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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l 03. 2023

단봉낙타 같은 사람

남 얘기가 아닐 수도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을 책. <LA CHAISE BLEUE> by Claude Boujon. 글과 그림 모두 클로드 부종 작가님의 작품이다. 한글판 제목은 <파란 의자>.


사막에서 발견된 파란 의자.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라는 친구는 오아시스라도 만난 듯 신이 나서 의자가 부리는 요술에 빠진다. 의자는, 그 어떤 종류의 차가 되어 달려줄 수도 있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아올라 날 수도 있다. '둥둥 떠다니는 것'도 가능하고, 이럴 땐 상어를 조심해야 한다.


달리다가 지치면, 친구와 마주 앉아 계산대로 이용해도 좋고, 사나운 짐승을 조련할 때나 서커스에서 재주를 부릴 때도 의자는 요긴하다. 특히, 키가 큰 친구와 어깨동무할 때는 밟고 올라설 것이 의자만 한 것이 있을까.



이들의 즐거운 상상을 산산 조각내며 소리를 치는 낙타가 있었으니. 낙타도 그냥 낙타가 아니다. 혹이 하나밖에 없는 단봉낙타다. 원래 낙타 성질이 유순하다던데... 소리까지 지른 것을 보면, 다용도로 쓰이는 의자가 몹시 신경에 거슬렸나 보다.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미련 없이 파란 의자를 낙타에게 넘기고 갈 길을 간다. 상상력 부재의 동물과는 말을 섞지 않기라도 하듯이.


사람들이, 다소 답답하다 느낄 사람이 이 책을 보고 자신을 파악해 주면 좋으련만, 본인이 단봉낙타일 거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무도 자신은 단봉낙타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구나 고지식한 그 무엇 하나쯤은 다 지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삶 전체가 꽉 막힌 것은 아니지만, 유독 타협이 되지 않아 요지부동인 한 가지. 그래서, 의자는 의자로서 기능을 다할 때 의자라고 믿는 단봉낙타의 입장도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독불장군 단봉낙타도 말동무가 필요할까 싶어. 말이 잘 통하지는 않을지라도.


고지식한 단봉낙타 입장을 들어주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단봉낙타가 고집스럽게 의자를 차지하고 있으면 에스카르빌과 샤부도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 두 친구는 어디 가서 든 무엇을 가지고 잘 놀겠지만, 가는 데로 단봉낙타가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라. 꼭꼭 걸어 닫은 문이 열리면, 최소한 차지하고 있던 의자는 내어 주지 않을까, 최소한 남들 노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해본다. 낙타가 맘에 들지 않아도 쉽게 떠나 버릴 수 없는 이들이 세상에는 더 많기에.




아끼는 친구가 직장 내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괴롭힘을 주는 상사에게, 처지가 비슷했던 다른 직원이 아주 작은 '대항'을 시도했으나, 상사는 그 직원의 대응을 전혀 이해 못 하고 더욱 화를 내었다고 한다. 악명 높은 것은 알아도 어찌할 수 없는 유형과 위치. 직원은 직원으로 성과를 내는 기능을 다할 때 대접받을 직원이라 생각하는 믿음. 혹시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를 누가 들어줄 수 있다면, 남의 즐거움을 빼앗아 앉아 있던 의자에서 내려올 가능성이 있을까. 최소한, 열심히 일하려는 사기는 꺾지 않으려나.


작가님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는 입장에서 단봉낙타와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고 싶었다.


친구야 힘내 ~~



友よ、頑張って. 友(とも)よ, 토모요: 친구야 がんばるって, 간밧테 :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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