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글쓰기
"요샌 도통 브런치에 글을 안 쓰네?"
십여 개월 브런치에 매일 발행하던 것을 대견(?)해 하던 남편이었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중단 한 지 다섯 달이 훌쩍 넘어가던 어느 날. 한 달 내내 집안 정리 정돈만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브런치를 소환했다.
"요샌 도통 운동을 안 하네?"
운동 기구까지 들여놓고 자잘한 움직임까지 앱에 기록하던 남편이었다. 몇 달 동안 운동은커녕 가벼운 산책조차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브런치에 대한 답변 대신이었다.
남편은 잠시 약올라하더니, 자정 전까지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자기도 삼십 분 조깅을 하겠다고 했다.
'아니, 누구 위해서 운동 하나.'
어이없었지만 남편의 조건부 운동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뭘 쓰지?
청소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쓸감'을 건져보려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제 발로 걸어 나온 유치원을 제 발로 다시 걸어 들어간 아들 얘기를 쓸까. 미라클 모닝 어린이 얘기를 써볼까. 얼떨결에 들여놓은 백두산 철쭉 얘기를 해볼까.
BUT.
이것만 정리하고 써야지 하던 청소는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이쯤 하고 끝내자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일부러 일감을 더 찾아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날 밤,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승리?를 확인했다. 대체, 이 승리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남편은 콧노래를 불렀다. 다음엔, 운동을 하고 오면 글을 쓰겠다는 조건을 걸어볼까. 뭐지 이 느낌.
엊그제 오랜만에 글을 올렸다. 조건부 운동 제안과 상관없이 썼는데, 남편은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작동준비하고 있던 버튼이 눌려진 듯 푸바오같은 남편의 몸은 가볍게 튀어 올랐다. 삼십 분 조깅이 아니라, 한 시간 넘게 산행까지 하고 왔다. 그렇게 쉽게 될 일이었는데... 참으로 오랫동안 미루고 또 미루었던 글쓰기와 운동이었다.
조건부로 움직일 수 없는 마음.
조건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마음.
후자의 마음으로 매일 살 수 있기를...
photo: 남편이 산에서 보내온 Postman Pat(포스트맨 팻)