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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Dec 14. 2022

18개월 아기 아빠의 영어 고민

그의 선택은?

어느 아동 육아 사이트에, 영어와 한글을 같이 알려주고 있는데 괜찮은지, 18개월 아기 아빠가 질문을 올렸다. 육아 아동전문가분들의 답변은 아홉의 여덟이 모두 부정적이었다. 너무 이르다거나,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중 한 분은 긍정적인 듯하면서도 내겐 알쏭달쏭한 답변을 남겼다. 말인즉슨, 알려주는 것은 괜찮으나, 아이가 언어에 대하여 혼란을 느낀다면 전문기관에 상담 후 교육을 진행하라고.


전문가분들의 답변인만큼, 18개월 아기가 언어에 혼란을 느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18개월 아기를 어느 전문기관에 상담하여 어떤 교육을 진행해야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보았으나 적당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아마도 영어 조기교육의 실패로 아이들의 언어장애 사례가 답글의 근간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심리 상담사이자 아동 전문가분들과 조금 다른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내 의견을 보태 정리해 보았다. 선택은 아기 아빠가 하시는 걸로.  


개인적으로 조기 영어교육 예찬론자는 아니다. 오히려, 일본어든 중국어든, 아랍어든 영어든 외국어를 배우는 적기는 본인이 필요를 느끼고 스스로 에너지를 꾸준히 쏟을 수 있을 때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 없이 '이르다'라는 단정을 내리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2009년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를 다녀왔다. 주최 측은 이탈리어를 쓰는 선생님들의 강의를 각 나라의 언어로 통역을 할 수 없으니, 대표 언어인 영어로 두 분이 번갈아 가며 통역을 해주었다. 한 분은 이탈리아어를 영어에 근접하게 ‘번역’ 하는 느낌이 드는데 반해, 다른 한 분은 마치 이탈리어와 영어가 바뀌는 경계를 느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도록 언어를 풀어내는 느낌을 주었다. 나만 그렇게 느꼈나 했더니 다른 나라에서 온 선생님들도 그분의 통역에 찬사를 보냈다. 마치 ‘기생충’ 봉준호 감독님의 인터뷰를 맛깔나게 통역했던 샤론 최처럼.


언어의 습득 


언어학의 거장 노엄 촘스키의 언어 습득 기제 (LAD: Language Acquisition Device)라는 것이 있다. 오랜 시간 진화하면서 인간의 두뇌에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장치가 자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티븐 크라센 교수님의 인풋 이론이란 것이 있다. 인풋 이론이란 ‘심리적으로 편안한 환경에서 이해 가능한 인풋을 제공받게 될 때에 습득이 된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가 달라도 그것을 습득하는 인풋 원리는 누구에게나 같다는 것이다. 인풋 이론에 대한 서로 다른 많은 의견과 다른 학설은 잠시 뒤로하고, 언어 습득에 대한 기본 원리를 제시하는 데 가장 이해도가 빠를 듯해서 인용해 본다. (모든 학설에는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태어나 백지상태로 있을 때 주변의 환경, 사물 그리고 자신을 돌보아 주는 사람의 행동을 보고 들으며 세상을 이해하며 언어를 배워간다. 크라센 교수님의 이해 가능한 인풋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엄마가 자신을 가리키며 ‘엄마’, ‘엄마’를 말할 때, 언어 습득 기제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는 ‘엄마’라고 하는 소리와 ‘엄마’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연동이 되어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고 엄마라는 언어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아동의 침묵기(silent period)라는 것이 있다. 모국어가 발달되는 초기에 나타나는 이 침묵기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풋을 받았다고 바로 아웃풋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 발달 측면으로 보자. 모국어를 습득할 때, 우리의 우뇌가 열심히 일을 한다. 상호작용을 통해 엄마의 언어가 선물처럼 아기에게도 다가오는 순간. 아기는 우뇌를 활성화시켜 그 선물을 받아들인다. 이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학습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아기가 아닌 아이는 우뇌보다는 좌뇌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연령이 되면, 우리는 좌뇌를 이용해 기억과 인지기능을 동원하여 외국어를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습득보다는 시간과 노력이 더 들 수밖에 없는 원리이다.


국제적인 교육 상담가이자 교육 신경 과학 분야의 전문가인 데이비드 A. 수자 박사님의 말을 빌려 본다.

"우리가 모국어를 의식하지 않고
쓸 수 있는 것처럼
5세 이전에 배우는 외국어는
뇌에서 자동화된다."


일본의 한 언어학자는 0-3세의 모든 아기들은 언어천재라고도 했다. 어려서 이중 언어를 하면 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모든 아기를 이중언어 마스터로 키우자는 것이 아니다. 언어 습득 과정을 이해하고, 이중언어의 습득 방식이 매력적이라면, 아이를 위한 결정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중언어의 시작은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본다. 내 아이가 열 살인데, 어느 전문가가 다섯 살 이전이 좋다고 한다면, 갑자기 오 년을 손해보고 들어가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언어의 습득은 같은 원리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다. 환경과 양육자의 성향 역시 언어를 습득하는 데 영향을 준다. 편안한 환경, 소리 자극이 즐거운 아이라면, 엄마 아빠와 말을 주고받고, 읽어주는 책을 통해 언어능력을 키운다. 묻지도 않은 질문에 자기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모든 질문에 ‘몰라’라고 답하는 아이도 있다. 시키지 않아도 책을 펴 드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앉아 있기 조차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다.  내 아이의 언어 습득 능력을 의심하기보다, 아이가 가진 그릇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어는 외국인들에게 배우기 쉬운 언어는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방송을 보면 어떤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들이 어려서부터 임계량을 채우느라 힘들게 책을 파다가 왔을까. 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다섯 살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충분한 상호작용을 통한 우뇌 모국어 습득 방식과 성인으로 갖춘 좌뇌의 학습능력. 이것이 일반인들의 수준을  넘는 사자성어를 써가면서 우리와 신나게 소통을 하고 있는 비결 아닐까 싶다. 우리 역시, 영어라는 주제에 대해 그 시각을 바꾸지 않고는 이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덧붙여, 배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잘못된 것을 비워 낼 수 있는 유연함이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괜찮은 너그러움이다. 모국어 완성의 시기를 기다리느라, ‘조기교육’의 폐해를 염려하느라 영어 습득의 시작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반대로, 영어가 싫다는 아이에게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박감을 느끼며 속상해하지 않아도 된다. 내 아이의 성향과 나의 상황에 맞춰 방향을 잡으면 된다. 내가 ‘왜’ 18개월 아기에게 영어를 해주고 싶은지. 그 이유가 확실하다면,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의 방법은 찾아질 것이다.


18개월 아기 아빠의 선택이 문득 궁금해진다.


photo: nct.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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