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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의 선암사, 가장 한국적인 사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

by Someday

낙안읍성에서 선암사로 향하는 길, 도로 오른쪽으로 상수원 보호구역인 '상사호'를 지나간다.

전남 순천시 상사면에 있는 '상사호'는 모후산과 조계산 아래 있으며, 자연경관이 빼어난 인근에 주암호, 송광사, 낙안읍성, 고인돌 공원 등의 관광지가 있다.

순천, 광양, 여수 등지에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곳으로, 유역면적만 135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인공호수다. 3월 11일 현재, 계속된 가뭄으로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상수원 보호구역인 '상사호'


선암사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거의 1.1km를 더 걸어야 하고, 매표소에서 다시 선암사 승선교까지도 제법 걸어 들어가야 한다.

낙안읍성에서 산책을 즐기고 온 탓인지 사찰까지 걸어가는 길이 다른 사찰들에 비해 너무 멀게 느껴졌다.(실제 다음 날 아침, 잠시 방문한 화엄사와 비교하면 엄청 긴 거리였다.) 결국 걸어가는 도중, 작은 바위에 주저앉아 2번이나 쉬면서 갔다.


승선교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도 가뭄으로 말라있다.

'승선교'는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서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할 때 놓인 다리다.

1698년(숙종 24년)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 바라며 백일기도를 드렸으나,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했는데,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대사는 이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로 모셨고, 절 입구에 이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선암사는 전남 순천 조계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천년 고찰이다.

529년(신라 진흥왕 3년) 아도화상이 이 절을 처음으로 세워 고청향산 해천사라 했다는 설과 875년(헌강왕 1년) 도선국사가 도참설과 불교 신앙에 따라 명산에 세운 비보사찰로 창건, 선암사라 하였다는 2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선암사는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어 모든 전각이 불에 타는 등 거의 초토화되었다.

1660년 경준 대사, 경잠 대사, 문정 대사가 대웅전을 다시 세우는 등 8년간 손질하고 고쳤다고 하나, 전쟁 이전 상태로 복구되지는 못했다.

이후 호암 스님이 선암사 중창불사를 마무리하면서 전각 수리와 함께 승선교의 축조 등 사찰을 정비했다. 조선후기에는 대웅전 등의 불사를 통해 옛 사찰의 모습을 되찾았고, 사찰의 세력을 확장했다.

조선말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선암사 대승암에서 1문 4대 강사를 배출, 선암사가 교학의 근원이었음을 보여 준다. 선암사 5대 강사는 모두 남암 출신으로 함명, 경붕, 경운, 금봉, 철운 스님으로 이어진다. 선암사는 지금까지 세계문화유산 태고총림(太古叢林)으로 청정도량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선암사 전각들 가람 위치


강선루

강선루는 승선교를 지나 선암사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누각형 건물이다.

선암사 골짜기, 승선교 등과 조화를 이루어 사찰로 들어서는 중생들에게 자연과 건축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삼인당

선암사 승선교를 지나 일주문으로 가는 오른쪽에 위치한 연못이다.

삼인당은 긴 알 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기록에 의하면 862년(신라 경문왕 2년) 도선국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삼인이란 제행무상인, 제법무아인, 열반적정인의 삼법인을 뜻하며 불교 중심 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선암사 일주문

선암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사찰 건물로 속세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한다.

지붕 옆면이 사람(人) 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으로 2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앞뒤로 보조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여 위엄을 더했다.

앞면 중앙에 '조계산선암사'와 뒷면 중앙에 '고청량산해천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일주문 앞에 있는 고목


범종루

범종루 오른쪽으로 범종각이 있다.

선암사에는 조선시대 주조된 범종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범종각에 있다.


범종각

범종각 왼쪽으로 만세루가 보인다.

만세루는 사찰의 강당 역할을 하는 장소이며 뒤로 대웅전이 보인다.


만세루 / 왼쪽 '만세루'와 오른쪽 '심검당' 사이로 보이는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 대웅전
대웅전 처마

선암사 대웅전은 경내 전각으로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정유재란(1597년)으로 불에 탄 것을 1660년(현종 1년) 새로 지었다.

그 후 1766년(영조 42년) 다시 불에 탔고, 1824년(순조 24년)에 지어 지금에 이르렀다.

선암사 대웅전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으나, 화려한 건축양식과 장식성에서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다.


웅장한 대웅전 내부

대웅전 내부는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으로 장엄하게 단장되어 있고 선명한 단청이 조화를 이룬다.

석가모니 상 뒤에는 '영산회상도' 탱화가 그려져 있다.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과 8대 보살, 10대 제자, 12명의 신장 상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대웅전 앞에 있는 동서삼층석탑

사찰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좌우로 3층 석탑 2기가 있다.

두 개의 탑은 같은 수법으로 만들어졌으며, 각 부에 다소 손상을 입기는 했으나 규율성이 느껴진다.

