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다를 수도...
런던 북쪽에 자리 잡은 한 초등학교. 부모님들의 출신 국가 배경이 워낙이 다양해서 독특한 아이들도 많았던 곳이다. 아이들이 쓰는 가정의 언어를 조사해 보니 총 34개나 되었다. 서른네 개의 다른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한 학교에서 영어라는 공식 언어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쉽지 않기도 했다.
페르시아에서 온 네 살배기 남자아이가 있었다. 녀석은 매일 아침 유치원 입구에서 엄마와 헤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무도 자신의 나라 말을 쓰지 않는다며 엄마에게 유치원이 무섭다고 했단다.
"쌀럼 알레콤"
아침마다, 아이에게 페르시아 말로 인사를 해주었다. 아이는 점차 유치원에 적응을 해나갔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한 줄 인사였다. 이 말 외에는 영어를 썼는데... 아이(의 엄마)는 크리스마스에 페르시안 스카프를 선물로 주었다. 덕분에 고마웠다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의 경우, 간혹 수업에 산만하다는 인상을 준다.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들도 산만할 수 있겠지만...) 다른 언어를 배울 때, 뇌 속에 새로운 뇌를 만들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닦는 데는 굉장한 에너지가 소비된다. 인간은, 되도록이면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이 아이들은 모국어가 아닌 사회적 언어를 배우느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종일 영어를 들을 때, 에너지 고갈이 상대적으로 빠르다. 표면적으로 수업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들이 수업에 집중이 떨어지면 다양한 행동을 한다. (런던은, 초등 1-2학년까지는 화이트보드 앞, 카펫 위에 모여 앉아 설명을 듣고, 수업 자료를 받아 책상에서 그룹별로 활동을 한다.) 앞에 앉은 아이의 머리를 땋아 준다거나, 옆의 아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서로 장난을 치거나, 시비가 붙거나 둘 중 하나.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아예 일어나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제지를 당하거나, 새소리를 내다가 수업 방해하지 말라고 한마디 듣기도 한다. 특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지시사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뭘 해야 할지 멍하게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 산만하다고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어휘력이 부족한 것과 연관이 깊은 경우가 종종 있다. 교사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말을 이해하려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주의가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표면 위의 현상만 보고 행동을 고치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들이, 선생님 설명 도중 뒤로 돌아 우스운 표정을 만들어 친구들과 종종 장난을 친다는 얘기를 상담하면서 들었다. 이중언어를 어려서부터 한 아이들은, 하나의 언어만 배우다가 외국어로 다른 언어를 배우는 이들에 비해 에너지를 덜 쓴다고 알고 있다. 이미, 두 언어의 길이 내재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녀석은 어딘가에서 에너지 고갈을 겪고 있을까. 그냥 에너지가 넘쳐 장난이 치고 싶은 걸까. 후자이길.
아들을 본 어떤 분은, 사물의 인지와 상황 파악이 빨라서 산만해 보일 수도 있겠다고 하셨다. 이미 다 알아 들었는데, 계속 설명하고 있으니 심심해하는 거라고. 머리 좋은 아이들이 간혹 그렇게 오해받을 수도 있다고.
어떤 이유에서든, 수업 시간에 장난치는 아들의 행동은 제재를 당할 것이다. 영국에서든, 한국에서든.
그래서 아들 얘기를 먼저 좀 들어봐야겠다.
아직 다섯 살도 되지 않은 아이를,
산만함의 범주에 넣을 생각이
전혀 없기에.
아직은... 장난기 가득한 모습 그대로
신나게 노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리기에.
Love you son.
photo: 사과 세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