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 가는 계절마다 모두 아름답다. - 안양 예술공원 삼성 천변에 서서
여름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물길 따라 가을이 흐른다.
안양 예술공원 '벽천교'를 건너 '삼성천'으로 내려서니, 깊어가는 가을빛이 눈부시다.
매섭기만 하던 더위는 이별의 인사조차 남기질 못하고 서둘러 떠나가고, 벌써 선선한 갈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안양정(安養亭)과 계곡물로 쏟아지듯 내리는 가을 햇살은 서늘하다.
강가를 스쳐가는 갈바람은 제법 북풍처럼 차갑다.
우리는 계절과 수없이 많은 이별을 하며 산다.
민들레가 꽃씨를 날려 보내 듯 세월을 가볍게 떠나보내며 나이를 먹는다.
자연의 순리대로 오가는 아름다운 이별이다.
고운 이별은 시린 가슴에 남겨지는 상처까지 나누어 품고 간다.
성장시키고,
결실을 맺게 하고,
추억을 드리우고,
심상 속에 늘어진다.
쓸데없는 이기심과 욕심까지 뚝 뚝 떼어간다.
멀어져 가는 계절
스쳐가는 세월이
살아가는 찰나의 연속이니,
이별이 귀하고 아름다웠노라 노래한다.
언젠가
스스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때, 작별 인사쯤 편히 나누고 떠날 수 있으려나!
매몰차다 느껴지던 여름처럼,
벌써 으스스 차가운 갈바람처럼...
https://www.youtube.com/shorts/Ibg5Mss33lU
일본 건축가 그룹인 'CLIP'의 작품 '낮잠 테크'
등받이의 각도를 달리 제작한 벤치, 위치에 따라 기대어 앉거나 잠시 누워 낮잠을 즐기는 곳.
이상수 작가의 '휴식'
'낮잠 테크'에서 삼성천 맞은편 축대를 바라보면, 흔한 주방용품과 기계 부속품을 결합해서 만든 개미가 여러 마리 보인다.
'휴식'이란 작품 제목의 의미는 알 것 같지만, 소재가 차갑고 강해서 휴식이란 제목과 살짝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개미는 작고 약한 동물이지만, 집단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고 있는 종이다.
예로부터 큰 비를 미리 예보하기도 했고 협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 피크닉 클럽의 작품 '잔디 휴가 중'
사람들이 들어설 수 없었던 안양 종합운동장의 잔디로 만든 피크닉 장소다.
도쿄 피크닉 클럽은 개인당 공원 면적이 상대적으로 적은 도쿄에서 피크닉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2002년 결성한 단체다.
피크닉은 환경이 열악한 도시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행위를 뜻한다.
작품 '종이 뱀'은 일본 작가 켄고 쿠마의 창작품
구불구불한 뱀을 차갑고 강한 '페이퍼 허니콤(가볍고 강하면서 빛을 투과하는)이라는 딱딱한 재료로 표현한 것이 아리송했다.
어느 면도 평행하지 않은 뱀 모양의 구조물이다.
종이접기 방식을 이용했다는데, 자세히 보아야 이해가 됐다.
작가는 뱀을 몇 마리 표현했는지 모르겠으나, 내 눈엔 2마리로 보인다.
구조물은 세 개로 보이지만 바닥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두 개는 이어져 있는 듯 보였다.
덴마크 작가 에페 하인의 작품, '노래하는 벤치'
높낮이가 다른 좌석을 길게 늘였다. 일반적인 벤치를 변형시켜 새로운 행태의 벤치를 만든다.
작가는 이 작품 외, 동석자와 더 가깝게 앉도록 U자형 벤치, 좌석을 철봉이나 미끄럼틀로 사용할 수 있는 벤치 등도 만들었다.
에페 하인의 또 다른 작품 '거울 미로'
백팔 개의 거울 기둥으로 이루어진 원형 미로다.
기독교 문화에서는 신성한 장소로 향하는 순례자의 길을 상징하는 미로가 안양에서는 풍부한 불교문화와 결합한 작품이다.
백팔번뇌를 의미하는 거울 기둥들은 서로의 빛을 반사하며 관람자를 미로의 중심으로 불러들인다.
한국 작가 박윤영의 작품 '그림자 호수'
그림으로 이어진 한 편의 이야기 같은 8쪽 병풍이다. 병풍 그림마다 둥근 호수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하다.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찾아, 이를 연결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발레 <백조의 호수>와 영화 <엘리펀트 맨>, 캐나다 밴쿠버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 등 다양한 이야기를 버무려 담았다고 한다.
