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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Sep 04. 2023

하이드가 지킬박사로 쓸 수 없는 것, 수필

수필은 글 쓰는 사람의 분신

아는 동생 J가 알려준 문우회 첫 수업을 했다. 수필가이신 선생님은 일흔이 넘은 연세에 웃음이 인자해 보였다. 그러나 안경너머 예리한 눈으로,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내 글 속의 '티'를 발견하고 직설적인 평을 배부르게 해 주셨다.


합평을 위해 올린 내 글은, 첫머리부터 쓴소리 대상이었다.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긴 글의 인용이 발단이었다. 매번 이렇게 인용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반복한 것은 정말 처음 있었던 일이라 조금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결국엔 내 글에서 '인용' 습관에 대한 일침이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선생님 말씀처럼, 수필은 '내 글'이고, 내가 만든 음식상이니 내 것으로 상을 차려야 한다는 기본을 다시 배웠다.


물론, 적절한 인용은 임팩트를 높인다. 다른 작가님들 글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글귀, 생각의 물꼬를 터준 글들을 개인적 기록 차원으로 글 속에 담아왔다. 내 생각을 나보다 더 정확한 언어로 표현한 그들의 말을 빌려옴으로써, 나의 전달력을 높이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논문을 쓸 때는 내 주장에 대한 근거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당연해서, 다른 영역의 글쓰기지만 같은 습으로 수필글을 써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는 띄어쓰기였다.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를 맹신해선 안 될 일이었다. 몇 개의 단어를 예를 들어보자. 한 두 번, 삼백잔, 차 주전자 등, 브런치 툴을 통과한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사실 틀렸다. 한두 번, 삼백 잔, 찻주전자로 고쳐야 맞다. (브런치 맞춤법 검사를 하니, 이번에는 '한 두 번'의 오류를 잡아 내었지만, 이전 글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삼백잔과 차 주전자는 통과) 다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내가 틀린 줄 모르고 있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어떻게 찾아 교정을 하는가이다.


세 번째는 참으로 부끄러운 잘못된 호칭 사용이었다. 여태껏, 신랑은 남편의 다른 말인 줄 알았다. 지적을 받고 찾아보니, 신랑은 막 결혼하였거나 결혼을 할 남자를 뜻한다고 했다. 그동안 나의 브런치 글을 읽어 주신 분들은 신랑의 호칭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비록 아이는 다섯 살이지만 이제 갓 결혼을 한 신혼부부로 생각했을까. (매우 낮은 확률) 그냥, 요즘 사람들이 편하게 부르니까 그러려니 했을까. 신랑이든 남편이든 의미가 전달되었으니 크게 상관없다고 여겼을까. 아무도 관심 없었을까.


선생님은, 맞춤법이나, 호칭처럼 세세한 것 하나에도 신경을 쓰라 하셨다. 특히, '뽕이 들어갔다'는 표현에서는, 온라인상에서 재미나 가독성을 높이고자 비속어인 줄 알면서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글이 가벼워지니 우리말을 지켜 바른말을 쓰는 것도 작가의 역할이라 하셨다. 그리고, 문장 하나, 단락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쓰는 것이 산문의 중요한 요소라 했다. 말씀을 듣다 보니, 걷는 것을 의식하듯, 글 쓰기의 기본이 의식되어, 문득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비롯, 편하게 글 쓴다는 것이 갑자기 어려워진 느낌이다. 그래도 흘려들을 사항은 아니라 노력하기로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시나 소설은 하이드가 지킬박사로 되어 쓸 수도 있지만 수필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수필은 글 쓰는 사람의 분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처럼 써야 한다고. 자기처럼. 그러면 독자는 글을 읽을 때, 그 사람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잘 살아야 잘 쓴다'라고 했던 강원국 작가님의 말과 통하는 부분이다.


브런치에는 여러 종류의 글이 올라온다. 각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선생님의 조언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받고 전에 몰랐던 포인트를 알게 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히, 나의 글이 다소 불친절하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게 내 스타일이라며 습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작가는 심하게 말하면 직무유기를 하는 사람이라고까지 하니,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숙제는, 번호를 매긴 부분을 풀어서 쓰기이다. 브런치에 생활글을 올리면서 예술적 경지에 다다르고자 생각해 본 적도, 노력해 본 적도 없던 터였다. 그래서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 형태의 번호가 개인적으로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제목이 <차(tea)는 언제 예술이 되는가>이다 보니, 나의 글은 제목에 부합하는 예술 지향적 글이 되어야 했다. 아마도 이 글이 보고서로 완성되면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감동은 느끼지 못할 듯싶다.


결국 나의 숙제는, 수필의 핵심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불 점'을 키우는 것이었다.




합평받은 글이 궁금하시거나, 글쓰기 공부 하시는 분들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6ff42b0988794dc/391


BEFORE


1. 부족한 글쓰기니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

2. 잘 나가는 이들의 글을 보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겠구나.

3. 내 안에 빠져 내 글을 보지 못하니, 합평을 받는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구나.

4.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을 때 행복한 글쓰기가 되는구나.

5. 단 한 편도 명작이라 부를 만큼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브런치를 초고라 생각하면 앞으로를 더 기대해 볼 수도 있겠구나.


AFTER


아홉 달을 매일 쓰고서야 부족함을 깨닫고 글공부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련되지 않은 돌팔매질로 새를 맞출 수는 없는 일이다. 돌팔매질을 많이 하다 보면 저절로 늘겠거니 생각한 것은 서투른 이의 착각이었다. 깨닫는 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제부터 갈고닦으려면 인내가 기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잘 쓰고, 작가로, 강연가로 잘 나가는 이들을 보고 조급해할 이유가 없음도 깨달았다. 마음만 급해 달려 보았자 그만큼의 역량이 되지 않으면 어차피 오래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발행을 누르고도 여러 번 읽어서 나름 퇴고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는 동생 J가, 잠깐이지만 카페에서 내 글을 보고 들려주는 피드백은 신선했다. 내 글 속에 빠져 볼 수 없었던 부분을 짚어주니 가려운 곳 긁어주듯 시원하고 좋았다. 새로운 눈으로 내 글을 보아주고 평을 해 줄 곳을 찾으니, J는 얼마전 자기가 알게 된 문우회를 소개해 주었다.


아직, 단 한 편도 명작이라 부를 만큼 대단한 글은 없다. 그래도 내 안의 응어리를 글로 풀어내거나 아들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할 땐 그 자체로 내겐 행복한 글쓰기였다. 쓰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순간들을 일단 잡아 두었으니, 이 글들을 초고라 생각하고 다듬을 수 있다면,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글쓰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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