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아무 관계없는 세 마리 여우 이야기
첫 번째 여우: 런던 여우
2013년 8월 2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런던 시민들과 함께 런던에 주거지?를 두고 있는 붉은여우가 1만여 마리에 이른다고 했다. 오늘로부터 딱 10년 전 기사이기에 구글링을 다시 해 보니, 지금도 여전히 1만여 마리가 살고 있다고 대략적 수치를 알려주었다.(2023. 3월 기준) 잡식성에 적응력도 뛰어난 여우가, 10년 동안 개체수를 터무니없이 늘리거나 줄이지 않고 잘 유지하고 있다.
책에서 여우를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일까, 그림 속 여우들은 악역이든 아니든 친근하게 느껴졌다.
런던의 어느 금요일 저녁, 친구들과 펍에서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집으로 귀가하던 길이었다. 어둑하고 인적 없는 길에서 여우와 맞닥뜨렸다. 무지했기에 두려움보다 신기함이 더 컸다. 책에서 느꼈던 친근함 그대로, 동물원의 유리보호막이나 철창 없이 마주하는 도시여우에게 반가움을 표시하려 했다. 그러나, 여우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우가, 책 속의 여우처럼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정신 차려. 난 그림이 아니라 실물 여우거든. 널 물 수도 있어. 길가는 고양이 취급하면 실수하는 거지."
태어나 처음 듣는 여우의 소리. 무언가를 갈듯이 낮게 가르렁거리자 본능적으로 몸이 경직되었다. 웃음을 거두고 조용히 여우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여우와 나 사이에 장애물이 생길 수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섣불리 뛰면 달려들까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여우는 눈앞의 장애물이 알아서 사라져 주자,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런던의 여우들은 쌓아놓은 쓰레기봉투를 찢어 놓기도 하고, 도심 속을 배회하다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하고, 딱딱하게 굳은 몸이 쓰레기 봉지에 담겨 처리되기도 했다. 굳은 몸의 반이 찢어진 봉투 밖으로 삐져나와 있던 모습은 측은했다. 살아 있는 동안만은 잘 먹고 다녔길.
런던에 사는 이들, 10명 중 7명은 가끔 이렇게 여우를 본다고 한다. 좋은 게 좋다고 함께 어울려 살고자 먹이를 놓아주는 이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거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밤에 만난 배고픈 여우는, 그날 밤 배를 잘 채우고 잠을 잤을까.
두 번째 여우: 생각지도 못한 여우의 최후
몇 날 며칠 농장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여우. 암탉이 먹기 좋게 살이 오르자 언덕을 내달려 당장이라도 잡아먹으려 하다가도, 하루만 더 하루만 더를 외치며 인내한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를 믿었을까. 하루만 더 기다리면 그만큼 더 살찐 닭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갈비뼈가 드러나도록 허기져 가는 배를 움켜잡고 인내한다.
마침내, 닭장을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살이 찐 암탉을 향해 돌진하는 여우.
배고팠던 여우는 원하던 닭고기를 배에 넣을 수 있었을까.
If I wait just one more day,
the hen will be even bigger.
https://www.youtube.com/watch?v=aejypAdm9Ro
세 번째 여우: 책에 소금과 후추 뿌려 먹던 여우
믿고 보는 책이라, 뮤지컬도 바로 예매를 하였다. 공연 좋아하는 다섯 살 아들이, 뮤지컬보다 박물관이 더 재밌다 했다는 정도로만 뮤지컬 감상은 남긴다. (지극히 개인적 견해)
오히려, 친구들끼리만 공연을 보러 와서 들떴는지, 공연 내내 뒤에서 조잘조잘 수다를 떨어준 초등학생들 (나름 공연에 자기 목소리를 낸) 중 한 녀석의 말이 기억에 남아 기록해 본다.
소금과 후추는 생각과 상상력을 상징했다. 배우가, 어린이 여러분도 책을 많이 많이 읽다 보면 생각과 상상력이 자란다고 하는 말에,
그건 인정
이라며, 쿨하게 공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 자식도 아닌데 책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아이가 기특했다.
책을 먹어야 사는 여우가, 책 살 돈이 없어 배를 곯다가 결국 서점에서 책을 훔쳐 몇 권 먹다가 체포되었다.
배고팠던 여우, 책을 좋아했던 여우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