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meday Jul 14. 2021

사람이 바뀌면 죽는다! 발전한다?

아무튼, 난 살아있다.


'사람이 바뀌면 죽는다.'

신혼 초, 남편 '묵'으로부터 많이 듣던 말이다.

난 담배와 술을 거의 못하시던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오빠도 술을 마시면, 슬며시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자는 분이고. 지금도 그러신다.

사진 : pixabay.com

그런데 평생 내 반쪽이라 믿고 함께 살기로 한 남자는 내게 외계인이었다.

담배도 즐겨 피고, 술 마시는 횟수와 양을 보면 거의 술꾼.

담배 끊고 주량 좀 줄이라는 내 잔소리를 듣고, 묵이 항상 하던 말은 '사람이 바뀌면 죽는다.'였다.

'묵'이 죽을까 봐 두려워 참고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다행인 것은 첫아이 임신 중, 묵은 그 힘들다던 금연에 성공했다. 물론 죽지도 않았고.

우리가 함께 산 세월도 30년을 훌쩍 넘겼으나 묵은 여전히 애주가다.

주량은 조금 줄었는지, 늙어 기운이 달리는 건지, 현관문 바로 아래 계단에 쓰러져 꿈나라를 헤매진 않으니 이도 다행이다.

나야 뭐 원래 술 담배, 유흥문화 쪽으론 청정지역이니, 바뀔 필요가 없는 사람인가?

아니, 나도 평생 자기 방식을 굽히지 못한 고집통이다. 삶에 정답은 없는 데도 말이다.

그냥 부연하자면, 계속 묵과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을 뿐이다.


사람은 경험과 지식, 자격증 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건 확실하다.

멀쩡하게 쌓아둔 이런 유용한 자산도 사람의 본성을 변화시키진 못한다.

우리는 모두 죽을까 봐 자기 방식과 생각을 거의 바꾸지 않고 사는가!

이승 삶을 더 연장하고 싶어서인지, 죽어서라도 바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 부르는 인생의 노래는 대부분 불안정 음이다.

제각각 바삐 돌아가기도 하고, 자기 본성을 유지하며 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딱 맞는 제대로 된 화음을 이룰 때도 있다. 우리는 이 짧은 순간을 행복이라 한다.

잠시, 시인처럼 삶을 예찬하기도 하고, 철학자처럼 여유롭게 폼을 잡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화음이 깨진다.

각자 일상으로 획 돌아서 가고, 함께 있을 때도 자기만의 음계로 순서와 리듬을 뒤섞여 놓기도 하니까.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다. 다 떠났다. 묵도, 아들도, 딸도, 사랑스러운 손녀도. 딸을 데리러 왔던 사위도. 왁자그르르했던 지난 한 주가 밀려났다. 가족! 곁에 있으면 마음은 부자인 데 몸이 고달프고 이렇게 다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면, 마음은 처량하고 몸만 축 늘어진다. 손녀의 달달한 체취가 남아있는 이부자리도 아직 치우지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있다. 보행기로 내달리던 꾸미 잔상이 그대로 남아있는 썰렁한 복층도 다시 창고로 전락했다.

 


테라스에 내리는 햇볕도 내 마음에 다 닿지 않는 아침이다. 그런데 어제 가족들과 물청소 했던 깨끗해진 테라스엔 뜻밖에 손님이 찾아와 쉬고 있다. 처량해지려던 내 마음을 꽉 잡아주는 작은 새의 웃음소리로 화창한 풍경이 더욱 정겹다. 가까이 나서면 그냥 날아갈까봐, 먼 발치에서서 사랑스런 노래소리만 감상했다. 



꾸미 모녀 가고 나면, 함께 있을 때 더 알뜰살뜰 보살펴주지 못한 일들만 생각나고. 곁에 있을 땐, 내 피곤한 몸이 얼굴 표정으로까지 읽혀 안타깝다. 게다가 생전 듣보잡 했던 음악방송까지 챙겨서 시청했으니, 딸의 멀뚱멀뚱했던 표정이 무슨 말을 전하는지 이제야 정신이 깬다. 트롯 가수 덕질하는 엄마 모습이 얼마나 생소했을지.

아들딸 중고 시절엔 EBS 교육 프로그램과 수능방송 외 TV를 켠 적도 없던 내가 확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딸은 내 변화에 계속 놀라는 눈치였다. 

평생 범생이었던 내가 변했다. 

물론 죽지도 않았지만, 이게 발전인지도 의문이다. 

그냥 음악방송 한 두 개 챙겨보고 블로그에 포스팅 한는 것도 쏟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가끔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를 되묻곤 한다. 

딸은 출산 전, 네이버 블로그 여행과 맛집 인플루언서였다. 그런 딸이 좀 더 솔직해지라며, "블로그 지수 올리고 싶은 거 아니에요?"라고 묻는다. 딸은 내가 방송 매체를 따라다니는 모습이 싫었나 보다. 나도 스스로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번엔 꾸미도 좀 더 성장했는지, 잠자는 시간도 길어졌다. 딸이 잘 케어하고 있으니, 나는 끼니 챙겨주고 빨래해주고, 육아는 서포트해 주는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딸은 온전한 엄마의 관심이 필요했나 보다. 성장하고 늙어도 엄마는 엄마고 딸은 그냥 딸이다. 

오늘, 혼자 청승 떨기 없기. 이제 꾸미 잠자리도 정리하고, 밀린 어른 빨래랑 대청소도 하고, 고추 모종도 사러 나가야겠다. 오히려 더 바쁘겠지만, 온전한 나만의 휴식시간도 갖겠다. 이렇게라도 속마음을 쓱 비워내니 마음이 편하다. 아무튼, 취미든 일이든 중용을 지키며 사는 것이 옳다. 



커피 라테 한 잔과 사위가 사두고 간 제주 말차 롤케이크 한 조각 입에 담고 보니, 혼자라도 달달해서 행복하다. '가족은 나의 힘!'이라는 글 귀가 두 눈에 가득 찬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이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