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템일까 낚인걸까…
밤 새, 다시 기침을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토요일 오전 접수 마감할 새라 아침부터 병원으로, 폰 수리를 위한 A/S 센터로, 아이 미술학원으로 다녀오느라 집에 오니 네시가 다 되었다. 차에서 잠깐 잠이 들었던 아이는 선잠이 깨어 잠투정이 시작되었다. 괜한 트집으로 약이 올라 있는 아이를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좋으련만, 신랑이 억지로 풀어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몇 분 되지 않아, 아이보다 유치하게 성을 내며 돌아선 건 아이의 아버지. I knew it.
아빠에게 남은 화살을 돌리며 화를 내던 아이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갈 때쯤, 아이를 안아 놀이방으로 가서 뉘었다. 피곤하면 자면 될 것을... 투정이 참 길다. 눈은 졸리면서도 잠은 안 자고, 발가락 만지지 말라며 바락 거린다. 졸리다던 아이를 지켜보다가 아이보다 먼저 잠깐 잠이 들었다. 아들은 물리적으로 내 눈을 뜨게 해보려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옆에서 칭얼대다 잠시 쉬어 가기로 마음을 먹어 주었다.
한 해의 새로운 반이 시작하는 칠월의 첫날, 아파트 단지에 큰 장이 열렸다. 전에 본 적 없는 골동품 사는 아저씨부터, 온갖 종류의 먹거리, 아이들 장난감, 건강식품, 장터에 빠질 수 없는 뻥튀기 그리고 양말은 쟁겨놔도 안 썩는다며 한 축씩 사가라고 판매 촉진 멘트를 날리는 사장님까지.
아이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들려온 장터 소리는 신경을 거스르는 소음이었다. 라이브 공연도 있었던 듯한 데, 집안에서 아이 울음속리에 섞어 듣는 노랫소리는 크게 흥을 돋우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잠깐의 휴식 뒤에 어슬렁 거려본 장터의 활기는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집안에서 슬쩍 내다보는 것과는 다른 에너지가 그 안에 꽉 차 있었다.
아침 8:30 이전부터 천막을 치기 시작했던 사장님들. 밤 10:00 가 되어가는 시간까지 불을 밝히고 뜨거운 불 앞에서 쉴 새 없이 떡볶이를 끓이고, 석쇠에 고기를 굽고, 즉석에서 한과를 튀겨 버무려 냈다. 아파트 단지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되어 있었다. 삼 년째 되어가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단지에 북적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잔디공원에는 아이들이 쏘아 올린 장난감이 어두운 하늘에 잠깐씩 반짝거렸다.
경비 실장님은 오늘 야간 근무를 하셨다. 뭐라도 시원한 것을 한 잔 드릴까 돌아보던 중, 석류즙 발견. 500ml 작은 병 하나에 오천 원쯤 할까 싶어 물었더니... 만원이라고 했다. 석류즙보다, 생강청과 도라지에 관심을 보이자 세트를 사면, 석류즙 작은 병 하나를 서비스로 주겠다고 했다. 생강청만 샀다가, 아이에겐 다소 써서 먹일 수도 없지만 왠지 기관지에 좋다니 아홉 번 쪘다는 도라지청도 데려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경비 실장님 음료수 한 병 사려다, 계획에 없던 생강과 도라지가 식구가 되었다. 강여사가 경비 아저씨 수고하시니 한 병 갖다 드리게, 석류 한 병 더 달라고 조르자 사장님은 못 이기는 척 적은 금액이 아닌 생강과 도라지에 끼워 넣어 주었다. 밑지는 장사 없다지만... 덤으로 이만 원어치를. 문득,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라는 데로 500ml 석류 한 병에 만원을 지불했으면 합리적인 소비였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잠에서 깬 아들은, 뒤늦게 합류하여 망고젤리의 매력에 빠졌다. 강여사가 당귀 및 다른 한약재 효용에 설명을 듣는 동안, 맛보기로 내어 준 젤리를 야금야금 잘도 먹었다. 사장님의 촉으로, 강여사는 지갑을 후하게 열어젖힐 고객이었다. 아이가 망고젤리에 홀려 다른 데 가자고 조르지 않게 어린 손님을 사로잡는 기술과 지불을 하고 나서 흐르는 무언가 어색한 정적을 깨며, 만 원짜리 젤리 한 봉지를 덤으로 주는 센스까지. 그러자 또다시, 당귀구기자, 우슬, 미나리 씨앗 가격은 합당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다녀갔다.
에라 모르겠다. 먹고 건강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