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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Mar 25. 2023

남산 봄나들이, 걸으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희망

대여섯 해 넘게, 남산에 오를 때마다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렸던 것 같아!

오늘(3월 23일)은 명동역 한국전력공사 근처에 주차를 하고, 소파로를 따라 걷는다.

서울예대 남산 캠퍼스, 리라 초등학교, 숭의여자대학이 보인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가득하니, 마스크로 입과 코를 꼭 눌러 가린 채 남산을 오른다.   

3월 하순인데도, 그래서 찬란한 봄은 아직 저만치 멀리 느껴지나 보다.


해발 270m 남산으로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다.

장충단 공원 입구인 수표교 앞에서 5번 버스를 타고, 남산타워를 향해 올라가면 주위를 감상하며 편하게 갈 수 있다.

수표교는 장충단공원 입구 개천 위에 놓여 있는 다리로 조선 전기 때 만들어졌다.

물길을 건너는 통로이자, 홍수 조절을 위해 수량을 재기도 했던 중요한 다리이다.


2016년 4월, 숭례문 쪽에서 오르는 길 / 2017년 4월, 수표교 풍경

N서울타워로 가기 위해 숭례문 쪽에서 오르는 길도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왼쪽으로 남산도서관과 오른쪽으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마주하게 된다. 나무 덱으로 조성된 계단을 따라 잠두봉 포토아일랜드를 거쳐 N서울타워로 이어진다.


남산은 중구와 용산구 경계에 있다.

남산은 앞산을 뜻한다. 경복궁에서 바라보면 딱 앞에 있는 산이다.

목멱산(木覓山), 인경산(引慶山)이란 옛 이름을 지니고 있는 남산은 옛 한성부의 안산(案山)이기도 했다.

남산 순환로를 따라 드라이브만 해도 기분이 편안하고 좋아지는 산이다.

N서울 타워까지 가장 빨리 편하게 올라가려면 남산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케이블카 타는 곳은 오늘 우리가 올라가는 길, 남산 왕돈가스 전문점들 근처에 있다.


걸어 올라가는 길 초입, 골목 아래로 '목멱산방'이란 현대식 한식당이 내려다보인다.

2016년 '목멱산방'은 현재 '목멱산 호랭이'가 있는 자리에 있던 한식당일 것 같다.

당시 꽤 유명한 한식 전문점이었는데, 2017년경 없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때 '목멱산방'이 현대식 건물의 명동 맛집으로 쭉 명맥을 이어온 것 같다. 따로 들어가서 알아보진 않았지만, '목멱산방' 상호를 만나니, 잠시 눈길이 머물렀다.


2016년 10월 목멱산방 / 2023년 3월 23일 현재 목멱산 호랭이 / 2023년 현재 현대식 건물의 목멱산방


남산 왕돈가스 전문점들이 몰려 있는 앞을 지나, '여명학교'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개나리꽃들이 만발한 남산 자락과 N서울타워를 올려다보며, 남산 둘레길(북측순환로)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여명학교' 앞에서 바라본 남산 'N서울타워'                                



남산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계단을 오르려니, 더위가 느껴진다.

코드를 벗어 놓고 올라올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찾은 남산 산책길이니 기분이 상쾌하다.

산으로 들어서자 마스크도 벗었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모두 나쁜 날인 것이 아쉽고, 이젠 남산 타워 정상까지 단번에 걸어 올라갈 자신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난 수년간 남산에 올랐을 때마다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렸던 것 같아 더 속상하다.


2016년 4월 미세먼지 / 2017년 4월 미세먼지 / 2023년 3월 현재 미세먼지                                



계단을 오르면, 곧 8.15 60주년인 2005년에 세운 순국동지들의 위패 봉안 기념비가 먼저 보인다.

1945년 8.15 해방 후, 대한민국건국 과정과 1950년 6.25 동란을 겪으면서 수많은 청년들의 자기희생과 투쟁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했다.'라는 내용을 읽고 나니, 이내 숙연해진다.

기념비를 둘러보고 계단 길로 나서다 보니, 사람답게 살다 가야겠다는 생각을 새로이 하게 된다.


기념비 앞쪽 / 기념비 뒤쪽


계단을 다 오르면 남산 둘레길 북측순환로와 이어진다.

우리는 N서울 타워 쪽으로 걸어가 남산 도서관 쪽을 돌아올 생각이다.

오른쪽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곧 청록파 시인 조치훈 시비가 보인다.

파초우

                조치훈


외로이 흘러간

한 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촛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조 앉어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츰 나의 꿈을

스쳐 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조치훈 시인의 '파초우' 시비 곁으로 조성된 작은 화단에선 화려한 이국의 꽃들 봄 인사를 건넨다.

우리 야생화로 조성했다면 더 정감이 갔겠지만, 눈부신 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 없어 보인다.


아네모네 / 루핀(루비너스)
보라색 꽃 무스카리, 희색과 연보라 꽃 서양 봉선화(임파첸스), 빨간 노란 둥근 꽃들 라넌큘러스/ 화단 풍경                              

조치훈 시비와 작은 화단을 지나, 남산 둘레길 오른쪽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맞은편으로 '목면산 호랭이'한식식당이 보인다. 우리는 산책을 즐기고 돌아오면서 이곳에 들려 점심식사를 즐길 예정이다.

N서울타워는 바라보기만 하고, 남산 도서관 근처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돌아볼 생각이다. 한양도성 유적지는 2013년부터 발굴 조사된 곳이니, 우리로서는 처음 둘러보는 장소다.



남산 가득 스며드는 봄의 손길, 보라색 철쭉과 노란 개나리꽃이 새봄의 희망을 전한다.

