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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Dec 05. 2023

나이 듦을 살펴본 시간

'정말 가볍게 살고 있는 걸까?' 되묻곤 하다가도...

가볍게 산다.

걸치고, 메고 드는 것, 신는 것, 바르고, 먹는 것까지. 

뭉클한 가슴 사이로 겨울바람이 스며든다. 

몽글몽글 피어나는 구름이 달달한 아침 햇살을 비켜선다. 

가벼운 손길로 베란다 블라인드를 올린다. 

그러나 추억이 담기는 머릿속, 추위에 뻣뻣해지는 몸뚱이는 점점 무거워진다. 

침침한 눈, 쇠약한 뼈마디, 잘 트는 입술, 랩 가사가 전달되지 않는 귀, 알레르기로 훌쩍 거리는 코, 무뎌진 촉감까지 다  삐꺽거린다.

안경 없이 만나는 거울 속 흐릿한 얼굴은 여전히 말끔하다. 두 눈 위에 누진다 안경을 걸치고 따로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쇠약한 허리뼈 통증을 견뎌내기 위해, 매일 40분 이상 3.7 속도로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항상 '하기 싫지?"라고 속삭이던 자신과의 갈등 속에서 습관으로 굳어졌다. 아침엔 비타민 D 고함량 칼슘을, 점심엔 루테인을 먹는다. 환절기 더 잘 트는 입술엔 수시로 립밤을 발라주고, 저녁엔 멀티비타민과 초록 홍합 오일을 장기 복용 중이다. 복용하는 영양제 가짓수가 좀 무겁다. 노년엔 누구나 이 정도는 복용한다고들 하지만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이도 습관이 됐다. 

'정말 가볍게 살고 있는 걸까?' 되묻곤 하다가도, 가는 세월에 잘 순응하며 사는 거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지지난주 일요일, 오빠 부부가 다녀가셨다. 

열 몇 살 나이 차이가 나다 보니, 내 어린 시절 오빠는 너무 커 보이던 어른이기도 했다. 세월이 훅 흘러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됐다.  

내 말투는 여전히 존댓말이지만, 이젠 농담도 건네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노년의 이야기를 격의 없이 주고받는다. 이쯤 되면 친구 같기도 한 인생 선배님이다. 

오빠는 건강을 잘 유지하신다. 평생 아령과 산책, 등산을 꾸준히 즐겨하는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올케언니는 허리가 불편한 상태다. 내년 11월, 겨우 수술을 예약한 상태라니 그동안 현상태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명의의 수술을 받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하니, 긴 기다림이긴 하다. 걷기와 수영을 꾸준히 하고 있다지만, 이미 망가진 허리는 세월을 비껴가기는커녕 더 빨리 통증을 재촉한다.  

언니는 걷기를 잘하는 편이나, 앉아있는 것이 힘들다는 증상이 나와 비슷했다. 다리에 쥐가 잘 나는 것까지. 처지고 치이는 건강 상태가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다시 살펴보게 되는 나이 듦은 즐거운 화제가 아니다. 자식들과 손주에 관한 이야기들도 오가지만, 퇴행성 질병에 관한 화제가 주를 이룬다.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늘고, 머리카락에 힘이 빠지고, 손등에 검버섯이 생기는 것은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걱정할 일도 아니다.  

나는 내심 허리 수술하지 않고 저세상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걷기와 가벼운 러닝을 꾸준히 하고부터 다리에 쥐도 덜 나고, 걸음걸이도 2~3년 전처럼 다시 빨라졌다. 예전과 꼭 같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꽤 만족스러워하며 살고 있다. 물론 결심대로 마무리될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오빠 부부를 모시고 이우철 한방 누룽지 삼계탕(동남구 유랑로)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얼마 전, 손녀 꾸미를 데리고 찾았던 곳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맛있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오빠 부부는 누룽지 삼계탕, 우리 부부는 녹두 삼계탕을 시켰다. 두 분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녹두 삼계탕도 맛있었지만, 나는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우리는 홀에 딸린 무료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2주 전 꾸미 모녀를 데리고 갔었지만, 오래전에 다녀가셨다는 오빠 부부를 모시고 널따란 독립기념관을 쭉 둘러 보았다. 이곳으로 이사 온 4개월 동안, 세 번째 방문하는 독립기념관이니 제집처럼 편했다. 잔뜩 흐린 날씨였지만, 겨울바람도 전 날 추위도 쓱 물러간 터라 걷기 좋았다. 

