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방정식

책을 만드는 일에는 정답이 없다. - 그림책 공작소 민찬기 소장님

by J Lee

전주국제그림책 도서전.

원래 계획은 아이랑 전날 차로 가서, 도서전을 보고 한옥 마을도 둘러본 뒤 맛있는 전주비빔밥을 먹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치원 종결 활동날과 겹쳤다. 되도록 결석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에, 당일치기로 급선회했다. 유치원 키즈노트 사진을 보면서, ‘00 이는 없어’하던 날이 많아, 이번엔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계획을 변경하자 마음이 꾀를 부렸다. 첫차를 타도 민찬식 소장님 강의가 거의 끝날즈음 도착할 텐데. 고속버스만 일곱 시간 + 두 시간의 자잘한 거리들을 더 달려야 닿는 거리. 의미 있는 일일까. 보여주기식 노력을 하려는 건 아닌 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바쁘신 분이 내 책 얘기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 어찌 될지 몰라, 늦게라도 갈 테니 말씀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연락도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불쑥 가는 것이 괜찮을까. (5월 초에 이미, 30명 수강인원과 예비자까지 모두 예약이 끝나 명단에 올릴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전주행 첫 차를 탔다. 백만 년 만에 타보는 고속버스다. 한 참 자고 나니,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초록의 사이즈가 달랐다. 전주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나무가 참 많았다. 드디어, 익산을 거쳐 전주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도심을 빠져나오면서 정체가 있어 예상 시간보다 조금 더 늦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바로 갔지만, 강의가 있는 청동 북카페엔 11:40분이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스무 명 남짓한 여인들이, 노트북으로 폰으로 열심히 강의를 기록하고 있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며 실물로 처음 보는 소장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잘 왔다 란 생각이 들었다. 그림책과 오랜 세월 함께 해서일까, 소장님은 개구지면서도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 말투, 몸짓 그리고 자랑을 해놓고 웃는 수줍음. 미디어 사진만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친근함이다.


지난 2년, 그림책 공작소 이름으로 책을 한 권도 출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새로운 브랜드 Less Ordinary Books를 위해서였다. 내면의 민찬기가 하고 싶은 책에 대한 고민, 내가 진정 만들고 싶은 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바로 LOB였다. 모두의 책이 아닌, 볼 사람만 보라는 그림책 장인의 배짱 두둑한 브랜드다. 한정판 그림책 가격이 팔만원이나 했다. 딱 천 부만 만들었다고 한다. 평생 소장할 생각으로, 태어나서 가장 비싼 그림책을 데리고 왔다.



책으로만 하면 자신 있다고 하는 눈빛. 내가 만들고자 하는 책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을 말할 때면, 장난스럽던 아이는 어디 가고 카리스마 가득한 작은 거인이 된다. 굿즈 만들 돈으로 차라리 종이를 더 비싼 걸로 쓰고 작가님께 인세를 더 드리겠다는 출판인. 450원을 더 주고 2mm를 더 펼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집념.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미세한 글자 간격에도 수십 번을 고민하는 장인. 단어 하나의 선택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작가. 이런 멋진 분을 직접 만나볼 수 있어 감사한 하루다.


가져간 <나의 엄마>와 아들 주려고 산 책에 모두 사인과 좋은 말씀을 정성껏 남겨 주셨다. 딸내미에게, 아빠가 그림책 만드니까 좋겠다고 하니, '그럼요 어-얼마나 좋은데요.'라고 한다. 이쁘다. 농담으로라도 부정이 많고, 뭘 물으면, 몰라요의 대답이 흔한 세상에서... 긍정적 인정이 참 듣기 좋았다. 자격미달이겠지만, 인턴 자리 허락하시면 가서 야무지게 일하는 법 좀 배우고 싶다.


도서전시가 열리는 팔복 예술 공장으로 택시로 달려가 눈도장을 찍었다. 이수지 작가님의 그림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 몽땅 가방에 챙겨 넣고 싶었다. 돌아오는 차 시간이 빠듯해, 또다시 터미널까지 택시로 달렸다. 전주에 와서 전주비빔밥도 못 먹고 돌아간다 했더니... 기사님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김밥이라도 사줘요?' 하신다. 전주 인심 참 후하다.




신랑은 아직도 영상통화나 온라인 강의로 충분했을 일을 사서 고생했다고 믿고 있다.(공항까지 마중 나와,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두통이 와서 골골거리는 환자 간병을 해주며...)

물론, 사무실로 찾아갔다면 사오십분이면 될 거리를, 굳이 하루의 삼분의 일이 넘는 시간을 길 위에 투자해 전주에서 첫 만남을 가져야 하는지 의아할 수 있다. 그러나, 사무실로 초대받은 것이 아니었다. 전주에서 하는 강의를 알려주셨으니... 달려가는 거지. 대신,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으니... 다음엔 서울에서 한 번 뵙자고 했다. 성품이 좋으셔서, 그리 해주실 것 같다.


땡볕에 한정판의 무게를 견디며 걸었던 기억.

돌아보니 나쁘지 않아. 특히 기다란 보라 꽃들이 피어있던 좁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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