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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l 11. 2023

그림책 가성비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지.

시작하는 나이도 제각각 다르고, 같은 연령대의 수준도 천차만별인 영어.

그림책이 좋다 해서 시작을 해봤는데, 막상 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으면 난감해진다.

말로 해보라면 그림책 한 줄 대화도 어렵지만, 내용이나 그림이 유아스럽다며 밀어내는 경우도 있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이, 연령과 학습자 수준에 모두 맞을 수 있다면 금상 첨화인데... 이 접점을 찾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그래서 집에서 책 읽어주려던 시도를 포기했던 분들을 보았다.


이에 반해, 그림책의 가성비를 논하며 그림책을 열외로 놓는 분들도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책을 시도해 보려다가 실패한 분들보다, 그림책의 가성비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더 안타까웠다. 중학생 아이가 내신을 앞두고 있다면 또 모를까, 내가 알던 그분의 자제분은 이제 여섯 살이었다. 영어 그림책이, 엄마표 영어를 하기에 가성비 떨어지는 재료일 줄 상상도 못 했던 터라. 그날, 가성비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 기억이 있다. 개인의 취향이고 판단이라 넘기면서도, '뭣이 중헌디' 대사가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예전에 알던, 영어가 너무도 싫다던 아이도 그림책을 서론 본론 결론으로 야무지게 정리해 주었더랬지. 실용적이고 야무진 계산 같기는 한데, 무언가 잃어버린 느낌.


그러자, 그림책들이 성토하기 시작했다. 나의 접근이 그 모양이니 자신들이 가성비에 밀린 거라고. 자신들이 얼마나 가성비 높은 재료인가를 알려달라고, 너도 나도 페이지를 펼쳐가며 항의했다.


내 눈엔 이미, 가성비를 넘어선 알짜배기 알토란이다 보니,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던 것. 그게 시행착오라는 것이지.


마음이 돌아선다는 것은,

순간이면서도,

그 순간을 만들어 내기까지는 기약이 없고.

바램 없이 공을 들여 겨우 얻은 마음도,

한 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사인지라.

너희들을 열외로 한 분들에게 다가서는 것은 쉽지 않다고 그림책들에게 밑밥을 깔았다.

실망하지 마.


그리고

결과가 어찌 될는지는 몰라도, 그림책에 가성비를 씌워 또 한 번 들이밀어 보기로 했다.


<DRAW HERE: An Activity book>

by Herve Tullet.

WHAT!!


이거슨, 완전 아그들 그림 놀이책 아닌가.

<Press Here>라는 책으로, 유아들에게 인기 폭발했던 책이지만, 지금은 그림책 가성비 얘기하고 있는데 말이지. 실수한 거 아닐까.


글쎄...

왜 요즘은 어른들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색칠공부 하니까. 그림 좋아하는 아이라면, 순수하게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이런 책은 어떨까. 영어가 들어가 있어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하면... 조금 슬플 것 같긴 하다. 아니지, 인정해 줘야지. 스트레스는 풀라고 있는 거니까. 그럼 다른 것을 찾는 게 맞지. 이 한 줄도 스트레스라 하면, 근본적인 무언가가 필요한 거지.


그래도, 담백한 삼원색 동그라미들의 배열이 기분을 좋게 해 주니까, 한 번 더 들이밀어 보자. 페이지마다 있는 미션과 다양한 변화가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될 거라며.


그럼 이제,

페이지에 나와 있는 한 줄을 조금 더 유용하게 확장해 볼 순 없을까.


Draw dots around these dots.

삼각형, 사각형, 하트... 서로 다른 도형에서 쓸 수 있는 말이 된다.


Draw dots around this triangle.

Draw dots around these squares.


외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혹시 테이블에 의자를 둘러놓으란 말도 듣거나 해야 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Please place the chairs around these tables.


전혀 다른 문장 같지만, 그 기본기는 그림책에서 얻은 거라는 것을 증명해야, 너희들의 가성비가 올라갈 텐데 말이지.


그렇지. 이렇게 심플한 문장을 이완된 몸으로 선과 색감으로 기억하다 보면, 의미 없이 외운 수많은 문장들이 공중으로 흩어질 때, 언어의 중심을 잡게 해 준다는 것이지. 제대로 익힌 한 문장은 열 개 스무 개 문장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말씀. 이것이 가능하면, 점차 책을 읽어나가면서 바로바로 의미 파악을 할 수 있다. 해석한다고 앞 뒤로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Fix these dots! 는 나름 공간 지각능력을 요구하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할지 궁금하다.


이전 페이지에서, Fill in the holes in these dots. 가 나오는데, 아이들이 공간을 채우는 느낌을 익혔다면, fix 대신, fill these gaps. 로도 표현할 수 있다.


영어, 그 목적이 소통이라면

일상을 표현하는 대화 구문 말고도,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문장도 있음을 공유해 본다.


가성비 어필에 성공한 것일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파파고에, 쥴리어스 시저가 한 명언, 주사위는 던져졌다. The die is cast. 를 일본어로 돌리니

死に物狂いである 시니 모노구루이데 아루,라고 했다. 이 일본 문장을 한글로 돌리니 죽을힘을 다합니다. 가 되었다.


Lost in Translation 이 되어버렸다. 옛날 옛날, 영어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되고 그 번역이 다시 한글로 번역되었다면, 전혀 다른 소설이 되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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