Mary Darwin)
그웬 라베라, '가출의 일러스트'
그웬 돌린 메리 다윈은 1885년 캠브리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천문학자인 George Howard Darwin과 그의 아내 Maud, Darwin 여사, née Maud du Puy의 딸이다.
그웬 다윈은 자연주의자인 찰스 다윈(Charles Darwin) 손녀이자 시인 프랜시스 콘 포드 사촌이기도 하다.
그녀는 1911 년 프랑스 화가 자끄 라베라(Jacques Raverat)와 결혼했다. 그웬 라베라( Raverat)는 현대적인 최초 나무 조각가 중 한 명이다. 자끄 라베라와 결혼 기간은 그가 사망하기까지 14년(1911-1925) 동안이다.
이들 부부는 Bloomsbury Group과 Rupert Brooke인 Neo-Pagan 그룹에서 활동하며, 이곳 남프랑스로 왔다. 1925년 남편 자끄(자크) 라베라가 다발설 경화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은 함께 생폴 드 방스에서 살았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영국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작품 활동을 하며 살다가, 1957년 2월 11일(71세) 남편 자끄 곁으로 갔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샤갈의 '마을과 나' 1911년 / 푸른 배경 속의 커플(Couple in a Blue Landscape) 1969-1971년
마르크(마크) 샤갈(Marc Chagall, 1887~ 1985년)은 러시아 제국(현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로 '색체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한다.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이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샤갈이야말로 생폴 드 방스 대표화가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이곳 성곽을 배경으로 한 그의 대표작 때문이기도 하다. '푸른 배경 속의 커플'은 푸른 밤하늘을 자유롭게 떠 다닌다. 이들 커플 뒤편으로 생폴 드 방스 고성이 그 아름다운 윤곽을 그대로 드러낸다.
샤갈은 판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성서를 소재로 한 걸작 동판화를 남겼다. 샤갈 작품은 러시아계 유대인 혈통에서 흐르는, 대지의 소박한 시정을 담아 동화적이고 자유로우며 환상적이다. 특히, 농부·산양·닭과 같은 소재를 작품 속 많이 담고 있다.
샤갈의 그림은 밝고 온화하다. 편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사랑하나 보다.
'샤갈의 사랑' / 'mission' - 사랑하는 연인들을 주제로 그린 샤갈의 작품 2점
마르크 샤갈은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한 가지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라고 했다.
그는 22살 때, 벨라 로젠펠트를 만나 첫눈에 반하고, 세계 1차 대전 전운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인 28살, 벨라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벨라는 그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연인이기도 하다. 샤갈도 전쟁의 암울한 시기를 피해 갈 순 없었지만, 사랑의 힘이었는지 그의 작품은 한결같이 '사랑의 색'을 잃지 않았다.
샤갈 57세 되던 해, 벨라는 병으로 세상을 뜨고, 그는 한동안 붓도 들지 못할 정도로 상심이 컸다.
60세 되던 해, 샤갈의 딸은 아버지에게 유대계 러시아인 바바를 소개한다. 두 사람은 민족적 정서와 종교를 공유하면서 서로 통하는 사이가 되고, 바바는 샤갈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샤갈은 세상을 뜰 때까지 다시 얻게 된 '사랑의 색'으로 생폴 드 방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샤갈이 그린 2번째 부인 바바 / 샤갈과 첫번째 부인 벨라의 행복했던 모습
샤갈은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 화가로 불린다. 그는 살아서도 명성을 얻었던 행복한 화가이며 98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