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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Sep 01. 2023

흉상과도 이별

조국 광복을 위해 짧은 생을 뜨겁게 살다가신 분


8월이 깔끔하게 떠난 아침, 9월 첫날이다.

이른 아침 기온이 뚝 떨어져 있었다.

남편 '묵'은 코로나와 결별하고, 일찍 출근했다.

배려인지 모르겠으나, 마침 에너지 관련 교육에 참석하게 되어, 저녁에 돌아온다니 짧은 이별인 셈이다.

계절과도 수없이 이별하며 산다.

여름이 호기롭게 백기를 든 것은 가을에 대한 배려다.

민들레가 꽃씨를 날려 보내는 것도 아름다운 이별이다.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도 원치 않는 이별이 진행 중이다.

이 분 흉상과의 이별 논란은 오히려 온 국민들에게 일제 식민지 시대 통한을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이분을 책에서 '독립운동가로, 고려혁명군관학교 설립자인 우리 국군의 창시자'로 배운 대로 그대로 기억할 것이다.

흉상이 옮겨진다고 다른 사람으로 바뀌진 않는다.

부모님 세대 이별은 개인의 슬픔을 넘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전쟁과 이념 상처로 계속 남아 있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을 평생 헤아려 본다면, 이별은 수없이 많다.

다시 못 본다 해도 슬프거나 아쉬울 일 없는 관계도 많다.

필요의 관계가 해결되면, 쿨하게 지나치는 일상의 이별이니, 다시 만난다 해도 서로 얼굴과 이름이 맴돌거나 헷갈린다.

가끔, 기억 한편에 남아 있는 이별도 있긴 하지만.

조화롭게 어울려 살다 간다는 것은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서 있는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할 때, 사회나 국가도 조화롭게 굴러간다.


한동안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아픈 이별도 있다.

산사람과 죽은 이의 이별이다.

엄마와의 이별은 꽤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길모퉁이, 신호등 사거리, 성빈**병원을 지나치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슬픔이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곤 했다.


이별은 아픔과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니다.

성장시키고,

결실을 남기고,

추억을 두고 떠난다.

특히, 일제 강점기 조국의 광복을 위해 짧은 생을 뜨겁게 살다가신 분들의 이야기는 귀감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별할 때를 스스로 알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몸이 어는 정도 뻣뻣해져 가고 자판 두드리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인정하지만,

내 생각은 아들딸인 MZ 세대보다 유연하다.

9월 첫날, 다시 새로운 이별을 준비하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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