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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Aug 08. 2023

입추 단상 - 꾸미가 한달음에 오기엔 너무 먼 할미 집

돌아보니 여름은 늘 무더웠다. 

봄이 지나간 자리로, 지루한 장맛비가 찾아들어 평생 그치지 않을 것처럼 매일매일 퍽 붓듯 내렸다.

곧, 혹독한 무더위가 찾아들어 땀방울로 축 지쳐 내린 내 살갗은 7월 내내 생기를 잃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겠지. 

올해도 어김없이 불볕더위를 가르며 입추가 찾아들었다. 

오늘이 입추, 내일모레가 말복이다. 

바람결이 어제와 살짝 다르다. 

좀 더 부드럽다. 

햇살도 휘청거리는 한낮, 나는 벌써 찬란한 가을빛을 품고 싶다. 

잠시, 창밖으로 얼핏 갈바람이 슬쩍 스쳐간다는 착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한낮엔 35도를 서성이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새벽녘에도 27도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온도계 눈금이 야속하다.

하루 종일 힘겹게 돌아가는 에어컨에 의지하는 일상이 답답하다.

기계가 쭉 끌어내리는 온도계 눈금은, 창밖 불덩어리 같은 더위를 더 부채질한다. 

종종 이런 호사(?)를 과하게 누린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더위에 맥을 못 추는 것도 세상 태어나서 처음 하는 혹독한 경험인 것 같지만, 돌아보니 여름은 늘 무더웠다.


마른번개 - 2023. 08. 06. 이른 밤 -


7월 하순, 매일 오락가락하던 장맛비도 주춤거릴 즈음, 중복(21일)과 대서(23일)도 잘 밀어내 버렸다. 

그즈음 같은 사람이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시작점을 찍었다. 

더위에 지쳐서인지, 설렘이나 두근거림조차 그냥 스쳐간 변화였다.

사랑하는 손녀 '꾸미'와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아쉬울 것도 미련도 없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페이스 톡으로만 만난 꾸미를 어서 품에 꼭 안고 싶다.  

"꾸미야, 곧 만나!"


건강한 꾸미, 어린이 집에서도 쑥쑥 잘 자란다지.




2018년 7월 23일(월)은 대서였다.

대서는 24 절기 중 열두 번째 절기. 소서(小署)와 입추(立秋) 사이. 

각 지역 대표 관측 지점 측정한 기온은 영천 38.0도, 경주 38.0도, 대구 37.9도, 의성 37.9도, 합천 37.7도, 안동 37.3도, 서울 35.7도(22일엔 38도 기록).

서울과 경기는 오존 농도도 매우 높았다.

대서는 중복(中伏) 즈음이니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할 때이다. 

예로부터 대서 더위로 '염소 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지 않는가.  


오전엔 나름 괜찮았던 한 정치인의 투신자살 소식도 전해졌다. 

그가 남긴 유서는 종일 매스컴을 가득 채웠다.

'4000만 원 받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는 생전에 자녀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둘 다 늦게 결혼했고, 또 제가 7년간 수배당하다가 교도소 갔다 오니까 첫아이를 갖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됐다. 사실 그동안 아이를 갖기 위해 한약도 먹고 용하다는 병원에 다니면서 꽤 노력을 했지만, 지금은 포기했다"라고. 

입양도 시도해 봤지만 당시엔 국회의원 신분도 아니었고, 수입이 일정치 않아 거절당했다고 한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구절이 생각났다. 

'신념이 무너지는 원인은 단 하나다.

신념을 잉태한 초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듯 초심을 소중히 다루어라.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초심이 불꽃처럼 늘 타오르게 하라.'


무더위도 답답함도 머물지 않고 흐르니 다행이다. 

어수선한 시국에도 세상은 돌아가고 세월은 흐른다. 

위대했던 로마 황제도, 평판이 괜찮았던 그 정치인도, 평범한 나도 각자 초심을 잃지 말고 살아야 한다. 

- 5년 전 블로그에 올렸던 단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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