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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l 02. 2023

빗방울의 나비효과

타이타닉

근 일 년 동안 꽂혀 있던 아들의 관심사 쓰나미가 최근 잠잠했었다. 대신 슈퍼마켓 놀이로 인해, 식료품과 장난감이 곳곳에 차곡차곡 정돈되어 쌓여 있었다. 혼란의 쓰나미 속에서 모두 뒤엉켜 있던 상태에 비하면, 정리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아들의 쓰나미 본능을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유치원의 프로젝트 주제 '물'이었다. 물은 자연스럽게 빗방울을 떠올리게 했고, 빗물의 순환과 장맛비와 폭우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나 보다. 아들은 해운대 해변으로 파도가 들이닥치는 극적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어 했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들은 저 장면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는 것. 윤제균 감독님과 비하인드 촬영 장면을 찾게 되면서 아들은 더욱 흥미를 느꼈다. 카메라가 빠르게 이동하며 복도에서 물살에 휘둘려 미끄러지는 장면 찍는 것을 무척 신기해했다. 그 장면이 다시 보고 싶으면, 손으로 카메라 흉내를 내며,


"이렇게 찍은 거."


라고 했다. 오... 이제 쓰나미가 조금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가는 것인가. 해운대 촬영 장면 모음을 보다, 타이타닉이 생각났다. 배가 두쪽으로 갈라지고 사람들이 물에 휩쓸리는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설명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찾아달라고 신랑에게 부탁했다.




아이가 영화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고, 아들의 관심사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나의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의사 전달이 되다가 말았다. 신랑은, 영화를 모르는데 다큐멘터리부터 보여주는 것은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조용해진 방으로 들어가니 부자가 나란히 앉아 12세 이상 관람가의 타이타닉 영화를 보고 있었다. 나의 실수인 걸까.


때마침 화면에는, 로즈가 배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는 것을 잭이 만류하면서 여차하면 자신도 뛰어내려 구하겠다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로즈와 잭의 대화가 길어지자, 아이는 왜 퐁당 안 하는지 여러 번 물었다. 아마, 타이타닉을 촛불(라이터) 켜다가 물에 빠진 희미가 타고 있던, 앙증맞은 보트정도로 생각한 듯하다.


어느 정도 스킵을 하더라도,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일인지 의문을 갖고 있던 나를 펄쩍 뛰게 만든 것은, 잭의 (누드 그림이 담긴) 화첩을 로즈에게 보여주는 것과 그와 이어지면서 로즈가 모델이 되어주는 장면. 성격상, 이미 경고하고 스킵하라고 했던 장면을 '예술' 일 뿐이라며 느긋하게 대처하는 신랑과 부딪히고 말았다. 예술이라 해도, 지금 이 시기에 굳이! 란 생각에, 함께 느긋할 수가 없었다. 


Hmmmm.

이미 아이는 얼떨결에 보았고, 엄마가 불편해하는 것을 인지한 상태. 최소한, 신랑과 서로의 다른 생각을 차분히 '얘기'로 풀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해 주었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전두엽이 정상으로 돌아온 신랑이 사과를 했다. 나 역시도, 과한 반응을 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었음을 인정했다. 아이는 가만히 우리 얘기를 듣고 있었다. 화해를 하고 장난 삼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더니,


"No violence."라고 했다.


폭력적 장면을 격하게 싫어하는 것으로 미루어, 자신이 보았던 장면도 viloence 해서 엄마가 영화에 태클을 걸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신랑이 둘 다 나가서 놀라고 밀어내고 닫은 문에 대한 것인지. 참으로 중의적인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육아는, 육아 자체만으로도 힘들지만... 이렇게 배우자와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상황이 아이와 관련이 있을 때도 정말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흥미로워하는 부분정도로만 빠르게 돌려 영화감독의 이름이 나올 때까지 셋이서 타이타닉을 보았다. 사람들이 미끄러지는 장면에서, 아이는 워터파크 미끄럼틀 정도로 이해하고 재미있어하려 했다. 재미있는 상황이 아니고,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 있고 다치고 아픈 거라고... 다른 건 몰라도 웃을 일은 아니라고 재차 알려주었다. 신랑은 옆에서, 영화니까 실제로 죽는 거 아니니 겁먹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정답 없는 삶. 타이타닉이 다섯 살이 되어 가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타이타닉보다는 그것을 보여주려는 시점이 전혀 다른 엄마 아빠에게 더 큰 영향을 받겠지만. 아무튼, 영화가 끝나고 아이는 이불들을 헤쳐놓고 타이타닉이라며 쓰나미와 다를 바 없는 혼란을 연출했다. 다른 점은, 베개를 늘어놓고 구명보트라고 했다. 당분간, 침대는 타이타닉호가 되어 바다에 떠 있을 예정이다. 베개가 작아 두 명은 함께 탈 수가 없으니 한 명씩 천천히 차례를 기다려야 할 것이고.


25주년이 되어서도, 이전에 이미 네 차례 재상영을 했음에도 여전히 그 인기를 자랑하는 타이타닉. 아이가 있으니, 각 잡고 볼 수 있는 정주행은 아니지만, 정말 다시 봐도 대단한 영화다.


유치원에서 시작한 빗방울은, 아이가 이른 시기에 타이타닉을 볼 수 있는 상황까지 데려갔다. 다음은 또 어디로 갈 것인가. 흥미롭지 않을 수 없소이다.



子育ては大変だ. (こそだてはたいへんだ) : 코소다테와 타이헨다. 육아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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