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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Aug 21. 2024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절규너머)[2]

뭉크 가족사는 병과 죽음의 그늘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평생, 생명과 죽음에 대한 불가사의한 상념에 쌓여 지내야 했다. 

그가 관찰한 슬픔과 기쁨은 이전 포스팅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1]에서 만났던 '생의 프리즈(The Frieze of Life) 시리즈 작품들과  이어지는 <불안>, <절규>, <자화상>, <입맞춤>, <마돈나> 등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년 12월~1944년 1월)는 노르웨이 출신 표현주의 화가, 판화 작가다. 

그는 노르웨이 국민 화가로, 그의 초상은 1000 크로네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신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점묘 수법을 사용, 삶과 죽음의 극적이고 내면적인 그림을 그렸다.

1892년 베를린으로 이주, 미술 협회에 출품했다. 



















여인의 머리카락 속 남자의 머리 / 이별













































뼈가 있는 자화상 (Selbstbildnis Mit Dem Skelett, 1895년 석판) 오슬로 뭉크 미술관

뭉크는 1880년 첫 자화상을 그린 이래, 많은 자화상을 남겨 내적 영혼과 정신 관계를 표현했다. 

이 작품은 자화상들 중 가장 유명하다. 

검은 바탕에 소묘식으로 표현한 얼굴이다.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응시해 온 뭉크에게 이 자화상은 죽음에 대한 '내적인 영상'이다.


뭉크는 자화상을 통해 불안을 극복하려 했다. 

인생 시리즈로 자기 변천과 자아의식을 찾았다. 

"자화상에는 자아를 그리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 이미지 표현의 진실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엄격한 양식에 자기 애적 경향과 자의식에 찬 인물로 자신을 표현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뭉크의 프리즈 오브 라이프 인 퍼즐 - 전시회의 마지막 방












작품 <절규>는 뭉크의 유명한 연작이다. 

그는 총 4편(1893-1910년 작) 표현주의 그림 <절규>를 그렸다. 

핏빛 하늘을 배경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을 묘사했다. 

배경 풍경은 노르웨이 오슬로 (당시 크리스티아니아) 이케베르크 언덕에서 보이는 '오슬로피오르'다.

저녁노을, 산, 들의 곡선이 불안해 보인다. 

실제 당시,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 영향으로 붉은빛 노을이 보였다는 설도 있다. 












뭉크 예술에 대한 지지와 평가는 만년에 더 높아진다. 

1912년 쾰른에서 개최된 분리파 대 전람회에서 세잔, 고흐, 고갱과 더불어 방이 하나씩 배당되고,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된 현대 스칸디나비아 전람회에도 초대받아 출품하는 등 국제적 명성을 누린다. 

1922년 취리히 미술관, 

1927년 베를린 국립 미술관 회고전, 

1933년 70세 생일에는 대작가로서 유럽 각지로부터 축사를 받는다.

1937년 한때, 나치에 의해 '퇴폐적인 예술'이란 낙인이 찍히기도 했으나, 격동하는 제2차 세계대전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제작에 몰두했다. 

뭉크는 평생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살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81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그는 1944년 1월 23일 에케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햇빛이 비치는 곳은 가려지는 곳보다 컬러풀하다. 

세상이 반사되어 내게로 안기는 느낌이 든다. 

따가운 햇볕도 햇빛이 되어 내리면, 왠지 온아하게 느껴진다.

흙먼지로 뒤덮인 세상은 어수선하면서도 축 가라앉는다. 

지상에 닿으려던 햇빛도 주춤거리게 만들던 황사도 흙먼지다. 

비 rain, 소나기 shower, 비바람 Rainstorm이 내리면, 흙먼지도 씻겨 내린다. 

씻겨 내린다 해도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건 아니다. 

두 가지 이상의 물질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일어나기 전 후 물질의 모든 질량이 항상 일정하다지 않던가! 

햇빛, 흙먼지, 비가 얼마나 모이고 쌓이고 내리는 가의 조화와 융합이 뭉크의 작품세계에 투영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의 작품에 더 공감하게 된다. 

그 약간의 흙먼지와 몇 개의 구멍(공간)이 뭉크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섬세한 손길을 느끼게 한다. 

매일매일 제 아무리 열정을 담아 살아가도, 행동의 복원력과 탄력성이 점점 느려진다. 

이건 쌓여가는 세월의 댓가다. 

어딘가 삐걱대는 곳이 생기는 몸과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의 결과물을 보면 이 또한 아쉽지만, I am who I am. 

이 정도 세월을 쌓아왔으니, 외부상황으로 휘둘리진 않겠다. 물론 멋대로 살겠다는 것은 아님. ㅋㅋ

살아가는 동안엔 내게도 햇빛과 흙먼지와 비의 조화로움이 깨지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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