얽히고설켜 있는 이야기들이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도를 생각하면서 감상한다.
개인적인 시선으로는 두 번째 쪽에 그려진 옆쪽 그림이 '그림자 호수'라는 제목과 가장 잘 맞게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안양 상자 집 - 사라진(탑)에 대한 헌정'이라는 독일 작가 볼프강 빈터, 베르트 홀트 회르벨트 작품
다양한 색상의 음료 박스(독일 맥주 상자)를 재활용해서 만든 집이다.
불교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오래전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불탑을 현대적인 소재로 다시 만들었다.
작가는 불탑도 성당도 아닌 이 플라스틱 상자 건물을 통해 과거의 영적인 에너지를 현재로 되돌리고 싶어 했다.
이제부터는 정령의 숲으로 들어간다.
'정령의 숲'에는 작가 이승하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작가는 흙으로 빚고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굽는 과정 동안 작품들이 파손되는 경우가 많아 동일한 작품을 세 점씩 동시에 제작했다.
완성된 작품들은 자연석을 좌대로 하여 숲 속에 설치되어 있다.
도자기 제작 기법으로 완성된 인물상들은 숲에 살고 있는 많은 정령들을 표현한 것이겠지!
작가는 이 정령들을 산사 옆에 서 있는 불상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설치된 정령들은 모두 힘들고 아파 보인다.
신체 일부분이 망가져 있거나 구멍이 펑 뚫려 있다. 자세도 비정상에 가깝고 표정조차 심란해서 신령스러운 느낌보다는 처지가 안되고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영혼들이 이렇듯 힘들어 보이는 것이 개인적으론 좀 불편했다.
현세에선 인간의 고된 삶을 이어 갔을지라도 내세에서는 모두 편히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령들에서는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색채가 묻어나고 자연 그대로의 거친 느낌이 있다.
작가는 유약과 불에 의해 구워져 빛나는 정령의 표면으로 생동감과 사실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나는 갈바람이 스쳐가는 그 도자기의 차가운 빛에 한기를 느꼈다.
삼성산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 '정령의 숲'은 특별하고 묘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작가의 작품 설명 글을 읽고 나니, '소외된 영혼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위로와 평온을 얻는 장소가 되길 기원'하고 있었다.
이승택 작가의 '용의 꼬리'는 기와, 고드랫돌과 같은 전통적인 소재와 물, 불, 연기 등의 비물질적 소재로 표현됐다.
작가는 산을 하나의 커다란 용이라 느꼈다.
기와로 용의 꼬리 부분을 쌓아 끊긴 능선을 이어준다.
일본 건축가 그룹인 '클립'의 작품 '전환점'
이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산책로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플랫폼 격이다.
작품의 발판에는 세계 여러 도시의 이름들을 써 놓았는데, 마지막 도시는 '안양'이라고 쓰여있다.
삼성산 숲에 있는 플랫폼이니, 안양이 종착지다.
이 작품은 위로 바라다 보이는 Mvrdv의 네덜란드 건축 그룹의 '안양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과 아래로 쉐리 삼바의 '동물의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을 연결하는 지점에 있다.
'안양 전망대'는 데이터로 새로운 건축을 꿈꾸는 네덜란드의 몽상가 그룹 MVRDV의 작품이다.
MVRDV는 1993년 문을 연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건축 및 도시설계 사무소이다. 사무소의 명칭은 델프트 공대 출신의 창립 멤버 3인, 비니 마스, 야콥 판 레이스, 나탈리 드 프리스의 머릿 글자 M, VR, DV에서 따온 것이다.
삼성산의 등고선을 연장하여 산의 높이를 확장한 전망대다.
추상적인 데이터를 구체적인 형태로 바꾸는 작업을 시도해온 건축자 그룹의 작품답다.
등고선 두 개로 윤곽을 결정한 길을 따라 오르면 안양시 일부와 안양 예술공원을 조망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CPta4nm40M
전망대에서 360도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 태양빛은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갈 바람은 세차다.
최근 저질체력으로 힘들어하다 오랜만에 삼성산 중턱에 오르니 심신이 상쾌하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데,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아쉽다.
이번에도 이곳저곳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곧 다시 찾아오리라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