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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n 25. 2023

간절함인 줄 알았던 미혹함

팔백에 날개를 달아 준 건, 다름 아닌 나.

미혹하다: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깨달음에도 종류가 있을까.

검색을 하니,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

기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깨달음에도 종류가 있었다.


종교적 번뇌를 잠시 접어두고...

내게 다가온 삶의 깨달음은 일단 두 종류.


깨닫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경우.

뒤늦게 깨닫고 속이 쓰린 경우.


근 이년 전쯤, 글쓰기 강좌가 아닌, 책 쓰기 강좌 특강을 들었다. 특강 비용은 삼만 원.

특강에서, 자신과 함께 하면 십 년 동안 혼자 끙끙대던 문제가 해결되어 출판에 성공하게 된다는 말이

집에 와서도 떠나질 않았다. 그러나, 수강료가 천만 원이라 선뜻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스펙이 좋아, 장학금으로 이백을 할인해 줄 테니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두 달을 고민하다 결정했다. 하기로.

아는 사람들이 나중에 이 가격을 듣고, 놀란 마음을 감추지 않으며... 쌤 돈 많네요. 했었다.

돈이 많아서 하고 싶은 거 다 한다고 뽀대 보지도 못하고...

'그러게요. 그땐 왜 그랬을까요'라고만 했다.


그땐 말이지요.

제가 좀 힘이 들다 보니... 인생 뭐 있어... 살면서 하고 싶었던 거나 한 번 해보고 죽자는 심정이었습니다.

간절해서 내렸던 그때의 결정과 지금의 결과를 종합해, 누군가 한마디 해 주셨다.


"죽지도 않았고, 책도 나오지 않았군요."




수강 계약기간 일 년이 끝나고, 투고가 모두 거절당해 책이 나오지 않았을 때... 온전히 내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높은 가격에 비해 합당한 서비스를 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혼자 책 낼 능력이 되면, 그 비용을 그에게 지불한 이유는 뭐였지. 수강 기간 내내 들었던 의문이기도 했다. 뭐가 더 있는 걸까. 이게 다 일까. 왜 이렇게 비싸지. 다른 사람들은 만족하는데 출간 못한 나만의 문제인가. 스펙이 좋아서 무조건 된다더니. 시간차만 있을 뿐 꼭 성공할 거라는 위로로 퉁치기엔, 그 가격이 합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브런치 초기, 브런치 글쓰기에 대한 팁으로는, A4 2.5매를 쓰라고 했다.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 것은, 브런치에 글이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브런치에 브 자도 모르고 던진 말이었다.


계약서를 다시 보니, 책이 나오는 것은 전적으로 수강생의 몫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고로, 책이 안 나왔다고 환불요청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그 가격과 그의 마케팅에 홀려... 이 가격을 지불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책이 나오지 않을까 란 생각에, 계약서에 적힌 그의 틈새 없는 한 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자비 출판이 아니라 계획 출판을 배워 보고자 했던 의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요세프 님은 <알면서도 당하는 건 사기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내 경우는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채 간절하기만 하면 호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깨달음은 얻었다. 굳이, 이 깨달음을 주시려고 내게서 팔백을 가져가실 필요까진 없으셨는데... 이렇게 또 비싼 글감하나 얻고, 힘내서 글 써보겠다고 국 한 그릇에 밥 한 공기 말아먹는다.



마크 트웨인의 말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간절함과 미혹함을 구분할 수 있었을까. 알고 있어도, 결국 이렇게 경험을 하고 나서야 '아프다' 하며 배우는 것일까.




브런치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매일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이백일이 넘었다. 그러다 얻은 깨달음이 하나 있다. 책 책 책 노래를 부르면서도, 매번 같은 자리에서 일시 정지하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오. 유레카. 그날 이후, 마음이 한 결 여유로워졌다. 책은, 더 이상 이전에 생각하던 의미의 책이 아니었다.


그리고,

쓰지 않았다면 잡아 두지 못했을 아이와의 순간들.

쓰다 보니 덤처럼 얻은 것 같았는데,

쓰고 나니 고마운 선물이 되어 있었다.


매일 쓰다 얻은 깨달음으로 업그레이드를 준비중이다.


그나저나...

집 나간 팔백아,


잘 지내고 있니?

너의 부재로 인해 얻은 깨달음이 크다.

잘 준비하고 있을 테니,

때가 되면 다시 돌아와 주렴.

우리에겐

네가 필요해.

집 나간 건

너 혼자만은 아니라서 말이지.



今日は日曜日です 쿄오와 니치요비데스

こんじつ 오늘은

にちよう 니치요비 일요일


photo from The JoongAng, 서소문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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