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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Mar 25. 2023

공항에서 만난 모델

It was meant to be.

스페인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항 의자에서 멍을 때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훤칠한 키에 긴 머리를 내려뜨린 여인이 등장했다. 거리가 꽤 되어 얼굴까지 자세히 보이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눈에 띄었다. 모두가 자기 일에 빠져 있거나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 사이로 성큼성큼 빠르게 걷는 그녀를 보며, 시크하다는 의미를 체감했다.


탑승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줄을 서느라 그녀는 바로 잊혔다. 그녀가 내 옆좌석에 앉기 전까지. 멀리서 봤던 사람이 옆좌석에 앉았다고, '당신을 보고 있었어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 좌석을 정돈하고 조용히 비행기가 뜨기를 기다렸다. 그때, 뒷좌석에 앉은 꼬마가 앞의 의자를 발로 힘껏 밀어도 보고, 퉁퉁 차보기도 하며 기내 의자의 강도 테스트를 했다. 옆좌석의 그녀가 뒤를 흘끗 보더니 내게 물었다.


"Does he belong to you?"

"Nope, not mine."


Of course not... 설마 아이 엄마가 아이를 뒤에 태우고 옆에 딴 사람과 앉아서 갈까. 그럴 수도 있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아이 곁에 있다면.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아이 엄마가 아닌 줄 알지만, 공공의 적? 을 빌미 삼아 말을 튼 거 같다. 걸음걸이가 범상치 않아 보이더니, 그녀는 C로 시작하는 유명한 화장품 회사 모델이었다. 폴란드 출신의 신장 176cm의 여인. 그녀가 힐을 신고 나를 내려다보면, 꼬마와 나를 분간하기 어려울 듯했다.


런던에 촬영이 있어 간다고 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그녀를 런던 숙소까지 태우고 갈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같이 타고 가자고 했고, 덕분에 늦은 시간 편하게 런던집으로 올 수 있었다. 며칠 후,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한 날, 그녀의 촬영이 늦어져 그녀는 미안하지만 약속을 취소해야겠다고 했다. 배는 고프지만, 자기 차례가 맨 마지막이고 란제리 촬영이라 그전까지는 먹지도 못하고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촬영장소가 그리 멀지 않아, 촬영 끝날즈음에 김밥과 잡채를 만들어 그녀를 만나러 갔다. 너무 조금 만들어 간 건지, 그녀의 식성이 좋았는지, 그녀는 하루종일 촬영에 지쳐있다 단비를 만난 듯 감동하여 한식을 즐겼다. 십이 년이 지난 지금, 연락은 하고 지내지 않지만, 여전히 멋지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다. 메시지 한 번 보내볼까. 그때의 눈물 젖은 김밥을 기억하느냐고.


우리 모두는 연결이 되어 있다는 책이 있다. 내가 너라는 남아프리카의 정신이 담긴. 내가 176cm 모델은 분명 아니지만... 무언가가 연결이 되어 그녀를 보는 순간부터 옆좌석에 앉는 인연이 닿았을까. 오랜 시간 동안, 우리가 만났던 것은 단 이틀뿐. 그럼에도 그녀의 왕성한 활동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짧은 인연이지만 서로에 대한 친절한 기억 덕분이다.


We may be different,
but our hearts beat the same.


<I Am You: A Book about Ubuntu> by Refiloe Moahloli, illustrated by Zinelda McDonald

In southern Africa, there is a belief called ubuntu―
the idea that we are all connected. No matter where we’re from or who we are, a person is a person through their connections to other people.

from Amazon

https://www.youtube.com/watch?v=f6RZZkwHgkk

그렇다면... 비행기에서 기내 의자 강도 테스트를 하던 꼬마도... 결국 다 연결이 되어 있는 인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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