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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n 23. 2023

안 봐도 보이는 관계

아껴주고 계시군요.

테니스를 치지도 않았는데, 테니스 엘보 증상으로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삔 것처럼 뻐근했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격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증세는 조금씩 심해지며 급기야 핸드폰의 무게가 부담스러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제야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이전의 치료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해, 다시 가는 것을 미루어 왔었다.


사실은, 강여사의 어깨통증을 잡지 못해... 죄송하지만, 약간의 신뢰도를 잃은 상태이기도 했다. (강여사의 어깨통증은 어깨 자체가 아니라, 목디스크에서 오는 통증이었음을, 두 시간이 떨어진 곳의 병원을 찾아 진료 본 끝에 알게 되었음) 그래도, X-ray 찍어 놓은 곳이 편할 것 같아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찾아가 보았다. 어차피, 동네의 다른 병원도 강여사가 이미 다녀본 뒤라... 비슷비슷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기에.


 



물리치료실에 누워 있는데,

건너편 침대 쪽에서 치료 기기 시간이 다 되었다는 벨 소리가 울렸다.

간호사보다,

아내분이라 생각되는 분의 차분한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때, 괜찮은 거 같아?"

느리고 묵직한 긍정의 답변이 왔다.

"ㅇ.. 응"

"괜찮으면 다음에 다시 올까?"

"ㅇ.. 응"


몸이 불편할 때, 반응 속도가 느려지듯 남편분의 대답은 이렇게 조금씩 늦었다.


"잠깐 있어봐, 내가 해줄게."

소리로 짐작건대, 아마도 몸을 일으키고 엉클어짐을 추스르는 듯했다.

체구가 있으실까, 키가 크실까 알 수는 없지만,

침대 위에서 천천히 다리를 내려 신발을 신고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해서 나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ㄱ...ㅗ 마워."


느릿하게 울리는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

별생각 없이 누워있다, 살짝 울컥하고 말았다.  

 

고맙다는 말.


거동이 불편해진 자신의 손발이 되어 주는 아내에게.

폐부 깊은 곳에서 힘겹게 끌어낸 소리.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서로의 어깨에 몸을 맞대어 천천히 걸어 집으로 돌아가면

의자에 앉아 한동안 숨을 몰아 쉬시겠지.

아내는 물 한 잔 떠서 남편 먼저 드시라 내밀듯 하다.


짧게 오고 간 대화. 전해지는 목소리와 톤. 움직임의 느낌.

본 적 없는 부부의

애틋하게 아껴주는 관계가 상상이 되었다.


신랑에게 급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두 번의 주사 치료 이후 팔의 불편함이 많이 좋아졌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면,

안 봐도 뻔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에...

이제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미련하게 통증을 참고 병을 키우다 이제야 왔다는 너스레에,


"아니에요. 참을만하셨으니, 그러셨겠지요."라고 담당 의사는 답해 주었다.


눈을 마주치고, 환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서두르지 않고 답하는 그 톤과 눈빛에,

속으로는 '살만하니 그랬겠지'라는 느낌은 들어 있지 않았다.

가끔, 속는 셈 치고 내린 결정이 득이 될 때가 있다.

강여사의 목디스크 결과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photo by Gustavo Fring



愛(あい)している 아이시떼루. 사랑해

아이시떼루는 大好きだよ。 다이스키다요. 정말 좋아한다는 것보다 무게감이 나간다고 한다.

가령, 好き(스키)에 비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유일무이한 감정, 단점까지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나보다 상대를 더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 남성들은 愛している아이시떼루보다 好き(스키) 혹은 大好き(다이스키)를 쓴다고 블로그마다 전해지고 있었다.


(한 줄 일본어 습관 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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