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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Apr 30. 2023

실종된 자동차가 해주고 싶었던 말

잘 챙겨

얼마 전, 자동차 실종으로 추정? 되는 사건이 있었다. 여행을 가려는 데 차가 주차장에 없어 여러 시간, 여러 사람의 시간을 쏟아 차를 찾아 헤매었다.


허름한 중고차가 필요했다면, 범죄현장에 쓰이기 위함이었을까. 번호판을 바꿔 해외로 보내버리면, 찾을 수도 없다는데. 영화에서 보듯, 전선을 연결해서 차의 엔진을 걸었을까.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전문가들의 세계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누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찾게 되면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함께 낚일 것만 같았다. 차가 없는 불편함은 대어를 가져 올 글감으로 퉁치는 중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력계 형사님의 전화.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입차한 시간만 기록된다고 했다. 때문에 형사님은 그 시간부터, 차가 다시 움직이는 시점까지 CCTV를 지켜보셨을 거다. 드디어 차가 움직여 출차를 했다. 관리실 직원의 말대로라면, CCTV 년수가 오래돼서 차도 사람도 식별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가의 손길이 아니면, 찾아내기 힘들다고. 역시. 예리한 형사님은 범인을 바로 예상하셨다.


"혹시 00 일 00 시에 외출 한 적 없으세요?"

"아뇨, 없는... 아... 형사님..."


Oh My God!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범인. 자동차의 실종이 아니라, 결국은 기억의 실종이었다. 흔적도 없이 잘려나간 기억. 평소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던 길을 그날따라 자동차로 간 뒤, 아무 생각 없이 돌아와 그대로 기억을 지워버린 것이었다. 브런치에 글로 남긴 것도 난감했지만, 그보다 현재의 뇌 상태가 안녕한 지가 당장 알고 싶어졌다. 준 종합병원 신경과에 예약을 해놓고 다소 침울해 있는 내게 신랑이 말했다.


"혹시, 정말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면... 내가 저지른 모든 과오부터 먼저 잊어 줘."


그를 초점 없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누구세요?"




"비행기, 연필, 소나무... 이 세 단어를 잠시 후 다시 물어볼 거예요. 순서 상관없이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병원 이름이 뭐죠? 병원이 있는 도와 시를 모두 말해보세요. 오늘은 며칠이죠? 100에서 7을 빼면 몇이죠... 와 같은 질문의 '인지' 검사를 했다. 93에서 7을 뺀 것을 바로 계산하지 못해, 총 30점 만점에 29점을 받았다. 이게 뭐라고... 가뜩이나 질문이 어이없어 기분이 별로였는데... 점수가 깎이니 기분은 더 나빠졌다. 병원은 4만 5천 원의 진료비를 산정해 놓고 있었다.


의사쌤은, 전후상황 이야기를 듣고는 양성 건망증이라고 진단했다. 음성 건망증도 있냐고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MRI를 찍기 전에,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세밀화된 인지 검사를 먼저 한다고 했다. 45세부터 90세 사이에 맞춘 검사지인데, 평균치에서 현저히 떨어진다 싶어야 MRI 찍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다만, 그 검사를 할 수 있는 직원이 5월 말에 입사할 예정이어서, 재방문일은 병원 새 식구 입사일에 맞춰 한 달 후에나 다시 보자고 했다.


한 달 이전에 다른 병원을 찾아가 볼까 했더니, 보건소에서 무료로 해 줄 수가 있으나, 사전검사 점수 29점은 너무 높아 무료로 받을 수가 없을 거라고 알려줬다. 비용을 치르면, 다른 병원에서도 받을 수가 있다고 했다. 이 정도 증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분들도 많다는 위로를 처방전 대신 받고 병원을 나섰다.




일주일 만에 찾아온 자동차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자동차는 주인에게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을 거다. 당장 세차 먼저 해주고, 당신 머릿속도 좀 신경 써 주라고. 잠을 잘 때도 쉬지 않고 일하는 뇌를 잘 좀 살펴주라는 메시지를, 하늘은 더 늦기 전에 이렇게 보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Thanks.


최고의 신경학 전문가인 딘 세르자이와 아예샤 세르자이는 삶의 방식만 개선하면 두뇌 건강은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즐거운 식사, 규칙적 운동, 스트레스 조절, 충분한 수면에 더 신경을 써주기로 했다. 기억의 실종이었던 차 실종 사건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뇌가 걱정할까 봐, 그냥 웃어 넘기기로 했다. 젊고 즐거운 뇌를 유지하기 위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날들을 위해...


자동차 실종사건은 근 열흘동안 연일 글랭킹 1위(본인의 브런치)를 찍으며 의외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비록 결말은... 드라마틱하진 않았지만... 허당 영쌤의 흑역사에 이렇게 나름 또 한 줄을 기록한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 부디 스트레스 지혜롭게 풀어내어 뇌를 건강하게 지켜내시기 바랍니다.


photo: wellversed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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