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보실래요
아들이, 지난 3월 말 가져온 유치원 영어책에는, -at 가 들어간 세 글자 단어들이 많았다. (4월엔 -et를 배웠다) 선명한 색상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cat, bat(박쥐), hat, rat, bat(방망이)를 한 문장 스토리 속에서 반복하고 있었다. 노래도 있고, 그림과 글자를 매치시키는 활동도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 -at 사운드와 관련한 단어로 세 종류의 각기 다른 책이 cat, bat, hat, rat을 알려주려고 정말 열심히 애쓰고 있었다.
이중언어를 하는 아들이 유치원에서 배우는 영어를 (혼자서) 얼마만큼 소화하는지 보고 싶었다. 집에서는 유치원 영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얘기도 거의 안 하는 편이니, 영어에만 한정된 내용은 아닐 수 있겠다.) 아무튼, 한 달 수업이 끝나고 책이 함께 왔을 때 아들이 -at을 했구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함께 책을 보며, 이런 내용을 했구나 하면 단어나 문장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말하며 유치원 영어 선생님의 동작도 시범을 보여준다.
유치원 아이들은, 성향에 따라 시키지 않아도 배운 내용을 신이 나서 무한 반복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들처럼 뭘 배우고 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과묵한 아이들도 있다. 영어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때부터도 영어가 듣기 싫은 아이들로 갈리는 것을 유치원 5세 반만 해도 벌써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영어가 재미있어 혼자서도 지절거리면 부모님들은 귀여운 모습에 즐거워한다. 영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에도 조금은 안도하리라. 이 상태가 꾸준히 유지되면 좋을 텐데, 잘한다 싶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영어를 등지려 할 때가 온다. 언제. 영어가 갑자기 아카데믹해지면서 책으로 파닉스를 배우고 읽으라는 사명이 주어질 때. 종알거리는 게 그냥 재미있던 아이들이 특히 이 구간을 힘들어한다.
멋진 교재들이 많다. 그러나 교재가 훌륭하다고 내 아이의 영어가 자동으로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아웃풋을 해봐야 그 교재들이 간절하게 알려주고 싶어 하는 cat hat bat의 의미가 겨우 살아난다. 어른들 눈에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운율 cat hat bat rat. 일주일에 몇 번 들었다고 아이들에게도 그 의미가 바로 스며드는 것은 아니다.
파닉스의 아웃풋. 동시로 해보면 어떨까. 물론 교재에도, I have a cat. I have a bat. 등으로 반복되는 문장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아직 인풋 중이다.
동시. 그것도 영어 동시라 해서 막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시라고도 하지 말고, 그냥 단어 나열이라고도 해보자. 어떤 이름으로라도, 스스로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
일단, 아이 책에 나온 내용을 읽어보았다면, 한 번쯤은 아이가 자신의 스토리를 배운 단어로 구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연히 처음엔 아이가 혼자 하기 힘들다. 양육자도, 교재를 받아보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를 수 있다.
cat hat bat rat
동사 하나만 떠올려 보자.
아이들에게 한글로 먼저 편하게 물어보고 아이들의 아이디어를 참고하자. 많은 아이들이 '먹어치워 버리는' 행위를 재미있어한다 해도, 내 아이는 다를 수 있으니까. 먹는다- eat, have 등을 쓸 수 있겠다. 여기에선, 재미를 위해 삼켜버리는 단어를 선택해 보았다. 말이 되지 않아도 된다. 넌센스 문장. 다만 운율을 맞춰서 반복해 가는 것이 포인트다.
아래 예시 문장을 다 만들어 놓고 아이에게 읽어보라 하는 것이 아니다.
모자가 뭘 삼켜버릴까... 아이에게 묻고 아이가 답하면 그 단어를 쓴다. 아이에게 묻고 아이가 답하고. 너무나 쉬운 네 단어로 이루어진 것이 벌써 네 줄이다.
A hat swallows a cat.
A cat swallows a rat.
A rat swallows a bat.
A bat(박쥐) swallows a bat.(방망이)
https://www.youtube.com/watch?v=V6Mzqxxio_w
여기 상상도 못 할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할머니 이야기 이상으로, 아이들이 상상하고, 자신들의 상상이 재미있어 낄낄거리는 아웃풋이 이어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아빠가 영국인이라고 해서 아들의 영어가 자동으로 완성되진 않습니다. 교재를 이용해, 유치원 영어 수업 의미가 잘 전달되도록 해주고. 언어가 언어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하는 것은 한국의 현실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참고로, 아들은, 자기 책이라고 마음대로 못하게 하기도 하고 어미의 노력에 어깃장을 놓기도 합니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아들 영어가 공짜로 크진 않습니다. 아들의 성향에 맞게, 관심에 맞게, 수준에 맞게, 기분에 맞게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을 아들에게 배우고 있답니다.
https://brunch.co.kr/@6ff42b0988794dc/62
photo: cece-talk.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