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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an 25. 2023

출판사 디스 해놓고 투고한 당신

내가 편집자였더라도...

브런치를 막 시작하던 작년 11월 중순. 작가의 서랍에 있던 글이 눈에 띄었다.


2022년. 11월 16일.


이 분야에서 유명하신 분의 책이 출판되자마자 구매를 했다. 쓰고 있는 책에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을 가지게 만든 제목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치자마자 실망을 했다. 미리 볼 수 있었다면, 오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 육중한 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듯했다. 그리고 내 원고를 투고하면서, '화'를 가라앉혀 최대한 담담한 어투로 그분의 책을 리뷰하며, 본인 원고의 더 높은 가능성을 어필했다. 참고로, 책 자체에 굳이 화가 날 이유는 없었다. 아마도, 45개월 아들이 책을 보자마자 표지에 사인펜을 그어 반품할 수 없게 된 사실에 다소 짜증이 난 게 아닌가 싶다.


그분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 담당자님으로부터, 투고한 원고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메일을 받았다. 다만, 다른 곳에서 보내온 거절 메일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흥미로울만한 다른 소재의 글이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보내보라는 것이었다. 마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무명작가 지망생의 패기를 너그러이 봐주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행간의 의미를 내 맘대로 해석한 것일 수도. 아무튼, 대놓고 디스 한 출판사에 당당하게 투고한 나는 누구인가, 답장을 보고서야 아차 싶었다. 800군데의 출판사 주소를 받아 출국 며칠 전 정신없이 보내느라, 개별화 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오만했던 것일 수도.


드라마틱했던 인생, 흥미로울만한 소재는 줄줄이 감자 캐듯 꺼내드릴 수 있다. 다듬고 다듬어 다시 보내드릴 예정이다. 그때는, 그분의 이름을 넣어 안부 인사를 묻고 시작해야겠다. 그때 노(怒) 하지 않고 답장 주셔서 이렇게 또 찾아왔노라고. 이번엔 부디 No 하지 마시고 출판 부탁드린다고.



매거진에 올렸던 글을 모아 브런치 북으로 만들어 보려 하니, 문득 미흡한 생각이 들어 며칠째 서랍에서 꺼내보기만 하고 있다. 딱따구리처럼 쪼아놓은 말들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방향성이 확실하여 도움이 되는 글들인가. 다시 허공을 떠돌 의미 없는 방법제시일까. 브런치에서도 호응이 없으면... 정말 별로인 글인가 등등. 걱정 인형이 필요한 순간이다.


글치님의 글 중에 '나를 알아줘'가 있는데... 꼭 그 심정이다. 갑자기 조회수가 폭발했던 글 한편을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 들었었다.

https://brunch.co.kr/@poorwriting/221


아시는 분이, 이 전의 글 중 '평균적 인간'이 맘에 들어 친구분들과 공유를 해주셨다고 한다. 글을 받아 보신 분들이, '그래서 요약하면 무슨 말인데.'라고 했다며 웃으셨다. 요약할 거면 이 글을 왜 읽느냐며. 그래도, 글이 길든. 어렵든. 지루하든. 독자층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더 쉬워져야 하는 게 맞겠지.


그때 샀던 오백페이지 책에는 댓글이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대부분 지나칠 뻔했던 부분을 차근히 짚어주어 책이 다시 보이더란 내용이었다. 책 표지에 아들이 낙서를 하지 않아 반품했다면, 놓칠 뻔한 '의견' 들이었다.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하고 쉬운 것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는 사실. 오만을 뒤늦게 '인정' 하고 나니, 그동안 글을 참 어렵게 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글이든 용기든... 다시 끄러 끄러 모아, 투고를 해봐야겠다. 그림 작업이 필요해... 혼자서는 영 어려울 거 같다... 용기 있는 편집장님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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