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 왕송호수엔 스카이 레일과 바이크 레일이 있지만, 한 겨울 평일(2월 1일)엔 멈춰 선 채로 하늘길도 철로도 한가롭다.
한 겨울엔 눈썰매장이 반겨주지만, 올해 폐장일은 지난 설날(1월 22일)이었고, 지금은 한파로 썰렁
한 느낌이 든다.
왕송호수는 1948년 의왕역 남쪽에 조성한 저수지로 현재 지하철 1호선 의왕역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붕어와 잉어 같은 민물고기가 잘 잡혀 강태공들의 ‘핫플’이었던 곳이지만, 계속 주변으로 건물이 들어서고 수질이 나빠지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그 후, 의왕시와 농어촌공사가 수질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시민들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가꾸어지면서 생태 호수로 거듭 태어났다.
왕송호수는 만수 면적이 0.96㎢(29만 평)에 이른다.
왕송 호수를 한 바퀴 쭉 드라이브한다.
간혹 겨울바람이 차장을 흔들긴 해도 오후 햇살이 온화하다.
자동차에서 내려 '조가네 갑오징어' 왕송호수점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호수 풍경이 쓸쓸하다.
이곳 필로티 주차장에서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몸이 날아갈 정도였다. 호수 맞은편 쪽은 밖으로 나서도 견딜만하던데...
레일바이크 철로 위도 오가는 바이크가 없으니 썰렁하다.
왕송 호수가 바라보이는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호수를 바라보니, 비로소 편하게 느껴진다. 된바람을 피해 실내로 들어서니 을씨년스럽던 호수조차 금세 온화해 보이니, 가벼운 변덕스러움에 쓴웃음이 나온다. 똑같은 풍경도 내 몸과 마음 상태에 싹 따라 달리 보인다.
왕송호수가 바라보이는 '조가네 갑오징어'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 / 갑오징어 전골 / 조가네 갑오징어 실내
갑오징어 전골로 조금 늦은 점심 식사를 즐기자, 기분이 더 업된다.
먹는 일이야말로 일상의 기쁨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극이 적은 음식, 육류보다는 야채를 선호하게 된다.
갑오징어 전골은 심심하고 담백하다.
매운 갑오징어 볶음을 좋아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엔 맵고 짠 음식을 멀리하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심심한 맛을 즐기는 사람으로 회귀해 가는 상태다.
원래 싱거운 음식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습관화되어 간다.
매일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던 철없던 아이도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작은 하루가 모여진 인생, '덧없다'하지도 않는다.
싹을 트고, 꽃도 피며, 울긋불긋 단풍으로 한껏 치장도 해보았으니, 이런 엄동설한엔 생각이 깊어진다.
오고 가는 것들에 대한 이치를 품게 된다.
생각과 이치가 균형을 잡고 마음을 조금씩 비워간다.
삶도 비례해서 여유로워진다.
엄동설한 한파도 세월을 역행할 순 없다.
계절도 사람도 시간 따라 오가니, 좀 더 넓고 길게 보면 하루하루 조용하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감사할 일이다.
21년 10월 호수 풍경 / 23년 2월 같은 장소
삭풍과 얼어붙은 호숫가에서도 변함없이 화목해 보이는 옛 가족의 모습이다.
봄에도 가을에도 저 자리에 저렇게 함께 모여있던 모습 그대로다.
레일바이크도 오가지 않는 겨울날, 차가운 철로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기다림조차 긴 철길을 닮아있지만, 한 바퀴 돌아오면 다시 제자리인 왕송 호수는 이 모든 시간을 품는다.
머지않아,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녹색 싹이 돋을 무렵이 되면 다시 분주한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왕성 호수를 둘러싸고 카페와 맛집들도 성업 중이다.
호반의 평화로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휴식처로 손색이 없는 곳이지만, 워낙 넓은 곳이니 구간을 정해 둘러보는 것이 좋다. 가족 나들이라면 레솔레파크 쪽이 좋고,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의왕레일바이크 정차장 인근이 더 좋다.
레솔레파크 - 2021년 10월 촬영
Rail road 선로전환기 / 레일바이크 정거장 쪽 선로 - 2019년 8월 촬영
쓰임을 다한 기찻길 옆 낡은 선로전환기가 어색한 흰색과 검은색 칠을 입고, 녹슨 세월의 흔적을 숨긴다.
낡은 침목과 선로전환기 앞쪽 이음쇠에 묻어난 녹, 야생 씀바귀가 공생하는 모습, 당시 비에 촉촉하게 젖어있던 숱한 자갈 돌멩이들이 지나온 세월과 침목 위에 서있던 우리를 서로이어 주었다.
기찻길에 서면, 선로 전환기를 '가지 않은 길'로 되돌려 놓고 싶은 충동이 인다.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었던 '젊은 날 설렘'이 지금도 애매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본다.
인연을 다하고 떠난 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아련한 기억 저편에서 서성인다.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아쉬움이 종종 솟구친다.
기억 속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의 무게와 새털처럼 날아오르고 싶은 욕망이 맞닿을 수 없는 철길처럼 마주 보며 달린다.
'난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피는 꽃도 지는 꽃도 모두 귀하고 예쁜 초평동 연꽃 단지 - 2019년 7월 촬영
의왕시 초평동 366번지 연꽃단지도 왕송 호수 가까이 있다.
초평동 연꽃단지는 1.3ha 규모의 시골 야산 아래 자리 잡고 있다.
7월 초부터 8월 말 사이에 방문하면, 장관 이룬 연꽃무리를 눈이 시리도록 감상할 수 있다.
어깨를 움츠리며 엄동설한에 찾은 왕성호수를 바라보고 있지만, 마음은 지난여름과 가을을 추억하기도 하고 새로 맞이할 눈부신 봄날을 기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