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에서 뿜어내는 좋은 기는 마을에 큰 인물이 태어난다.
남원 몽심재 고택은 조선 정조(1776~1800)~순조(1800~1834) 시기, 전북 상류층 살림집의 전형을 보여준다.
고택을 둘러보면, 당시 건축물의 원형과 아름다운 정원의 조화로움에 눈이 부실 정도다.
건축물은 소박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5월 햇살이 내리고 있는 정원과 어울려 꽤 호사스러워 보인다.
몽심재 고택은 고려 말 박문수의 후손인 죽산 박 동식(1753~1830)이 세웠다.
일가는 이곳 수지면 호곡 마을 명당에 자리를 잡고, 죽산박 씨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몽심재는 조선시대 건축물로서 문화재 가치가 높아,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몽심재 실측 고증 복원도(포스팅 위에 담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바위를 '호석(虎石) 상'이라 표시하고 있으며, 28번 설명을 보면 '주일암 바위'라고 쓰여있다.
이 남자는 세상 제일 편한 자세로 돌 방석 위에 앉아있다.
정좌하고 앉아 도 닦는 사람처럼 보여 자세히 바라보니, 핸드폰을 주시하고 있다.
큰 바위에서 뿜어내는 좋은 기는 마을에 큰 인물이 태어난다는 설을 지니고 있어 늘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돈의 '큰 바위 얼굴'에서 바위산과 닮은 얼굴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설과 맥이 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 생각이나 신념의 근본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바위에는 여러 곳에 미타기적, 주일암, 천창애라고도 새겨져 있다.
깊은 뜻을 다 헤아리진 못하지만 선조들이 바위에 담고자 했던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연못에 폭기 조라도 하나 설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심한 녹조가 끼어 있다.
가뭄 탓도 있겠지만, 이 아름다운 조선시대 정원 속에서 옥에 티다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했다.
낮 달맞이 어린잎은 소도 먹는 음식이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월견초라는 약재로 쓰는데, 인후염과 고지혈증에 좋다고 한다.
이 여리 여릿한 예쁜 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한낮 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기다림'의 이미지와 그대로 맞닿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KNHtxXOITf0&t=2s
사랑채 가운데에 '몽심재' 편액이 걸려있다.
좌우 기둥엔 대련이 걸려있다.
이 여러 글귀는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충절을 다짐하며 보낸 시라고 한다.
봄날, 꿈을 꾸듯 잠시 멈춰 선다.
그러나 인생은 멈춰 선 것이 아니다.
낮 달맞이꽃도 나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꿈을 꾸다 깨어나면, 한바탕 봄날 꿈처럼 헛되고 덧없음을 노래하려나!
지금 너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라!
나는 몽심재를 둘러보며 사진과 기록을 담아 갈게.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에 C(hoice)라고 하더라.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다 가고 싶다.
몽심재에서 꿈을 꾸다 먼저 간 사람도, 낮 달맞이꽃도, 나도 너도 모두 끝은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 이전에 오늘 같이 찬란한 봄볕 내리는 날, 각기 다른 '한 삶'이 열심히 살고 있었다는 걸 잊지 말기로 해!
사랑채 오른쪽에 있는 돌층계를 올라서 중문채로 들어서면 안채가 보인다.
안채는 기단을 3단으로 올려 사랑채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ㄷ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인적이 드물다 보니 냥이가 어슬렁거리며 마당을 배회한다.
우리가 들어서도 크게 괘념치 않는 모습이다.
이런 아름다운 고택에 방문자가 우리 밖에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쉽다.
우리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고 조금 전엔 바위 위에 앉아 한가로이 쉬기도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만.
남원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안마당에 있는 네모난 큰 돌은 '학독'이다.
학독은 돌로 만든 조그만 절구로 보리나 들깨 등의 껍질을 벗길 때 사용한다.
이렇게 낮은 부엌 아궁이 굴뚝은 처음 본다.
아궁이 굴뚝을 낮게 둔 것은 배고픈 마을 주민들을 배려한 것이라는데,
이곳에 살던 양반도 굴뚝을 높이 세우고 다 함께 배불리 먹을 만큼 베풀 수 있는 능력은 못되었나 보다.
막 중문채로 나가려는 데,
몽심재에서 거주 중인 관리인이 어딘가 다녀오다 우리 부부와 마주친다.
세상 돌아가는 바른 이야기를 즐겨하셔서 잠시 멈춰 서서 귀 기울였다.
이 넓은 집을 혼자 관리하며 살아가려면 적적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살짝 스쳤다.
고택을 나와서 오른쪽 담장을 돌아가면 몽심재와 나란히 죽산박 씨 충헌공 파 종갓집이 있다.
이곳도 관람 가능하다는데, 우리는 잠시 몽심정 쉼터에 앉았다가 수지 미술관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