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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Jul 17. 2021

세월에 장사 없다!

어르신들과 함께 무더위를 견뎌냈던 그 해 여름~

2018. 8. 19. 

다음 글은 2018년 8월 19일 시니어케어매니저로 활동할 때 쓴 단상이다. 

지금은 허리디스크 등 건강 문제로 사회활동은 접은 상태. 

가끔 쓸쓸한 마음도 슬며시 다녀간다. 

살아온 이야기들을 더 많은 글로 꺼내고 싶지만, 이도 쉽진 않다. 

체계적인 글쓰기 수업을 받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게으른 탓이리라. 

뒤늦게 아들이 권해서 만나게 된 '브런치'활동으로 활력을 지켜가고 있다.




새롭게 첫걸음 내디딘 심정이지만,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고 싶다. '한여름 무더위 잘 넘겼다!'라고 스스로 토닥여 준다.
5월부터 요양원 2곳과 데이케어센터 3곳을 매주 방문하고 있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된 폭염 속에서도 어르신들을 뵙기 위해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불 타오르려는 길을 걸어서 찾아갔다.

말복을 지나면서 지긋지긋하던 무더위 기세도 한풀 겪었다.
'세월에 장사 없다.'라는 말은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더위 이길 장사도 없어 보이더니, 세월을 거스를 이치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일과 상황 전개, 자연 이치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가 이를 수도, 늦을 수도 있겠지만, 이도 사람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세월 흐름 앞에선 모든 것이 한순간, 한 찰나 인지도 모르겠다. 

사진: Pixabay.com

양원에서 짧은 인연으로 만났던, 103세 어르신이 지난 8월 5일 이승과 하직하셨다.

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만큼, 모든 인지활동에 열정을 보였던 분이셨는데...

세월이기는 장사는 없었다.

리학을 전공하고 영국 유학까지 하셨다는 70대 어르신은 아직도 소녀 같다.

가곡을 좋아하고, 서울대생과 열애도 종종 이야기하시지만, 지금 휠체어에 몸담고 계신 현실이 답답하고 서글프신가 보다. 가끔 짜증과 투정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미혼으로 남편도 자식도 없으시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인생길이라지만, 과거의 화려함도 이젠 애잔한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현실이 아프다. 

자서는 흐르는 눈물조차 당신 손으로 닦을 수 없는 인지장애(치매) 중증 어르신.

어느 날엔 옅은 미소를 짓고, 기분도 좋아 보이신다. 오전에 아들 며느리가 다녀가셨단다.

가족,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위안이 된다. 이 분의 미소를 보면 더욱더.

은 못 하시지만, 몸은 자유로운 애칭 '엄마'로 불리는 분. "떼떼 떼, 뚜뚜뚜...." 알아들을 수는 없는 소리만 되뇌시지만, 몸은 건강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 분이 할 수 있는 말은 대답뿐이다. "네, 네, 네..."  어쩜 대답을 이렇게 예쁘게 할 수 있을까?

말은 못 하시지만, 좋아했던 노래는 또렷한 가사로 부르신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섬 마을 선생님' 등, 우리도 제대로 따라 부르지 못하는 가삿말을 박자 음정까지 정확하게 부르신다. 그분에게 남아있는 아련한 기억이 너무 소중하다.

이케어센터 요양보호사와 인지장애를 겪고 있는 한 분은 고교 동창이다. 

한 분은 요양보호사로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고, 한 분은 요양보호사 돌봄을 받으러, 센터로 매일 출퇴근하고 있다. 

은행 지점장까지 하셨다는 아직 젊은 이 동창생을 바라보는 요양보호사 눈빛이 애틋하다.

르신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드리면,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느냐?"라며, 작은 관심에도 뛸 듯이 기뻐하신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더 큰 관심과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보답해 드리리라 결심하게 된다. 


데이케어센터 생활은 흡사 우리 초등학교 교실, 가끔은 유치원 교실 같기도 하다. 

서로 옥신각신 작은 충돌도 있고, 옆 친구가 접은 종이비행기를 자기 주머니에 슬쩍 감추고 시침 떼기도 한다. 

함께 만든 완성품을 보고 서로 잘했다고 칭찬하기도 하고, 입을 삐쭉이며 못마땅해하는 분도 계시다.

가끔 사건도 발생한다.

특별 관리를 받던 어르신 한 분이 요양보호사 팔을 물어뜯어 응급차가 출동하기도 한다. 

친구가 화장실 가면, 방금 다녀왔던 분도 또, 계속 가겠다고 하신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시끄럽다고 소리 지르는 까칠한 분도 계시고.


겸손해진다. 

이분들 모습이 꼭 남의 모습이기만 할까? 

내 부모님 모습일 수도 있고, 10년, 20년, 30년 후, 내 모습일지도 모르는데...

진심으로 대해드리고, 열정을 다해 찾아뵙는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서 '인지향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해 간다. 


냉방병으로 배탈이 나, 병원 약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나름 이 무더위를 잘 견뎌냈다. 

바쁜 일상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는 나날이다. 

요양원, 데이케어센터 어르신들을 만날 때 마음과 50+센터 시니어들을 만날 때 기분은 많이 다르다. 

마지막 기억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는 분들과 아직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과 여유를 즐기는 분들을 오가며 만나다 보면,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꾸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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