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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Oct 26. 2021

왜, 로마 유적지인 <볼루빌리스>가 영화 제목일까?

법과 공권력도 약자를 지켜주지 않는 모로코 사회의 단면


Volubilis, 2017

개요  가족, 사회 비판, 여성 / 모로코, 프랑스, 카타르 / 106분

감독  파우지 벤사이디(Faouzi BENSAÏDI)

출연  무르신 말지(압델카데르), 나디아 코 운다(말리카)


  볼루빌리스는 기원전 3세기 모리타니아의 수도였으며 로마 제국의 중요한 전초 기지로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남아있다. 이곳엔 상류층 집터도 남아있다. 아름답고 웅장한 이 유적지는 노예로 동원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의해 지어졌다.


  파우지 벤사이디 감독은 왜, 이 유적지의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했을까? 세상에는 부와 권력을 누리는 자들, 죽을 때까지 노동만 제공하다 스러져가는 이들이 함께 살고 있다. 서민들은 평생 근면하게 노력하며 살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는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감독은 <볼루빌리스>를 통해 권력과 부의 찬란함 뒤에 가려진 가난한 서민의 삶을 꿰뚫어 본다.    


  쇼핑몰 안전요원 압델카데르와 가사도우미 말리카는 신혼부부다. 두 사람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서로 사랑하며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사진: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캡처


  어느 날, 성실하게 일하던 압델카데르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줄을 서지 않고, 새치기하며 도도하게 걸어가는 한 여성을 제지한다. 서로 거친 말이 오가게 되자, 그녀는 압델카데르를 향해 ‘가만 두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사라진다.

  결국, 그는 직장상사에게 심한 문책을 당한다. 괴한들에게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고문까지 당한다. 으름장을 놓았던 상류층 여성의 남편은 이 모습을 스마트 폰 동영상으로 담는다. 압델카데르는 자기 일에 충실했지만, 인간으로서 심한 모멸감과 굴욕을 당한다. 

더구나 이 일로 직장까지 잃게 되면서 부부의 삶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감독은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젊은 부부와 부유하지만 비인간적이고 위선적인 상류층 사람들의 삶을 대비시킨다. 압델카데르는 상류층 여성이나, 일반인이나 같은 사내 규칙을 적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가해진 폭력과 고문은 너무 가혹했다. 힘도 돈도 없는 서민 압델카데르 모습이 참담하다. 법과 공권력도 억울한 약자를 지켜주지 않는 모로코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계층 대비는 영화 곳곳에서 연출된다. 좁은 거실에서 함께 식사하는 대가족과 여러 개 방으로 구성된 화려한 저택에서 각각 따로 존재하는 상류층 부부 모습. 

압델카데르 부부의 다정한 모습과 1층에 남편을 두고 2층에서 다른 남성과 밀회까지 나누는 상류층 부인의 모습. 신혼부부와 저택 부부의 대비되는 삶은 프레임 속 여러 장소에서 부각된다.

인간미 넘치는 서민들이 담긴 화면에는 사랑과 다정함, 관심과 따뜻함, 우정이 담겨있다. 경제적으로 부족해도 서로 감싸 안고 살아가는 모로코 대가족 모습이 우리 60년대를 떠올린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상류층 부자 남자는, 압델카데르가 굴욕 당하는 동영상을 그들만의 파티장에서 돌려가며 보도록 한다. 그들은 압델카데르를 더 이상 이곳에 살게 놔두면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마침 파티장에서 도우미로 일하던 말리카는 이 상황을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진 채 그곳을 박차고 나온다.


  신혼부부는 결국 부모 형제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정든 곳을 떠난다. 몸과 마음에 상처만 가득 안고. 

<볼루빌리스>는 모로코 사회의 부당하고 불평등한 서민의 일상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다.





  드넓은 벌판, 고대도시 유적지 볼루 빌리 스는 2천80여 년 동안 1세기 흔적을 간직하고 견뎌왔다. 기원전에도 오랫동안 권력을 가진 자는 힘없는 서민을 지배하고 노동력을 착취해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그러한 구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벤사이디 감독은 되풀이되고 있는 불공평한 사회의 일면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파우지 벤사이디 감독은 1967년 모로코에서 출생. 알라바트 인스티튜트(Alrabat Institute)를 졸업하고, 국립 아카데미에서 연기 수업을 받았다. 작품 <벽>은 칸 영화제에서, <빗줄기>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첫 장편이자 칸 영화제 수상작인 <천월>(2003)은 2005년 전주 국제영화제 마그레브 특별전에 상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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