어른 팔뚝보다 더 큰 황금 잉어들이 무리 짓어 살고 있는 백련 못을 지나 겨레의 탑으로 걸어갔다. 우리는 겨레의 집 뒤쪽에 있는 6개의 전시관 중 1, 2 전시관만 둘러보았다. 3, 4전시관 4,5전시관은 다시 2번 더 찾아와 여유롭게 천천히 나눠보기로 했다. ㅋ

우리 부부는 지난번 1전시관만 둘러보았는데, 이제 겨우 2전시관까지 돌아본 셈이다. 

제1관 겨레의 뿌리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불국의 의지와 대외 항쟁을 시대별로 보여준다. 

겨레의 뿌리관(구 민족 전통관)은 우리의 오랜 전통을 주제로 한다. 선사시대 유물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의 전시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제2관 겨레의 시련

이곳은 근대 민족 운동관이었으나, 2008년부터 겨레의 시련관으로 바뀌었다. 

개화기와 일제 침략 과정, 일제강점기의 일본 통치를 전시하고 있다.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 35년간 민족의 시련과 치욕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유쾌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일제 치하 치욕의 역사도 우리 역사의 일부분임에 틀림없다. 최근, 조국 광복을 위해 짧은 생을 뜨겁게 살다 가신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논란이 다시 생각났다. 누가 진짜 애국자인지, 되묻게 되는 요즈음이다. 

천안에서 전개된 가장 대표적인 독립만세운동으로 1919년 4월 1일에 갈전면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다. 당시 이화학당 학생이었던 유관순 열사가 함께 만세를 불렀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산불처럼 일어났던 3.1 운동이야말로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세계적 유례없는 비폭력 저항운동이 아니었나! 혼란스러운 시기지만, 이미 일본을 뛰어넘은 문화 강국의 위상이 우리를 계속 지탱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나무로 만들어진 전차 모형이 신기했다. 우리 4 사람은 모두 전차를 타본 세대이긴 하다. 

일반 도로 위 레일로 달리던 느린 전차를 타 보긴 했지만, 이런 형체는 아니었다. 오빠는 전차를 자주 탔다고 하시지만, 우리 부부는 각기 아버지 어머니 손잡고 탔던 어슴푸레한 기억밖엔 없다. 

중학생 시절 즈음, 전화교환수가 있긴 했지만  내 기억 속 교환수는 여자였다. 다른 분들은 남자 교환수도 있었다고 하니 내가 중에서 조금 더 젊은 건 맞나 보다.

전시관을 함께 둘러보면서 새삼 오빠의 해박한 우리 역사 지식에 놀라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공유하지 못한 채 바삐 살아온 세월을 뒤늦게 포개보면서 나이 듦까지 살펴보게 되었다. 



First Love - BTS, SUGA

'이대론 가지 마...' BTS 슈가의 특별한 첫사랑

래퍼가 운율이 있는 언어의 배열을 속삭이듯 노래한다. 

'내 기억의 구석 한켠에 자리 잡은 갈색 피아노

어릴 적 집 안의 구석 한켠에 자리 잡은 갈색 피아노... 

... 그때도 몰랐었지 너의 의미 내가 어디 있든 넌 항상 그 자릴 지켰으니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네 이대론 가지 마 you say...'

마지막 '절대 너는 내 손을 놓지 마' 하던 절규에서 그의 속내가 최고조로 드러나지만, 곧 다시 곡의 감미로운 도입 부분이 들러붙어 엔딩을 장식한다. 첫사랑의 추억이 짙은 호소력으로 전해지는 매력적인 곡이다.

피아노 선율이 담긴 배경음악은 클래식 컬하고 감미롭다. 랩뮤직에 클래식을 담은 그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슈가는 피아노와 대화를 나눈다. 첫사랑은 갈색 피아노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S9ou2FCLW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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