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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Aug 11. 2022

반지하의 비극, '21세기 마지막 경제대국은 한국?'

폭우로 드러난 우리의 민낯,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가 아쉽다.

한 마리 새가 빗줄기 사이를 낮게 난다.

고층건물들 사이를 곡예하듯 날아가는 모습이 창 너머로 급히 사라진다.

물난리로 어지러운 한 주가 느리게 지나간다.

폭우로 드러난 우리 민낯을 마주하며, 이웃의 여러 아픈 상황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도 비극이다.


어제 낮엔 수도권 이남으로 내려갔던 폭우,

밤엔 세상 가득 휘감아 돌던 짙은 안개를 뚫고 다시 퍼붓기 시작하더라.

꿈길에서도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악천후 속에서도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고, 힘든 순간을 버티어 내는 사람들에게도 세상은 다름없이 동일한 속도로 야속하게 돌아간다.

이상 폭우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소시민은 엄청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침수 장면은 그대로 실화가 됐고, 그보다 더한 비극으로 이어졌다.

서초동 고층에 거주하는 사람, 신림동 반지하에 살아가는 사람의 대비가 이번만큼 극명하게 드러난 적이 또 있었을까. 반지하(banjiha)에서 죽음을 맞은 일가족 3분의 기사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출퇴근하는 강남 테헤란로가 빗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영상을 바라보며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나에게도 반지하에 관한 기억이 생생하고 소중하게 남아있다.

2013년부터 4년간 사례관리 서포터로 활동하면서 찾아뵌 독거어르신들은 대부분 반지하에 살고 계셨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립이 어려운 복지사각지대 취약계층과 위기가정을 발굴 및 지원하기 위해 발로 찾아가는 사례관리 서포터(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면서 어르신들과 갖게 된 인간적인 교감은 나를 좀 더 배려심 깊은 인간으로 성숙시켰다.

이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10년, 20년 후 나의 모습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다볼 수 있었고, 건강과 경제적인 문제, 정신적인 외로움이 노년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지도 절절하게 느꼈다.

사례관리 서포터의 방문이 독거어르신들에겐 결코 작지 않은 위로를 드렸다.

복지사각에 놓인 분들을 동 주민센터 복지팀에 연결하여, 기초수급자로 지정받도록 도와드렸다.

국가가 지원하는 월 50여만 원으로도 당시 극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분들의 행복해하던 얼굴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방문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복지 공무원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통하면서, 꼭 필요로 하는 모든 분들에게 복지혜택이 돌아간 것은 아니었기에 답답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서로 수년간 연락 없이 지내는 자녀조차 부양가족이라는 판단으로 수급대상자에서 제외되곤 했으니까.


활동 당시, 한 어르신의 반지하 방 / 다른 어르신의 아침식사 식단(물 만 밥과 고추장+ 풋고추 한 개, 신 김치)


한 여름과 한 겨울엔 우리 일도 멈췄다.

사례관리 서포터들도 이미 50+세대였기에 건강상 배려도 있었고, 활동이 1년간 재계약을 통해 이어지는 구조이기도 했다.

나는 서울 인생 이모작 지원센터 소속으로 2013년~2014년엔 길동 주민센터에서 활동했다.

길동 복지팀장이 우리 일에 커다란 관심과 적극적인 응원을 보내주었기에 독거어르신들 찾아뵙기 활동을 무척 활발하게 진행했다. 길동에서의 15개월은 지금 생각해도 보람찬 나날이었다.  


2014년 2월 송파구 석촌동 단독주택 지하층에서 세 모녀가 동반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60대 엄마와 30대 두 딸이 경제적 상황을 비관, 번개탄을 이용해 동반 자살한 사건으로 복지사각지대에 커다란 경종을 울렸다.

현장에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 집세와 공과금이 밀려 죄송하다는 내용의 메모도 함께 발견됐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자존감을 지키려고 했던 선량하고 정직한 보통 사람의 면모'라면서 많은 매스컴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급히 사회복지사 채용이 늘어났고, 주민센터마다 젊은 사회복지사가 별안간 3~4명씩 배치되는 곳도 많았다.

그래서였는지, 복지팀장의 닫힌 생각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사례관리 서포터로서 종암동에서의 활동은 많이 위축됐다. 2015년 종암동에서 6개월을 활동했고, 2016년 휘경동에서 9개월간의 활동을 접고, 사례관리 서포터를 그만두었다.

젊은 복지 공무원들이 늘어나면서 길동에서 활동했던 것만큼의 보람이나 긍지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젊은 열정으로 복지사각지대가 없어지는 더 많은 결과가 이어지길 바랐다.


그런데  나는 이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은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굽은 허리를 영영 펴지 못한 채, 폐지를 줍고 계신 어르신만 보아도 발걸음이 절로 멈추곤 했다.

복지사각지대 취약계층 및 위기가정 발굴 및 지원을 위해 활동하는데 작은 일조를 한 귀한 경험이었다.

이 활동을 통해 어르신들과 교감을 더 잘하게 되었으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더 익히게 됐다.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어르신과 독거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뵙고 1:1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동참했었다지만, 다시 돌아보니 무척 고된 일이었다.

곰팡이 가득 차 올랐던 반지하와 마주 보고 앉기도 힘들 만큼 좁은 고시원으로 한 분씩 찾아뵈었을 때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 당시 반지하 주거시설의 열악했던 상황이 이번 폭우로 다시 떠올라 이렇게 옛 생각을 더듬어 본다.

아직도 그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우리가 꼬박꼬박 내는  세금만으론 아직도 이런 분들을 다 도울 수 없단 말인가!

'21세기 마지막 경제대국은 한국'이라더니,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가 아쉽다.


이젠 나도 나이가 더 들어, '활동하는 양심'은 저 멀리 밀어둔 채 말없이 지켜보며 살아갈 뿐이다.

활동하고 싶어도 몸이 자주 불편하니, 차라리 그 시절이 그립다 못해 돌아가고 싶기까지 하다.



CNN도 10일(현지시간), 이번 서울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와 악천후 관련 기사에 관해 보도했다. - 이번 주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집과 도로, 지하철역을 침수시키고 최고 9명을 숨지게 했다.

로이터도 반지하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사례를 언급하며,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같다고 묘사했다. - 홍수가 한국에서의 사회적 차이를 드러냈다.



새겨두고 싶은 기사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기록적인 폭우가 드러낸 ‘불평등의 민낯’

이번 폭우는 기후 위기와 기후재난의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반지하 거주자 등 주거약자를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이번 폭우처럼 폭염도 사회적 약자를 먼저 덮친다. 한국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 영향 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 고소득층(건강보험료 상위 20%)의 온열질환 발병률은 1만 명당 7.4명인 반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 수급자는 21.2명이 온열질환을 앓았다. 약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참사 이면엔 발달장애인 언니와 어린 자녀를 돌보는 하청 노동자의 삶이 있었다. 전국 민주노동조합 총 연맹 전국 서비스연맹이 공개한 부고에 따르면, 이 사고로 숨진 홍 모 씨는 면세점 협력업체 소속 현장 판매직 노동자이다. 연맹은 “홍 씨는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훌륭한 활동가였다"라고 추모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8101705001



"반지하 장애가족 책임지던 분, 밖에선 감정노동자 울타리"

침수로 세상 떠난 ‘장애인 가족’ 빈소

“장애 언니, 아픈 노모, 13살 딸 부양

항상 언니와 타인을 먼저 생각하신 분”

“재난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 더 가혹”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42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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