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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정령치 숲길로 내리는 찬란한 빛

개령암지 마애불상군과 정령치 습지 그리고 고기 댐 저수지

by Someday

와운마을에서 나와 861번 도로를 따라 덕동마을, 달궁 야영장을 지나쳐 달린다.

정령치 10km 표지판을 마주하고 더 달리다 보면 달궁 삼거리에 닿는다.



달궁 삼거리에서 737 지방 도로가 난 오른쪽으로 들어선다.

이곳부터는 도로가 급경사를 이룬다.

급경사를 계속 달리면 산내면과 주천면의 경계인 정령치에 닿는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아름다운 지리산 숲길 사이로 뻥 뚫린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고 즐겁다.

5월 마지막 금요일, 지방 도로는 한가롭다.

우리를 지나치거나 뒤따라오는 자동차도 없다.

지리산 넓은 품을 통째로 품은 기분이 들었다.

'천년송'에서 30여 분을 천천히 달려 정령치에 도착하니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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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


정령치는 참 매력적인 곳이다.

자동차로 이처럼 높은 고도에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겐 아주 딱 맞는 멋진 장소다.

정령치는 백두대간 횡단 고개로 높이가 1,172m나 된다.

역시 높은 곳에 서니 바람이 무척 세게 분다.

두 팔을 몸에 딱 붙이고 사진을 찍지 않으면 폰 카메라를 든 손도 바람결에 저절로 흔들린다.

허긴 나는 정령치에서 온몸을 바람결 따라 함께 흔들리며 걸었다.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만복대(1,433m)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위 지도에서 보면 만복대가 왼쪽 아래 표시되어 있다.

우리는 만복대도, 바래봉도 다 둘러보며 등산을 즐길 여유가 없어 아쉬웠지만, 멀지 않은 개령암지 마애불상군과 정령치 습지는 다녀오기로 하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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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 정상으로 오르는 돌계단


정령치에서 내려다본 풍경, 앞쪽으로 고기 저수지가 보인다.
줌으로 당겨 찍은 정령치에서 내려다본 풍경

사진 속엔 고기 저수지도 가까워 보이지만, 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 있더라.

내리막길이 심하게 굽어져 있어 직선으로 내려다보기보다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일단 고리봉 쪽 정령치 길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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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 길

고려 시대 불상들인 마애불상군이 있는 개령암 터는 정령치 정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숨겨져 있듯 제법 깊은 산속에 있고, 가는 길 표지도 따로 없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거리를 확인하고 출발했지만,

초행길에 표지판도 따로 없으니 들어서야 하는 오른쪽 숲길 입구가 헷갈린다.

정령치 정상에서 고리봉 쪽으로 5분 이내로 걸어가면, 오른쪽 들어서는 길이 있다고 했지만, 자세히 보아야 무성한 수풀 사이로 흙길이 좁다란 선처럼 보일 뿐이다.

이 길로 들어선 우리는 첫 표지가 나타날 때까지 들어선 길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무작정 걸었다. 초입에 수풀이 무성해 보이는 걸 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적지는 아닌 것 같다.


다행히 좁은 숲길로 들어서자, 정령치 길에서 드세게 불던 바람은 언제 바람이 불기라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바람 한 점 없이 안온하다.

초입 좁은 길은 잠시 후 좀 더 확실한 흙길로 굽이굽이 이어져 있어 다행이다 싶다.

오가는 사람도 없으니, 우리 부부는 정령치 숲길에서 하늘과 땅, 나무와 곤충들까지 다 챙겨 보며 천천히 걷는다.

8분 정도쯤 걸었을까!

맞은편에서 젊은 외국인 부부(연인?)가 걸어온다.

우리는 서로 놀랐고, 양쪽 다 잠시 긴장한 채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젊은 금발머리 남자가 무척 상냥하다. 먼저, 건치를 하얗게 드러내며 미소를 건넨다.

우리도 활짝 웃었다.

'개령암 터 마애불상군이 어디쯤 있느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곁에 있는 흑발 머리 여자는 계속 긴장하고 있다. 그녀의 긴장한 모습에서 내 모습이 살짝 보인다.

곧바로 서로 목례를 하고 헤어진다.

만약 이런 좁은 외진 숲길에서 험악한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그 자리에 그냥 '얼음 땡'하고 굳어 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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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난 마애불상군 표지판 / 개령암지와 마애불상군으로 가는 숲길

안내 표지판을 만나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이곳으로 올 때까지 좁은 숲길에서는 사진도 찍지 않고 걷기만 했다.

입 밖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계속 걸어도 어디쯤인지 알 수 없다면 다시 되돌아가야 하나!' 나는 혼자 속으로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앞서 편하게 걸어가는 '묵'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더 나가던 돌아서 가던 신경 쓰지 말겠다는 생각이 좀 더 크긴 했지만.

이제, 우리는 개령암지(정령치 습지)로 향한다.


쥐오줌풀



정령치 습지(개령암지)로 향하는 묵

목적지에 가까이 오니 금세 표지판이 또 나타난다.