아래위 비율도 안정되어 있는 우아한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지장전

지장전은 임진왜란 전 선암사 전각 기록에 명부전(冥府殿)이 있어 조선 전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지만, 선암사 명부전은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언제 지장전이 중창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무독귀왕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1644년에 지장전의 상들이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644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지장전도 1823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824년 해붕, 눌암, 익종 세분 대사에 의해 중창된 것이다.


팔상전

팔상전은 경내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8개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와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문수암 오르는 담장길 따라 선암매가 줄지어 서있다.


선암사 매화나무는 3월 말경에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는데, 이들 매화나무를 가리켜 선암매라고 부른다.

우리가 방문했던 3월 11일엔 아직 못다 핀 매화 꽃봉오리들이 반겨주고 있어 살짝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운 꽃망울들과 눈맞춤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진출처 : 두산백과 두피디아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丁) 자형 건물이다. 정면에 기둥과 활주를 내어 처마선을 길게 돌출시켰다.

기단은 길고 큰 석재로 전면은 1m 정도의 축대를 쌓아 올렸고, 양측면과 후면은 외벌대이다.

1660년(현종 원년) 경잠, 경준, 문정 3 대사가 초창했고, 1698년(숙종 24년) 호암 스님이 중창했다. 그 후 1824년(순조 24년) 해붕, 눌암, 익종 3 대사가 재 중창한 건축물이다.

정조는 선암사 눌암대사의 100일 기도를 통해 순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순조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인(人)’ ‘천(天)’ ‘대복전(大福田)’이란 친필 현판을 하사하여, 현재까지 건물 내부에 걸려 있다.


무우전 담장 뒤편

선암사 뒤 북쪽, 사찰을 빠져나가는 길목 오른쪽으로 선매암이 줄지어 서있는 돌담장 안으로 서너 채의 건물이 보인다. 태고종 종정이 머무는 곳인 '무우전'과 '각황전'이다.

이곳에는 고려시대 조성된 철조 석가모니불좌상도 한 구 있다고 하는 데, 일반인들은 들어서기 어려운 곳이니, 담장너머 바라본 고즈넉한 풍경에 만족하기로 한다.


중수비

중수비는 선암사 무우전 뒤편인 북암 오르는 길목에 있다.

정유재란으로 불에 타버린 사찰은 약휴 대사의 노력으로 힘들게 복원되었고 그 후, 그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 중수비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1707년(숙종 33년)에 비를 세웠으며, 채팽윤이 글을 짓고, 이진휴가 글씨를 섰다.

조선 중기 작품으로 조각이나 표현기법이 아름답다.


중수비 주위로 키 큰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이 또한 장관이다.

편백나무에는 천연 항균물질인 피톤치드 많이 함유되어 있어 살균 작용이 뛰어나고, 내수성이 강해 물에 닿으면 고유의 향이 진하게 퍼져 잡냄새를 없애주는 나무 도마로도 사용된다.


편백나무 숲


원통전과 각황전 돌담 사잇길


꽃봉오리를 가득 품고 있는 선암매



선암사 삼지닥나무

삼지닥나무 꽃은 향기가 진하고, 꽃은 3∼4월에 잎보다 먼저 노란색으로 핀다.

꽃가지 끝에 둥글게 모여서 달리는데 꽃자루가 아래로 처진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제지 원료로 심었으나 요즈음은 관상용으로 심는다.

높이는 1∼2m이고, 가지는 굵으며 황색을 띤 갈색이고 보통 3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수과이고 달걀 모양이며 7월에 익는다. 종자는 검은색이다.

가지가 3개씩 갈라지므로 삼지닥나무라고 하며, 나무껍질은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한다.


선암사 산수유 / 선암사 홍매화


장경각


삼성각


아름다운 선암사 경내 풍경


선암사에서 풍기는 소박함이 한국적인 사찰이란 뜻일까?

아님, 고고한 기품이 전해져서일까?

천년을 지켜온 유구한 역사가 담겨서 일지도 모르겠다.

조계산이 품은 봄의 숨결은 새털처럼 가볍고, 선암사가 품은 세월의 깊이는 묵직하다.


측간

선암사 측간은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1920년 이전 지금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화장실 건물이다.


아직 봄이 가까이 서성이던 3월 초순 선암사 경내는 따사롭고, 미풍은 향기롭기까지 하다.

편백나무 숲길을 돌아 야트막한 선암매 언덕길로, 우리 부부를 따라 함께 내려온 봄바람이 대웅전 앞뜰에서 서성이다 저만치서 돌아간다.

잠시 머물다 가는 중생의 마음은 가녀린 봄바람에도 자꾸만 흔들리는데,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선암사 봄을 살짝 비껴가던 바람도, 잠시 머물다 돌아서 가는 우리 인연도 모두 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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