환경, 경제, 정치... 어느 것 하나 온전한 희망을 울리지 못하는 요즈음이다.

그래도 남산에 깃든 봄의 숨결을 느끼자니, 어김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순리에 감탄하게 된다.

자연의 순리는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이는 희망의 메시지로 울리기도 한다.  

결국 사물의 이치나 진행되는 일들의 결과는 도리에 딱 맞게 바르고 명백히 귀결되지 않을까, 믿고 싶다.

삶 속에는 길흉화복이 함께 굴러 가지만,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하지 않던가!  



둘레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른다.

계단 길 따라 연녹색 옷 갈아입은 나무들이 손을 잡아 이끌 듯, '힘내라' 다독이며 품어준다.

아직 연약해 보이지만 곧 짙은 녹음으로 남산을 가득 채울 건강한 나무들이다.

어수선한  현 시국의 어려움도 잘 극복하고, 다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조용히 솟구치는 봄날이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방공호가 있다.

방공호에서 내려다보면, 서울특별시 교육연구 정보원과 남산도서관이 보인다.



남산 도서관 / 서울시 교육연구 정보원


방공호 바로 옆으로 각자 성석이 있고, 아래로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보인다.

유적전시관에는 한양도성 발굴 과정과 시기별로 성곽 쌓은 돌의 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축성 구조물이 정리 전시되어 있다.

건축에 깊은 관심이 없더라도 자긍심을 갖게 되는 유적지 현장이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 각자 성석
유적지로 내려가면서 돌아본 각자 성석과 N서울타워


한양도성 유적전시관과 서울시 교육청 교육연구 정보원


숭례문 쪽에서 자동차를 타고 올라오면, 유적전시관 아래 있는 공용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건강과 시간이 허락된다면, 남산 둘레길을 따라 걷기가 최고지만.


한양도성 유적전시








투박한 돌덩어리를 섬세하게 ㄱ자로 절개해서 맞춘 석공의 솜씨에 매료된 현장 / 도성유적 전시관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에서는 2013년~2014년 발굴 조사를 통해 드러난 한양도성 성벽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한양도성은 왕조의 수도 성곽으로 1396년 건설됐다.

이곳은 성벽의 남서쪽 구간에 해당되는 유적지로 그동안 멸실된 줄로만 알았던 성벽 구간이다.

유적전시관이 자리 잡은 남산 자락은 한양도성의 오랜 역사를 한눈에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양도성 유적(1396)-조선신궁 배전 터(1925)-남산 분수대(1969) 등을 포괄하는 전시관 권역에서는 조선시대 축성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수난, 해방 이후의 도시화, 최근의 발굴 및 정비 과정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야외유적 안내도 / 다시 각자 상석을 지나, 올라왔던 길로 돌아간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에서 내려다본 미세먼지 가득 찬 서울시내 풍경


남산 둘레길을 걸을 때는 미세먼지를 느끼지 못하며 잊고 있었지만, 내려다보이는 서울시내는 답답한 대기 상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남산의 벚꽃들은 아직 만개하기 전이지만, 연두색 옷 갈아입은 나무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우리는 유적전시관을 둘러보고, 남산 N서울 타워는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내려오는 길, 직박구리가 요란하게 지저귄다.

폰 카메라 속에 콩알보다 작게 잡힌 새지만, 연녹색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좋아 사진 속에 담았다.


목멱산 호랭이 한식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으로 목조각 한 쌍이 인자하고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2016년 10월 찍어둔 목조각상과 2023년 3월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보니, 이 목조각상도 나처럼 나이를 먹고 있었다.

혈색 좋던 얼굴이 빛바랜 채 늙어가니,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연륜이 주는 더 인자하고 더 포근한 표정을 마주할 수 있으니, 쓸쓸한 마음은 들지 않더라.


2016년 10월 미소 / 한국인의 미소 / 2023년 3월 미소



목멱산 비빔밥(1만 원 / 1인) 목멱산 도토리묵(1만 원 / 1인)


정갈하고 소박한 점심 식사를 즐겼다.

한옥 창으로 불어드는 봄바람이, 오르락내리락 즐긴 산책에서 느낀 더위를 쓱 밀고 간다.  


식사를 즐긴 2인실에서 바라본 대문과 장독대
비어있던 5인(이상) 실  / 남산 케이블 카가 한식당 건물 위로 지나간다.


목멱산방 호랭이 한옥 앞을 흐르는 맑은 물길 / 남산 둘레길을 벗어나 명동 소파로를 향해 내려가고 있는 중


소파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재미로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내려섰다.

남산초등학교 뒷길로 이어진 명랑 골목은 지나쳐 걸었지만, 남산초등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만화세상이 그립긴 했다.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만화세상이 다시 펼쳐져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날, 담장 위에 그려진 만화 속 푸른 초원,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을 한동안 바라보았던 기억이 났다.


2016년 10월 찍은 남산초교 담벼락 / 2023년 3월 재미로로 내려선 돌계단


'1년 내내 시험만 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학창 시절은 책과 씨름의 연속이었는데!

돌아보니, 국민학교 시절만큼 행복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모든 세상사 걱정은 부모님이 다 짊어지고 계셨으니, 우리는 열심히 놀고 대충 공부만 하면 되던 아이들이었다.'


지금은 부모님도 이미 먼 길 떠나셨고, 7년 전 함께 남산 둘레길을 걷던 지인들도 다 먼 곳에 있다.

기억조차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데, 고맙게도 블로그에 당시 흔적이 남아있다.

간혹 건강을 핑계로 포스팅을 소홀히 하기도 하지만, 블로그는 멀어져 간 추억을 쉽게 다시 불러오는 좋은 벗이다.

 

*오늘 오전, 블로그에 올린 글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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