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면 다시 붙여요
몇 달 전 투고한 원고가 거절의 쓰나미를 받고 표류 중에 있었다. 마음을 추슬러 컨셉을 바꾸고 목차를 다시 만들어 보았다. 부푼 마음으로 아는 선생님께 보내드렸더니, 단호히 말씀하셨다. 한국에선 아이들이 그렇게 글쓰기 못한다고. 외국어 고등학교 학생들도 영작이 엉망인데, 그 수준으로 써낼 아이들 없을 거라고.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이백 퍼가 넘는데, 그 말을 들으니 헛발질 그만하고 현실적으로 접시를 닦으러 나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림책을 보고, 단어 하나 캐릭터 하나 바꿔가면서 십분 이십 분 아이와 옹알거리고 알파벳 몇 자 적는 것이 토플 에세이 작문에 도움이 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바쁜 아침에 여유롭게 아이 볼에 입 맞추며, 체질에 맞지도 않는 Good morning을 한다고 해서 아이가 영어를 몸으로 기억할 거라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겠지. 그럴 수도 있겠다 영감을 받고 시작했다가도, 어느새 드럼통 세탁기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매몰되어 잊히겠지.
출판 시장이 증명하고 오랜 경력의 선생님도 이렇게 단호한데,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이 길을 가려 하나. '그냥, 당신 앞길이나 잘 살펴 가세요.'라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 퍼진다. 그런데 말이다. 영어를 학습 과목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면. 엄마 아빠와의 관계에서 다르게 전개될 수 있는 아이의 영어 자립. 이 사실을 알고 실천하는 이들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자꾸만 솟아오른다. 일곱 살 아이가 무슨 영어를 도대체 얼마나 했길래,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고 벌써부터 뒷걸음을 칠까.
핀란드에선, 버섯 파는 아주머니도 막힘없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핀란드는 가정에서부터 영어가 편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거다. 그들의 부모님이 그랬고, 조부모님이 그랬다. 핀란드 억양 잔뜩 들어간 완벽하지 않은 영어가 그냥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서 그런 거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럴 수 있을 거라 본다. 세상은 변하고 있으니까.
왜 모든 사람이 영어를 편하게 해야 하냐고 이의 제기를 한다면, 당연히 그럴 필요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 다만, 이왕 할 거라면, 우리 아이들이 먼 길 돌아 돌아 영어를 언어로 만나지 않도록 하고 싶다면, 지금 가정에서 시작을 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뿐이다. 어디에선가, 시작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영어 자립을 위한 그 시작. 엄마 아빠와 오감을 느끼며 시작한 옹알이 같은 말과 글은 시작일 뿐이다. 그 불꽃을 이어가며 폭죽을 터뜨리는 것은 아이의 몫이다. 그리고 아이가 불꽃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믿고 달려 주는 것. 그것은 우리 몫이겠지.
필명을 도화선으로 해볼까 잠깐 생각해 보았다. 도화선 도화선 도화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