입구에서부터 이런 표지판이 있었으면 우리 같은 초행자들에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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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과의 함박꽃나무 / 정령치 습지로 가는 좁은 숲길



정령치 습지(개령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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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로도 하늘로도 가득 찬 초록빛


정령치 습지와 나무 데크

정령치 습지 위로 수풀이 무성하다.

어느 정도 가까이 가도 수풀로 덮인 습지가 제대로 드러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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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치 습지에서 마애불상까지 겨우 100m 거리이나, 굽이진 오르막 산길이다 보니 천천히 걷게 되니, 생각보다 멀다.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드디어 만나게 된 고려 시대 9구의 마애불상군.

오랜 세월 풍파로 인해 희미해진 불상군 자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내 두 눈 위에 얹혀 있던 누진다 초점 안경을 고쳐쓰기도 하고, 겉옷 안쪽으로 몇 번을 문질러 닦고 또 닦아 다시 바로 쓰기도 한다.

내 눈에는 '불상군 1'만 한눈에 척 들어온다.

다른 불상군은 배치도와 몇 번씩 대조해 가며, 보물 찾기라도 하듯 정신을 집중하며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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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군 1 / 불상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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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군 3 / 불상군 2

마애불상군은 해발 1,170m 정령치 북쪽 고리봉 아래 개령암 터 뒤편으로 병풍처럼 둘려져 있는 암벽에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불상마다 크기와 표정이 다 달라서 더 열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불상들의 키는 4m, 2m, 1m 정도이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석불상들은 오랜 세월의 세파와 암벽에 자생하는 잡초 등으로 형상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더구나 자연 암벽이다 보니 면이 고르지 못해 조각 자체도 양각이 일정하게 고르지 못하다.

그나마 눈으로 그 정교한 형태를 바라볼 수 있는 불상은 3구이고, 나머지 6구는 부분적으로 마멸 정도가 심하니, 그 신비한 형체를 다 알아보기 힘들다. 이렇듯 9구나 되는 불상의 조상군은 흔치 않은 예라고 한다.

불상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면 각기 다르면서도 조화롭다.

9구의 불상이 모두 불교 만물을 생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인 지대(地大), 수대(水大), 화대(火大), 풍대(風大), 공대(空大), 식대(識大)를 보여준다. 중생이 선악의 원인으로 윤회하는 여섯 가지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여래상의 인자한 모습을 한동안 멈춰 서서 바라본다.


이 터에는 1966년까지 '개령암'이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 같은 공간에서 우리 부부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이 9구의 불상들은 고려 시대 이곳에 있었을 '개령암' 절에서 조각하고 봉안(奉安) 하지 않았을까!

이후 사람들이 떠난 곳은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석축과 초석 등만 잡초 속에 묻혀 있다.

한창때를 찬란하게 빛나게 했을 이 공간과 무심하게 흘러간 긴 세월도 빛바랜 시공간 속으로 총총히 따라나섰을 것이다.

윤회를 믿는다 해도 그때가 지금은 아니다.

그 당시 존재했던 그 사람은 여기 없다.

윤회사상은 생사를 거듭하며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삼계 육도를 떠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자신일 뿐이다. 내가 나 자신일 뿐이듯.

우리가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한들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그러나 어찌 되었든 좋은 업을 지으며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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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령암지 마애불상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돌아나간다.

보통 어른 걸음걸이로 쉬지 않고 걷는다면, 왕복 30분 정도의 거리지만,

돌아가는 길엔 좀 더 숲 속 생명체들과 교감을 나누며 천천히 걸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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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래고사리와 미나리아재비 노란 꽃들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는 모습


20220527_125951_HDR.jpg?type=w966 좁다란 숲길로 내리는 찬란한 5월의 빛

지리산 숲길로 내리는 5월의 찬란한 빛 속으로 들어선다.

그대로 저 빛을 따라 하늘 위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지금 내 마음은 새털같이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오감이 서로 행복하다고 내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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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아재비 노란 꽃
쥐오줌풀과 미나리아재비

좁은 숲길을 벗어나 정령치 길로 들어섰다.

이곳 정상은 역시 바람이 심하게 분다.


돌아 나오면서 줌으로 당겨 찍은 고기 저수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정령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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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정령치 터널을 지나, 남원 시내 쪽으로 나가 운봉을 거쳐 산내면으로 향한다.

터널을 나서면 굽이굽이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터널을 나서자마자 풍경

굽이굽이 내려가는 길도 지리산 자락이니 아름다울 수밖에!




고기 댐과 고기 저수지

고기 저수지까지 내려왔으니, 잠시 자동차에서 내려 탁 트인 저수지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다.




고기 저수지 관리소는 문이 닫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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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촌마을에서 잠시 쉬어간다.



운봉 흑돼지 전문점

'운봉 흑돼지'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여원치 마애불'과 '여원정'에 들려갈 예정이다.

운봉 흑돼지 전문점은 이번 남원 여행길에서 3번씩 들린 식당이다.

흑돼지고기 맛도 좋았지만, 싱싱하고 푸짐한 야채 맛도 이곳의 자랑이다.

특히, 미나리를 살짝 익혀 고기와 함께 먹는 맛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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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시 운봉읍 운성로 13 (063-634-1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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